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안 혹은 몸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뜯겨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뜯어내고픈 바람에 앞서 그냥 통합하는 것이 편하다는 걸 알아. 애도 이후의 삶보다는 통합해서 합체하는 삶. 그저 이런 것이 익숙한 삶. 그러며 프로이트를 떠올린다. 이런 식으로 삶을, 감정들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들 중 하나를 알려준 프로이트에게 감사하면서도 문득 이런 우울증 구조 역시 기원서사에 토대를 두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 우울증 구조 자체가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한 기원서사의 하나라면, 프로이트의 이런 설명을 빌려오는 버틀러의 우울증 구조는 어떠할까? (물론 프로이트의 우울증 구조부터 좀 더 꼼꼼하게 검토해야 한다.) 기원서사를 비판하는 버틀러는, 우울증 구조에 내재하고 있다고 의심하는 기원서사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다시 확인해야 겠다고 느낀다.
몸 한 곳의 고통을 이런 식으로 설명하고 있는 건, 역시 INFP라서 그래, 라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이 역시 성격 형성에 있어 환경이 미친 부분을 무시하고 그저 “난 원래 그래”로 슬쩍 도망가려는 행동임을 ‘안다.’ – 이런 말 역시 분석하고 있는 혹은 분석하려는 행동한다. 항상 이런 식이다. 그런데도 언제나 부족하고 어설프다.
며칠 전부터 계속 공부를 해도 되나, 하는 고민에 빠져 있다. 어쩌면 공부를 해도 괜찮아, 계속해서 공부를 하고 싶으니까 계속 해도 돼, 라는 말들 자체가 자기 환상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재능도 없고 능력도 없으면서, 루인은 대기만성형 인간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공부를 하면 괜찮을 거야, 라고 자기 암시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실은 진즉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야하는 건 아닌지. 이런 고민과 함께 이런 고민은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이니까 여기서 그만 두지 말고 꾸준히 계속해, 라고 다둑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런데 이런 다둑거림 역시 자기위안은 아닌지. 새삼스럽게 현실을 구성하는 건 자기환상임을 ‘깨닫는다.’
라고 말하는 프로이트의 말이 떠오른다. 왜냐면 어떻게 되건 결국은 계속 공부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진이정은 자신의 재능 없음을 한탄하는 유하에게 “그만 두기엔 너무 많은 시를 썼잖아”라고 얘기했다고 했나. 그러기엔 너무도 부족하지만, 결국은 계속할 거잖아.
루인이 공부 안 하면 누가 해요? 진지하게 하는 말이에요.
결국 공부를 계속할 거면서도 항상 이런 갈등 속에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질문들이 어쩌면 계속해서 공부를 할 수 있게 하는 힘인지도 모르겠다는 느낌도 들고요. 🙂
루인님 블로그 재미나게 읽고 있삼. “재능도 없고 능력도 없으면서”라고 자기를 회의하는 삐딱하기 그지없는 인간들이 끝까지 공부를 하는 거 아닐까요? 재능있고 능력있는 치들은 이미 자본에 픽업되었으니. 루인글, 참 좋아요. 블로그 글이 이러면 활자화되어 나가는 글들(페이퍼든 머든)은 어떨까 상상해 본다오. 언젠가 꼭 뒷조사해서 루인 글들 다 읽고 말테지만. 쓰잘데없는 고민하지 마세요. 이 글도 나 공부 잘하고 좋아의 다른 표현 아니겠어요?
마지막 문장에서 뜨끔했어요. 물론 공부를 잘하진 않지만 좋아하긴 하니까요.
그나저나 왠지 말투를 통해 누군지 알 것만 같아요.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