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멸렬

그러고보면 지리멸렬이란 단어는 참 아름다운 말이야. “갈가리 흩어지고 찢기어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됨.” 그래. 잡을 수 있는 몸이 어디있겠으며 잡을 수 있는 시간이 어디있겠어.

마음 심(心)이란 한자는 단 네 개의 획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모두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지. 사실 그래. 마음을 하나로 다잡아 먹는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꿈이야. 언제나 흩어진 것이 마음이고 몸인 걸. 그래서 지리멸렬이란 말은 참 예뻐.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 없고 언제나 그렇게 변화하는 상황 속에 놓여 있음을 뜻하니까.

지리멸렬. 지리멸렬.

똑똑하면 채식주의자가 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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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과 관련한 이야기를 할 때, 루인이 가장 비판하는 내용은 건강상의 이유와 동물권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채식을 하면 더 건강해진다는 말, 채식이 인간의 몸에 더 적합하다는 말은 채식에서 발생하는 계급과 어떤 나라에선 음식쓰레기가 넘치지만 어떤 나라에선 기아로 인한 사망자가 상당한 국제정치학(오오, 거창한 용어를 사용했다 -_-;;;)을 무시하는 것이다. 동물권은 누가 무엇을 생명으로 규정하는가 하는 문제를 무시하는 것이며, 그래서 동물권을 얘기하며 채식이 더 윤리적이라는 말은, 과대망상일 뿐이다.

그런데, 드디어 채식의 우생학 논리까지 나왔단 말이냐!!! 똑똑한 것과 공부 잘하는 것은 상관이 없고 똑똑한 것과 수능시험을 잘 치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학벌이 곧 한 개인의 모든 능력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인 한국사회에서 서울대 법대 출신은 상당수가 채식주의자라도 된다는 의미냐? 비건[vegan]이면 채식주의자 중에서도 가장 똑똑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냐?

희대의 코미디라고만 간주하기엔 너무도 끔찍한 상상력이야.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

들뜬 몸과 즐거운 몸으로 모인 사람들의 모임이 어느 순간 사라지는 건 슬퍼. 그 사라짐이 어떤 격렬한 논쟁이 있었던 결과거나 이제 끝이라는 말과 행동의 결과라면 떠올리는 느낌이 달랐겠지. 하지만 그 모임은 그냥 공중에 붕 떠서는 흔적 없이 사라졌어. 끝났다는 얘기도 없지만 남아 있지도 않음.

이랑을 떠올릴 때마다, 몸 한 곳이 텅 비는 느낌과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느낌을 받아.

다시 시작할 순 없겠지만, 정말 다시 시작할 수 없는 걸까?

항상 다시 시작할 수 없다는 식으로 단정하며, 이제는 스팸 밖에 찾지 않는 이랑 블로그에 들리곤 해. 하지만 다시 시작할 수 없다는 건, 과거의 구성원들을 다시 모을 수 없기 때문이겠지. 꼭 과거의 구성원들로 새로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니지. 이랑이란 이름을 새로운 구성원들로 ‘새로’ 시작할 수도 있을 텐데.

…흔적 없이, 아니 맺음 없이 흩어지는 건, 그래서 슬퍼. 언제든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착각에 젖지만 이것이 착각임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