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사랑, 우울증

진이정은 지장경에서 그리움이란 단어를 발견하고 울었다고 했다. 보살도 그리움에 울었다고 했던가, 그리움으로 윤회한다고 했던가….

북향인 사무실에서 버틀러를 읽다가 (짝)사랑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을 발견하고, 상당히 위로 받았다. 그러며 진이정이 떠올랐다.

만약 무언가를, 발달단계처럼, 어떤 단계로 나눠서 설명해도 괜찮다면, 우울증을 사랑의 “완성”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울증이 자기처벌이 아니라 자기보상의 형태라면, 대상을 상실한 혹은 대상에게 다가가길 포기한/고백하지 않는 사랑의 우울증은 가장 멋진 형태의 “보상”임을 깨달았다. 당신과 내가 합쳐진 상태, 더 이상 당신과 나를 구분할 수 없는 상태. 더 이상 그리워할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은 상태…. 하긴, ㄹㄲ은 (“이성애”) 사랑 자체가 우울증이라고 말했지만[물론 이건 전후 맥락을 몽땅 무시하고 쓴 것임].

삶을 이끌어 가는 힘은 그리움인 것 같다고…. 그리움만이 우리를 윤회케 한다고 했던가, 기억이 잘 안 난다. 당신을 그리워하는 힘, 우울증의 윤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관련 있을 법한 글: 프로이트의 애도/슬픔과 우울증, 그리고 루인
관련 글: 짝사랑은 성적 지향성이 될 수 없을까

키워드: 짝사랑, 짝사랑이라는 섹슈얼리티

어제 저녁, 학부조교를 할 분들과 명목상의 회식(이라고 하기 보다는 한 학기 잘 부탁한다는 자리)을 하는 도중에 갑자기 감정선이 툭, 끊기면서 떨어졌다. 시작이다.

영화를 읽으러 갈 예정이었다. 스폰지하우스에서 하는 [바벨]을 읽으러 갈까 했는데, 몸이 자꾸 가라앉았다. 저녁을 먹고 영화관으로 가려는 길에, 그냥 돌아섰다. 명목은 다음 주 월요일에 있는 세미나의 발제 준비를 해야지, 하며.

가방과 파일을 다 챙겨 나왔지만 다시 연구실(?, 사무실?)로 돌아와선 한 동안 멍하니 웹서핑만 했다. 무언가에 집중이 될 몸이 아니었다. 아니다. 그럴 때의 몸은 집중을 하면 너무 잘 되거나, 자꾸만 집중이 끊기면서 다른 일을 하려거나. 그러니 그럴 때 글(책이라고 적었다가 글이라고 고쳤다)을 읽으면, 글의 여백에 엄청난 양의 메모를 쏟아 내거나 글 진도는 안 나가고 다이어리에 엄청난 양의 메모를 쏟아 내거나.

다음 주 월요일에 있을 세미나의 발제는 정말 얼결에 맡았다.(변혜정쌤과 하는 몸세미나,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 2장 발제) 발제를 맡기 전만해도, 이번 주의 계획은 다른 글을 신나게 읽거나 영화관을 전전하는 거였다. 얼결에 발제를 맡았고 그리하여 발제할 글을 읽어야 했다. 그 글을 읽기 위해선 6편의 다른 글을 더 읽어야 했기 때문에 내키지 않는 발제였다. 사실 이번 발제를 하기 전에 이미 두 번 혹은 세 번은 읽은 글이었고(그랬기에 이 글과 더 재밌게 놀기 위해선 최소한 6편의 글을 더 읽어야 함을 안 것이다), 그러며 부가적으로 필히 읽어야 하는 글 중 4편은 이미 읽은 상황이었고, 2편만 더 읽으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언제나 그렇듯 앓는 소리를 내며 혼자서 징징거렸다. 꾸에~

하지만 이 글을 읽는 것이 싫으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발제를 맡기 싫어하는 건 글을 읽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발제문을 써야 한다는 그 부담감, 잘해야 한다는 욕심, 그리고 종종 루인의 발제문은 토론시간에 더 많은 논의를 생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싫어서다. 이번 발제가 좋았던 건, 이런 발제를 빌미로 미쳐 읽지 않은 두 편의 글을 마저 읽을 수 있었고, 발제를 빌미로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다시 읽으며 이전에는 지나쳤던 부분을 다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이 글과 부가적인 6편 외에도 관련해서 세 편 정도의 글을 더 정리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발제할 글을 반 밖에 못 읽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이건 루인의 성격이 괴팍해서(지금은 꼭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발제를 맡으면 예전에 읽었건 말건, 이미 상당한 메모와 예전에 쓴 발제문이 있건 말건 새로 읽고 새로 발제문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기인한다. 사실 이건 너무도 당연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한 달 전에 쓴 발제문 혹은 글에서 나타나는 루인의 몸과 지금 쓰는 글에서 나타나는 루인의 몸은 너무도 다른데 어떻게 예전에 쓴 글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겠어.

