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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이란 단어에 혹해서 읽다가 참 차분하게 썼구나 싶다.(이 문장 미묘하게 문맥이 안 맞으면서도 말이 된다;;;) 아, 그러니까 루인은 미련탱이, 미련한 미련중독, 미련하게도 미련을 붙잡고 사는 냥이.
맨날 붙잡고선 어쩌지도 못하고 징징거리기만 한다. 하지만 미련을 떨치려는 노력 보다는 미련 자체를 직시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그래서 미련과 놀 수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물론, “그래서 네가 그 모양이야”, 라고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흐흐.
요즘의 고민은 이 지점이다. 고통을 피하는 것보다 고통을 직시하는 것, 고통과 노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 용기는 고통 속에서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고통으로 직시하고 그것이 고통임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루인은 대책 없는 희망중독증이지만 ‘잘 될 거야’라는 희망이 아니라 현재의 고통을 잔인할 정도로 파고드는 것이 더 용기 있는 일이 아닐까…. 왜냐면 어느 순간, 이 대책 없는 희망중독이 루인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고, 고통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희망중독이라는 말은 고통중독이란 의미이고 고통을 자처하고 고통을 만들어서 스스로에게 고통을 부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몸앓이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루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다. 한편으론 루인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분석하지만 이런 분석도 언제나 일정 선에서 멈추기 마련이다. 작년 루인에게 소중한 충고를 해 준 ㅈㅎ선생님은 스스로 한계를 만든다고 지적했다. 용기를 내서 더 밀고 나아가라고 독려했다. 그리고 이후 글을 쓸 때마다 ㅈㅎ선생님의 말을 떠올리며 더 나아가려고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어느 순간 멈칫, 멈칫 망설이는 루인과 만난다. 혹은 ‘엉뚱’하게 튀어서 문제를 일으킨다.
(뭔가 글의 방향이 이상하게 흐르고 있다;;;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흐)
맨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루인에게 루인은, 언젠가, 지겹지도 않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지겹다고 하기 보다는 이런 상황이 언제나 새롭다. 그러니 어제의 미련은 어제의 상황이고 오늘의 그 미련은 어제와는 달라진 새로운 미련으로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이토록 미련한 루인은 이렇게 매일같이 새로 경험하는 미련으로 빙빙 돌고 있다. 하지만 루인은 또 이런 놀이를 좋아한다. 감정이 조금씩 변해가는 걸 관찰하는 거, 그렇게 변하는 감정이 어제완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하는 거, 이런 거. 이런 게 재밌다. 어제의 미련과 오늘의 미련이 어떻게 변해 있는지, 그래서 감정이라는 것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관찰하는 거. 그런 관찰 속에서 현재를 읽는 거. 이런 게 재밌다.
미련탱이, 미련탱이.
그리고… “일시 차단”이라는 말의 영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