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엔 물이 새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어두운 玄牝에 머물며 나가길 머뭇거렸다. 비가 내리는 만큼 우물의 깊이가 더해갔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오전부터 부천에 갈 일이 있어서 이다. 몇 주 전, 약속한 일이다. 하지만 사실상 그 일은 별다른 수확이 있는 일이 아니었다. 갔어도 가지 않았어도 그만일 일이었다. 옷만 흠뻑 젖었다.

흠뻑 젖은 옷이 싫다. 발이 불어가고 옷은 무거워지고 바람에 머리카락은 헝클어지고, 눈을 감고 귀를 막고, 표정을 지운다.

부엌에선 여전히 물이 새고 있다. 비만 오면 물이 샌다. 새는 물이 몸에 쌓여가고 고여 가는 물이 썩어간다. 썩어가는 물 냄새가 몸에 인처럼 박혀, 역하다.

물에 젖어가는 玄牝과 닮아가는 몸. 물에 젖은 몸이 어둡다.

저물녘이면

저물녘이면 해 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들으며 가을이 오는 걸 느낀다.

가을은 나스타샤의 얼굴에 비친 그림자로 느껴진다. 이른 저녁 시간, 나스타샤의 표정이 환하면 가을이 오고 있다는 의미이다. 늦게까지 나스타샤의 표정이 부옇게 보이면, 여름이단 의미이고.

표정이 변해가는 소리를 들려주며, 가을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