그러면서도 툭, 떨어진 감정은 들쭉날쭉 움직이고 그래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태다. (조금 전 읽은 키드님의 글과 관련해서 성격이 돌변했던 시절과 관련한 글을 써도 재밌겠다. 흐흐.) 웃기게도, 아주 드문 상황인데, 다이어리와 글의 여백 모두가 메모가 쏟아지고 있는가 하면, 갑자기 아무 것도 안 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도 요 며칠 조금 혹은 아주 많이 기쁜 일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이런 기쁨은 동시에 슬픔을, 쓸쓸함을 동반한다. 기쁘고 불안하다. 기뻐서 좌절(너무 심각하지는 않은 의미로)하고, 그러면서도 좋아하고 괜히 웃다가 다시 가라앉는다. 기쁘다가 불안하고 기쁘다가 슬픈 것이 아니라 기쁜 동시에 불안하고 슬프고 좌절한다. 기쁘기 때문에 슬프고 불안하고 좌절한다. 이 기쁨이 곧 없어질 거라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기쁨의 이유가, 설렐 정도로 기쁜 이유가 동시에 불안과 슬픔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간에 잘 어울린다. 쓸, 이란 단어는.

책, 욕심: 제본과 출판본

어제, 오늘, 이틀 사이에 책을 12권이나 주문했다. Yes24와 교보문고에서 외국도서 주문이 되고, 마침 찾는 책들이 있어서, 별 망설임 없이. 마치 책을 고르고 결제하는 데 신들리기라도 한 듯;;; 어제 저녁엔 4단짜리 책장을 하나 새로 샀다. 책상 앞엔 압도할 것만 같은 높이로 책이 쌓여 있다. 필요 이상의 욕심들.

한때 이런 욕심으로 제본을 한 적이 있다. 다 읽지도 못하면서 언젠간 볼 거라는 막연한 욕심 하나로 책을 제본했다. 학교 도서관을 통해 주문하고 책이 도착하면 제본하고, 도서관에 있으면 또 빌려서 제본하고. 나중에 다 필요할 테니 미리미리 제본하면 도움이 될 거라고 합리화했다. 하지만 그렇게 제본한 책들을 다 읽으려면 몇 년이 걸리는 분량이다. 영어를 잘 못하는 루인은 25~30페이지 분량의 논문 한 편 읽는데 하루가 걸린다. 물론 조금씩 속도가 빨라지고 있긴 하지만(지금 이것도 속도가 많이 빨라진 편이다) 문체가 익숙하지 않거나, 문맥을 파악하지 못하고 헷갈릴 경우엔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책을 제본했다. 제본한 책이 손에 들어오면 괜히 뿌듯했다. 그렇게 쌓여갈 즈음 불안했고 바보 같다고 느꼈다. 다 읽지도 못 할 거면서.

물론 이 책들은 석사만 끝나면 더 이상 안 볼 책들이 아니다. 그리고 석사논문에만 사용하려고 제본하는 것도 아니다. 평생 공부할 거라면 당장 안 읽어도 상관없지만, 이렇게 쌓여가는 책들을 보며, 또 다시 겉멋 들기 바쁘다는 걸 느꼈다.

그런데 또 책을 왕창 주문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제본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불법이라서? 아마 그럴 지도 모른다. 그저 읽는 것으로도 좋았고 그래서 책 속의 사진들이 조금 흐릿해도(그래도 루인이 제본을 맡기는 곳에선 상당히 선명하게 잘 해준다) 괜찮았다. 그저 읽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미안함이 들기 시작했다. 제본 하는 것을 너무 당연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카피라이트(copyright)니 카피레프트(copyleft)니 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불법이다 합법이다, 란 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감정들.

물론 제본한 가격과 출판본을 살 때의 가격이 별로 차이가 없다는 것도 이런 변화에 한몫했다. 그렇다고 제본을 아주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신용카드가 없으니 아마존에서 직접 살 수 없고 학교도서관을 통해서만 주문할 수밖에 없는 책이 아니라면, 국내사이트를 통해 주문할 수 있는 책이라면, 출판본을 사야겠다는 몸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면서 또 무리한 욕심을 내고 있다.

이렇게 주문한 책 중엔 이미 제본을 한 책도 있고, 그러니 이미 메모들로 가득한 책들을 두고서 출판본을 새로 주문하고 있다. (이 기분은 오래 전에 테이프로 구매한 앨범을 CD로 새로 사야 하느냐 그냥 버틸 것이냐와 비슷한 기분이기도 하다. 그다지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아, 그러고 보면 책에 낙서를 절대 하지 않던 습관을 버리면서 이것이 가능한지도 모를 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책에 낙서는커녕 조그만 구겨짐도 못 참았다. 그래서 5번을 읽은 책을 누군가는 새 책이냐고, 한 번도 안 읽었느냐고 묻기도 했다. 제본은 이런 점에서 편했다. 뭔가 편하게 낙서를 할 수 있다는, 글을 마구마구 적어도 괜찮다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출판본에도 메모를 잘 남기는 편이다. 아직도 많이 망설이고 매번 깜짝깜짝 놀라긴 하지만.

아, 뭔가 이야기가 이상하게 흐른다;;; 그리고… 하고 싶은 얘기를 까먹었다;;;;;;;;;;;;
뭐, 새삼스러운 일이라고… 캬캬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