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견디다

지리멸렬한 시간을 견디고 있어. 언제나 그렇듯 이런 시간에 익숙해질 즈음엔 다시 무뎌진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 이 정도의 멸렬함은 아무렇지 않은 걸.

불필요한 기대는 언제나 더 깊은 쾌락을 불러. 그러니 이런 루인의 쾌락을 뭐라고 하지마. 그저 매일같이 기대와 희망으로 시작하면서 그런 기대와 희망을 버리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 속에서 살고 있어. 이런 일상의 반복. 희망이라는 중독 속에서 희망을 버리고 그것의 이면에 숨겨진 ‘현실’을 직면하고 있어. 그래, 고작 이 정도가 루인인 걸.

며칠이면 된다는 걸 알아. 그러니 이 정도에서 그만할게. 그 뿐이야. 그저 습관 같은 것일 뿐이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냐. 지금도 그런 걸. 이런 상황에서도 분석하고 있는 루인인 걸. 다 쉬운 일인 걸.

우주에서 글 쓰기

관련 기사: 우주에서 펜으로 글씨 쓸 수 있을까

예전에 라디오를 들었을 때 나온 얘기. 미국 나사(NASA)는 우주탐사계획을 세우는 와중에, 볼펜으론 우주에서 글을 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메모를 해야 하는데 무중력 상태에선 글씨를 쓸 수 없으니 무중력 상태에서도 글씨를 쓸 수 있는 펜을 개발하는데 몇 백만 달러를 투자했다고 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 드디어 무중력 상태에서도 글씨를 쓸 수 있는 볼펜을 발명했는데. 이런 기쁨에 미국은 소련에 가 있는 스파이에게 소련 우주인은 볼펜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알아보도록 했다고 한다. 맞다. 자랑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소련에 잠입해 있던 스파이가 보내온 대답은, “연필을 사용하고 있음.” 이었다나.

이 얘기를 듣고 깔깔깔 웃었고 다른 한 편으론 기발함에 좋아했다. (여러 해 전의 얘기인데)미국 나사의 복도 한 가운데는 유리박스로 보관하고 있는 물품이 있다고 한다. 그 물품 앞에는 “정전 등으로 컴퓨터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때 사용할 것”이라는 설명서가 붙어 있다고 한다. 전기가 없어도 되는 최신의 제품이냐고? 주판이란다.

두 가지 교훈. 우주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볼펜을 개발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긴 하지만 꼭 그래야 해? 그리고 꼭 새로운 기술 개발만이 능사는 아니다.

글이 꽤나 엉뚱하다. 큭.

지금, 이 밤

18시 59분. 컴퓨터의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 창밖은 어둡고, 제목은 밤이라고 적혀 있다. 이제 19시. 흔히 저녁이라고 말하는 시간. 그리고 루인은 밤이라고 적고 있다. 어두우면 다 밤이다.

불을 끄면, 창밖 눈꽃이 피어있는 나무들이 보인다. 북향인 사무실은, 학교 건물에 있는 방들이 그러하듯, 커다란 유리를 통해 밖이 보인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형광등을 끄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나무들은 트리처럼 보이고 그 풍경은 영화 속의 장면 같다. 지금은 Cat Power의 Maybe Not을 듣고 있는 시간. 피아노 소리는 겨울과 어울린다.

어릴 때 읽은 소설 중엔, 북극 지방을 배경으로 한 소설들이 몇 편 있었다. 그 소설 속의 풍경은 나무들이 눈에 덮여 있는 장면들. 항상 그렇진 않지만, 지금은 북극에 있는 기분이다. 커다란 나무들로 만든 집에서 글을 쓰고 있는 느낌이다. 무덤 같다. 창 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지금 이 자리와 상관없고 음악은 서늘하다. 몸은 따뜻하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지 않았으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문득 우울하다. 무엇이? 우울의 원인을 알 수 있다면 우울하지도 않겠지. 그 원인조차 잃어버린 순간. 하지만 그 원인이란 것이 있긴 했을까. 왜 자꾸만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걸까. 원인을 찾으면 조금이나마 괜찮아질까. 사무실은 어둡고 모니터 화면은 눈이 아프게 밝다. 황병승의 시를 연상케 한다.

내일까지 써야 할 발제문과 목요일까지 써야 할 기말 논문과 수요일에 있는 학과회의와 내일 저녁에 있을 기획단 회의와 … 이런 식이다. 계속해서 일정들을 떠올리고 몸은 이런 일정에 맞춰 돌아가고 그런 와중에도 당신이 떠오르면 모든 걸 멈춘다. 노래한다. 노래한다. 노래는 세월 따라 반복한다. 그리하여 노래가 흐르는 순간은 그 노래를 듣던 모든 시간들을 동시에 경험한다.

2학기가 끝나가고 있다. 일 년이 지나가고 있다. 다시 일 년을 더 하고 나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미래를 향한 불안이 아니다. 그저, 이런 식으로 질문을 반복함으로써 외면하고 싶은 것뿐. 그래, 일 년 뒤의 루인은 한창 석사논문을 수정하고 있을까? 그래서? 그것이 뭐…

영영 소식을 알 수 없을 당신과 영영 소식을 알고 싶지 않은 당신은 같은 인물일까. 영원히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과 영원히 만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은 같은 인물일까. 영영 소식이 닿지 않아 알고 싶은 사람과 영원히 소식을 전하지 않으려고 도망치는 사람은 같은 사람일까. 그들은 다들 어디서 만날까. 만나야 할까. 만나서 무엇을 할까. 만나면 꼭 무언가를 해야 할까.

왜 아직도 당신은 낯설까. 여전히 낯설까. 지금은 Nina Nastasia의 Counting Up Your Bones를 듣고 있는 시간. 이토록 달콤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