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과 우울증

호르몬 투여를 시작하면 우울증이 극심해진다고 한다.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기존의 몸이 가지고 있던 균형이 깨지면서 발생하는 것일 수도 있고, 트랜스여성의 경우 호르몬 자체가 그렇다는 얘기도 있다. 이른바 여성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에스트로겐이나 프로게스테론이 우울증의 한 원인이란 얘기다. 어디까지를 믿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우울증이 심해진다는 증상은 거의 공통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그나저나, 아직은 아니지만, 그럼 루인은 어떡해?

[기사]50대 中 농부 성전환 수술

아버지가 고모, 남편은 누나?…50대 中 농부 성전환 수술 시끌
50세 중국남성 “여자가 되고 싶어요”

뉴스를 볼 때면 “이색적인” 내용으로 나오는 건 주로 중국(혹은 인도)이란 인상을 자주 받는다. 사람 수가 많은 만큼이나 ‘당연한’ 일이겠지만 종종 단지 이런 이유에서가 아니라 한국이 중국에 가지는 어떤 열등감을 이런 식으로 분풀이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기도 한다. 확인한 건 아니지만, 일테면 동북공정과 관련한 일이 두드러지면 중국 발 “이색적인” 기사가 뜬다던가, 하는 식으로. 중국과 관련한 기사는 거의 모두가 이런 식이다. 사실 미국이나 유럽이 아니라면 외국과 관련한 기사는 거의 모두가 이런 식으로 그 나라에 대한 한국식 판단에 근거해서 보도하는데(일테면 이슬람과 관련해선 전쟁 아니면 차도르다) 이건 언론의 기사보도 형태인지 포털사이트의 정책인지는 모호한 구석이 있다. 이런 기사들이 가십거리로 회자되기 쉬우니까 이런 기사를 톱기사로 올리는 지도 모를 일이다.

위에 링크한 기사를 읽으며 ‘재밌다’고 느낀 건, 50대라는 것과 결혼해서 아이가 둘 있다는 것. 한국이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사실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내에서도 결혼해서 아이가 있다면 상당한 비난이 따른다. 물론 이건 지금의 사회가 “진성트랜스젠더”라는 검열을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인데, 현재 대법원의 인식 역시 결혼한 사실이 없거나 자녀가 없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인식은 단순히 법원의, 법관들의 인식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트랜스젠더에게 요구하는 어떤 인식들을 반영한다. 트랜스젠더-트랜스여성이라면 천생여성이어야 하고 트랜스남성이라면 천생남성일 것을 요구하는 것. 그래서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가졌다는 건 일종의 이성애남성으로서 자신을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결혼과 자식이라는 가족제도의 강박이 심한 사회에선 트랜스여성이어도 이성애남성’처럼’ 결혼해서 아이를 가질 수도 있다. 게이남성들도 그러하고 레즈비언여성이나 트랜스남성 역시 그러하다. 비극은 결혼을 했다가 나중에 정체성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가족제도에 있고 서로에게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정상가족이라는 환상이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와 공포가 없고 동성애 혐오와 공포가 없다면 결혼해서 커밍아웃을 한다고 해서 ‘비극’이 될 이유는 별로 없을 것 같다. 물론 성적 지향성 때문에 문제가 생기긴 하겠지만.

50대에 성전환수술을 한다는 말도 즐겁다. 보통 어릴 때 빨리 호르몬이라도 시작하라는 얘길 많이 한다. 한 편으론 수긍을 못 할 말도 아니지만 이건 남성은 이러이러한 모습을 가지고 있고, 여성은 이러이러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사회적인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여성은 이마다 살짝 나온 곡선을 그린다거나 남성은 어깨가 넓다든가 하는 식으로. 어릴 때 호르몬을 시작할수록 좋다고 말하는 건 2차 성징으로 몸이 변화를 시작해서 자신이 ‘원치 않는’ 몸의 특징이 나타나지 않게 하라는 의미도 가진다. 하지만 여성과 남성(이란 어떤 확고한 것이 있다면)은 단일한 몸의 특성을 가지나? 이런 판단은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내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트랜스젠더가 아니라고 자신을 인식하는 이들이 트랜스젠더를 바라 볼 때 더 강하게 작동한다. 왜 트랜스여성은 “하리수”처럼 예뻐야 하는가. 하리수에게 이른바 남성적 특징이라고 불리는 어떤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뜰 수 있었을까?

그냥, 이 기사들을 접하며 이런저런 몸앓이를 했다.

아름다움

그 앨범을 듣기까지 앨범이 아름다울 수 있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 앨범이 처음 산 앨범도 아니고 단지 몇 장 산 앨범 중의 한 장도 아니었다. 몇 백 장의 앨범 중의 한 장이었고, 그들을 접하기까지, 접하고 나서도 열렬히 좋아하는 가수는 따로 있었다. 14장의 정규앨범에 라이브나 그 외의 앨범까지 20장에 가까운 앨범의 모든 곡을 다 외우는 가수도 있었다. 그 가수의 노래는 아무 부분이나 1초만 들어도 어느 앨범의 몇 번째 곡이란 것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했고, 매 앨범에 열광했다. 그러나 앨범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든 건 그 그룹의 그 앨범이 처음이었다.

앞선 앨범을 800만 장 이상 판매한 그룹의 다음 앨범이었다. 그룹의 일원 중 한 명을 해고한 상태였고 그래서 음악의 방향은 수정이 불가피했다.

언젠가 한 기사에서 읽은 내용: 일본에서 라이브를 하는데, 미국인으로 추정하는 팬이 일본에까지 따라왔다고 한다. 그 미국인으로 추정하는 사람은 라이브 내내 “일렉트로닉!!!!!!!!!!”을 외쳤지만 그런 외침은 무시되었고 공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쿠어스틱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그 앨범으로 공연 방식이 바뀌었다.

앨범 홍보와 투어가 끝날 즈음이었나, 그룹의 리더는 인터뷰를 하는 중에 대충 이런 말을 했다고 읽었다: 앨범이 대박이 났으면 천재라고 불렸겠지만 바보가 되었다고.

그 앨범의 변신에 많은 사람들이 당황했다. 논쟁적이었고 새로울 것 하나 없는 태만한 앨범이란 평에서부터 보컬의 신경질적인 톤이 사라졌다고 아쉬워하는 목소리들까지. 다섯 번째 앨범이 워낙 산만한 앨범이라 그렇지, 자칫 최악의 앨범으로 평론가들에게 평가 받을 뻔 했다. 하지만, 루인에게 이 앨범은 가장 아름다운 앨범이자 묘하게도 처연한 슬픔이 느껴지는 앨범으로 남아있다.

이쯤이면, 아니 두 번째 문단만 읽고도 누구의 무슨 앨범인지 짐작한 사람들이 많으리라 느낀다. The Smashing Pumpkins의 [Adore]. 내성적이면서 어두운 느낌이 묻어나는, 기묘하게 처연한 느낌과 억제하는 신경질.

…요즘 이 앨범을 자주 들으며 위로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