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ffis][영화] 이티비티티티 위원회

[이티비티티티 위원회] 2007.04.08. 18:00, 아트레온 1관 B-9

1. 이 시대에 이런 영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 이 문장은 [300]을 평하며 쓴 구절이기도 한데, 맞다. 루인은 이 영화를 [300]과 비교하고 있다.

2. 뜨악했던 건, 이 영화가 페미니즘 혹은 레즈비언 페미니즘에 대한 지능형 안티인지, 안티 페미니즘인지, 페미니즘이 소비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인지를 모호하게 그리는 척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테면 결혼은 가부장제도의 억압도구이기에 무조건 반대한다는 논리는, 결혼이 인종이나 계급, 성정체성/성적 지향성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님을 무시해버린다. 결혼제도를 비판하는데 있어, 다른 맥락을 살리면서 비판하는 것과 싸잡아 비난하는 건 너무 다르다. 동성애자의 결혼 논쟁이 이성애제도에서 이성애 결혼과는 의미가 같을 수 없고 트랜스젠더의 결혼이 또 다른 의미를 지니는데, 이 영화에서 결혼제도는 오직 한 가지의 의미만을 가지고, 그래서 모든 (이성애) 결혼은 억압제도일 뿐이라고 얘기한다. 이런 이유로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인지 페미니즘을 빙자한 지능형 안티 영화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 사이의 인종 관계는 마치 인종이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는 듯이 나타나고, 계급관계를 그리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ftm/트랜스남성은, 가장 소비하기 좋은/안전한 방식으로 나타날 뿐이다. 그래서, 영화가 끝났을 때, 지능형 안티거나 정말이지 성찰하지 않는 감독이라고 느꼈다.

3. 물론 일종의 퍼포먼스는 재밌긴 했다. 하지만 이걸로 무마하기엔 꽤나 실망스럽다.

[Wffis][영화] 스파이더 릴리

[스파이더 릴리] 2007.04.08. 14:00, 아트레온 2관 E-15

1. 영화를 읽다가, 이런 영화를 읽을 수 있어서 고마워, 라고 중얼거렸다. 이 영화가 있어서 행복했고 고마웠다. 루인이 좋아하는, 미치지 않을 수 없는 코드들이 잔뜩 있는 이 영화는, 그 코드들을 기가 막히게 잘 직조하고 있다. 6월 즈음 개봉한다고 한다. 그때 또 읽을 거다. 올해 나온 최고의 영화 중 한 편으로 이 영화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거다.

2. 영화 전반에 걸쳐 나오는 구절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기억해 줘요.” 이 말이 너무도 절박하게 다가왔다. 다른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나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내가 당신의 생애 어느 한 순간에 스쳐 지나갔다는 걸, 그 작은 사실 하나를 기억해 달라는 바람. 그리고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열망. 내가 여기 있다는 걸 기억해 줘요…

3. 이 영화는 (나중에 읽은 [8월 이야기]와 함께) 기억, 특히나 몸에 세겨져 있지만 망각하고 혼란스럽게 떠도는 기억을 말하고 있다. 타투/문신으로 몸에 세겨서 현실로 남아 있지만, 해리성 기억상실을 통해 어떤 것은 기억하고 어떤 것은 망각하고. 깨어 있는 상태와 백일몽의 상태가 헷갈리고. 그러며 과거는 짐작할 수 없는 어떤 형태로 남아 매 순간 다른 방식으로 내용이 바뀐다. 언제 어떤 식으로 불쑥 나타날지 알 수 없어서 과거는 미래보다 더 불확실하게 남아 있고, 결국 예측할 수밖에 없는 과거.

아냐, 아냐, 이렇게로만 설명할 수 없어. 영화를 읽는 내내, 짜부라질 것만 같은 느낌에 빠졌어. 이 영화는, 왠지 영화관이 아니라 혼자 있는 방에 웅크리고 앉아서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그래도 또 영화관에서 볼 거야. 꼭 볼 거야.

이 영화를 읽으며 느낀 감정들은 그때 풀어 놓을 거야. 그동안은 몸 안에 간직해야지.

