한 선생님과 메일을 주고 받으며 루인이 쓴 답메일의 일부예요. 그냥 이곳에도 남겨두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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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을 읽으면서 지금 적을 수 있는 내용도 있지만 어떤 질문은 지금 할 수 없는, 어쩌면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할 수 있는 대답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제 밤 메일을 읽고 계속해서 고민을 하며 떠오른 상념들 속에서 깨달은 것 중 하나입니다.
요즘 루인의 고민 중 하나는 트랜스젠더와 시스젠더(cisgender)라는 구분이 가능한가 혹은 그 경계는 어디인가, 예요. 선생님께 보낸 글 혹은 이번에 텍스트논평으로 쓴 글까지는 모르겠지만 그 다음에 쓴 글에선 시스젠더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있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나의 전략으로 사용했는데 지금에 와선 그런 사용이 불편하게 다가 왔거든요. 마지못해 비트랜스젠더 혹은 “바이오 여성”/”바이오 남성”이란 ‘관용어구’를 차용하기도 했지만 어느 쪽도 다 문제라고 느끼고요.
예전에 아는 사람과 관련 얘기를 하며 시스젠더를 설명하자, 자기는 시스젠더도 트랜스젠더도 아니라고 얘기를 했었는데, 그때 들은 말이 서서히 몸에 퍼져나가고 있다는 의미일까요. 이건 루인이 모색하는 트랜스/젠더 정치학과 연동하는 문제이기도 해요. 트랜스젠더를 특수화하는 작동들, 트랜스젠더만을 외과적으로 구성한 몸으로 얘기하는 언설들을 비판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한 선생님이 루인에게 물었던 질문 중에, 그럼 “여성으로 대해주길 바라는 건 가요?”라는 질문을 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대답하기가 정말 어려웠는데, 루인은 사람들이 루인을 “남성”으로 대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만큼이나 “여성”으로 대해주길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제 3의 성이 아니라 트랜스 혹은 트랜스젠더로 관계 맺길 바라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이 루인에게 “여자야 남자야?”라고 물어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고, 트랜스공동체 혹은 모임 내부에서도 mtf인지 ftm인지 헷갈려하는 걸 재밌어 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이 지점에서 “루인이 욕망하는 트랜스의 의미”를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느끼고 있어요. 자명한 것 같으면서도 낯설고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거든요. 이건 “남성 아니면 여성”이라는 오직 둘 뿐인 젠더해석으로 루인의 욕망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트랜스/젠더를 특화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건 아닌가하는 의심때문이기도 해요. 혹은 의도하건 아니건 상관없이 ‘투명한 주체’로 설명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요.
루인이 이 글을 통해 혹은 수업시간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남성임” 혹은 “여성임”이란 것이(있다고 전제한다면) 그렇게 ‘단조로운’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 것, 오직 둘 뿐인 젠더란 믿음이 자명하지도 않거니와 그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에요. ‘단조로운’ 의미가 아니란 건, 일테면, 하리수가 표현하는 “이성애 욕망”이란 걸 단순하게 “이성애를 강화하는 행동”으로 비난할 수 없고, 트랜스여성이 자신의 여성젠더정체성을 주장하는 건 “이성애를 강화하는 것”으로 단순하게 해석할 수 없음을 얘기하는 것이죠. 그런 비난은 맥락을 무시하는 발화들이고요. 이런 맥락에서 두 번째 질문인 “여성으로 간주되는 자가 여성으로 보여지는 여성을 욕망하는 것”과 “남성으로 보여지지만 여성이 되기를 원하는 자가 여성으로 보여지는 자를 욕망하는 것”의 “차이”는 미묘하게 다른 맥락이 있다고 느껴요. 그건 두 가지 뿐이라는 젠더 해석에서 자신의 젠더 정체성을 의심받는 혹은 요구하고 주장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점에서죠. 동시에 이것이 작동하는 맥락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느끼고요. (또한 그렇게 “보여진다”는 의미 혹은 그 구조도 질문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고요.)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