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상실, 몸 가는 길

밤에 잠 들 때면, 하고 싶은 말이 뭉글뭉글 피어난다. 그리고 이렇게 피어난 말들이 몸을 타고 돌면, ‘그래, 내일은 이런 글을 써야지’라고 다짐한다.

자고 일어나면 잠 속으로 말들은 빠져들고, 하고 싶다고 다짐했던 말 중 남아 있는 말은 없다. 무엇을 말 할 수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든 걸 잊어버린다. “이상한 나라”에라도 갔다 온 걸까? 혹은 몸 어딘가에 말들을 숨긴 걸까.

몇 가지 일들이 있지만, 쓸 수 있는 것도 쓰고 싶은 것도 없다. 왜일까? 이렇게 쌓아두면 언젠가 다시 말들이 넘쳐흘러선, 마구마구 쓰는 날도 올까? 하지만 글 좀 안 쓴다고 무슨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닌 걸.

하루면 읽을 수 있을 글들을, 이틀이나 걸려서 읽곤 한다. 게으름을 반증한다. 하지만 좀 게으르면 어때. 강박들.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해야 한다는 강박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들. 그런 강박 속에서 실상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다. 몸은 없고 강박만 남은 걸까? 강박이 몸을 잠식한 걸까? 그래, 몸은 없고 강박만 남았다: 강박이 몸을 잠식했다.

서두르지 말기로 해, 라는 말을 다시 중얼거린다. 루인이 무식한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타고난 재능도 없으니, 그저 꾸준히 진행하면 그만이다. 그러면서 좀 놀기도 하고 아무 것도 안 하는 시간을 가지면, 그것대로 또 좋은 거다. 몸은 솔직하니까.

즐거운 몸. 즐거운 몸. 몸 가는 데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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