4. 몰랐는데, [드랙퀸 가무단]의 그 감독이라고 한다. 오오.

강의 이후

이틀 전, 아는 사람과 얘기를 나누다가, 며칠 전 루인이 강의실 강의를 했다고 들었다며, 강의가 좋았다고 (그 수업의)선생님이 말하더라고 했다. 물론 이런 평가는 의례적인 말일 수 있고(비록 루인의 경우, 너무 많은 얘기를 의례적인 인사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지만) 인사치레로 한 얘기일 수도 있다. 그런데 특강 이후, 수업게시판에 실명으로(익명게시판이 있음에도) 5명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다는 얘길 적었다고 하더라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강의가 아주 나쁘지는 않았구나 했다.

여성학 혹은 페미니즘 강의나 수업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면 종종 메일로 커밍아웃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길 듣곤 한다. 물론 어떤 선생님은 이런 경험이 전혀 없다고 한다. 수업시간의 논의 방식, 학생이 강사에게 가지는 신뢰 등으로 생기는 현상이다. 수업의 마지막 한 시간으로 트랜스젠더나 퀴어, 동성애를 다룬다고해서 학생들이 강사에게 커밍아웃을 하지는 않는다. 전체적인 논의 구조를 어떤 식으로 가지고 가느냐가 쟁점일 테고, 그래서 학생이 커밍아웃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그 강사를 어느 정도 신뢰할 수도 있다는 걸 뜻한다.

그날, 특강 때 했던 말 중에, 루인이 나름 중요하다고 여기며 한 말은 두 가지:
1. 상대방의 외형을 안다는 것이,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첫 번째 숫자를 안다는 것이, 상대방의 외부성기 형태를 안다는 것이 무엇을 안다는 건지 고민했으면 해요.
2. (질의 응답 중에, 1번을 부연설명하며) 지금 이 강의실에도 말하지만 않았을 뿐,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들이 있어요. 소위 남성이라고 혹은 여성이라고 여겨지는 외형으로, 또한 그런 외형에 따른 어떤 젠더 역할을 수행하곤 있지만, 말하지만 않았을 뿐, 사회가 요구하는 성별이나 성별역할과는 다른 식으로 자신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1번의 얘기는 다른 곳에서도 한 적이 있는, 아마 어느 강의를 가건 반드시 할 얘기이다. 2번은 맥락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할 수 있는 내용이다. 어떤 자리냐에 따라 말하는 내용의 수위를 조절할 필요가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해서, 그것도 단 두 시간 특강강사(맨날 누군가의 강의를 들으러 가는 입장인 루인이 스스로를 특강”강사”란 식으로 부르는 건 참 민망하네요;;)의 말일 뿐이기도 하기에, 수업 반응은, 횡설수설이었다 정도로 예상했다.

그래서, 그날 특강 이후 다섯 명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다는 글을 적었다는 얘길 들었을 때, 아주 횡설수설하며 혼자서 쑈만 하고 온 건 아니구나, 했다. 사실 특강을 끝내며 메일주소(runtoruin@gmail.com)를 남겼는데, 한 통의 메일을 받기도 했다. 며칠이 지난 어제야 답장을 했는데, 그건 서울여성영화제 기간이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메일의 내용이 그 자리에서 답할 수 있는 내용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쁜 건, 커밍아웃 혹은 성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다는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대충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루인과는 또 다른 결로 얘기할 텐데 “안다”고 할 수는 없다). 물론 루인이 그날 커밍아웃을 했기에 가능한 반응일 수도 있지만, 두 시간으로 끝나는 특강강사의 커밍아웃 만으로 수업게시판에 자신의 고민을 적을리 만무하다. 기본적으로 수업을 담당하는 강사를 신뢰한다는 전제 하에 루인이 촉매제 역할을 했으리라. 그리고 바로 이러한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기뻤다.

앞으로 계속해서 경험할 지도 모를 일들이고 이제 시작일 뿐이고, 앞으로 더 많은 상황들 속에서 더 많은 고민들을 해야 한다. 그래도 시작에서의 이런 경험은 기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