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언어부터 바꾸길

종종 트랜스젠더하면 기존의 이성애나 남/여 구분을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듣곤 한다. 물론 질문자에 따라 좀더 섬세하게 하거나 다소 거칠게 하거나,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그다지 다르다고 느끼진 않는다.

사실 이런 식의 말들은, 레즈비언에게, “다 좋은데 부치-펨 관계는 이성애모방 아니냐”는 말과 마찬가지로 틀에 박힌 반응으로 느낀다. 퀴어든, 동성애든, 트랜스젠더든 상관없는데, 그래도 한 마디 훈계를 하겠다는 태도. “나는 이렇게 비판할 수 있을 정도로 안다”는 태도로 느껴진다고 할까.

이런 대답에 대한 비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냥 간단하게 대답하면, 그럼 당신은 “강호동”이 당신 옆을 지나갈 때, “여성”으로 대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려 한다. 자신의 태도는 조금도 바꾸지 않은 체, 너무도 쉽게 “남성” 아니면 “여성”이라는 구분을 사용하면서, 거의 모든 설명을 양성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 이런 식으로 비난하는 말을 들으면, 사실 그저 웃기기만 할 뿐이다.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상대방이 당신에게 커밍아웃을 하기 전까지(물론 당신도 상대에게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 ‘이성애자’이기 때문에 커밍아웃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는 것만큼 오만과 착각도 없다) 상대방을 멋대로 재단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소통을 시작하는 것, 다만 이 뿐이다. 물론 이건 출발점일 뿐이지만.

이름붙이기, 명명, naming

요즘의 고민 중 하나는 누가, 왜, 어떻게 명명[naming]하는가, 이다. 왜냐면 어떤 사람 혹은 현상을 명명하는 과정을 통해 모순을 만들어 내고, 그것이 모순이라고 규정해버리는 지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루인을 포함은 상당수의 트랜스들은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경험하는 갈등과 경합 보다는 트랜스젠더라는 그 언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갈등과 경합이 더 많다고 얘기한다. 주민등록번호 체제를 통해 할당 받은 성별과 루인이 인식하는 성별이 일치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불일치라고 여긴 적이 별로 없었고, 그런 루인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많은 트랜스들이 좋아하는 상대의 성별을 통해 자신의 젠더정체성을 설명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럴 때도 루인은 루인이 인식하는 성별과 상대의 성별을 통해 어떤 “모순”이 있다고 여기거나 그것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즉, 이전에 좋아한 사람을 그때는 ‘이성애’로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면 ‘레즈비언’으로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고 이것이 ‘모순’이거나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런 지점들이 “모순” 혹은 “갈등”과 “문제”로 다가온 건, 페미니즘을 통해 젠더라는 용어를 배운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즉, 트랜스젠더라는 용어와 루인이 만나고 그것을 일치 혹은 그것과 경합하는 과정에서 겪은 갈등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명명한다는 건 설명하기 위한 방식이라기보다는 그것을 모순으로 만드는 과정이라는 몸앓이를 하고 있다. 물론 모든 명명의 과정이 이런 건 아닌데, 어떤 명명은 자신을 해명하고 설명하며 자신을 주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명명은 자신의 위치를 부정하거나 자신의 “모순 없음”을 “모순 있음”으로 만드는 과정임 역시 부인할 수 없다고 느낀다.

명명의 폭력성은 너무도 많아서 진부하리라 여기지만, 페미니즘의, 트랜스젠더 정치학에서의 명명 역시 폭력적일 수 있음을, 그런 과정을 통해 무엇을 삭제하고 무엇을 예외나 이상한 것으로 만드는 지를 함께 고민할 필요성을 다시금 고민한다고 할까. 혹은 도대체 왜 명명하고자 하는 것인지, 그 출발점부터 다시 물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루인의 고통과 쾌락은 트랜스라는 언어를 만나면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축이 필요할까.

루인은 대체로 저축을 안 하거나 못하는 편이다. 루인의 생활 방식으로 따지면 저축을 못 할 이유가 없는데, 하루 두 끼에 거의 종일을 학교 연구실에서 보내기 때문에, 딱히 돈을 많이 쓸 생활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루인은 저축 한 푼 없는 한달살이 생활인데, 영화를 읽는다거나 책을 산다거나 해서, 때론 적자(가 불가능함에도) 인생이라고 궁시렁 거리기도 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저금을 할 필요성이 생겼다. 오동구의 표현을 빌자면 500만원이면 세상이 뒤집히듯, 뭐, 그런 셈이다.

당장은 50~100만원 정도, 좀 더 장기적으로는 300만 원 정도. 물론 루인의 성격에 저축할 인간은 아니고 맨날 로또, 로또 하지만 로또를 할 인간도 아니다. 그런데 루인의 성격 상, 저축을 하려고 작정하면 독하게 하기도 한다. 문제는 당장 살 책들-논문을 준비하며 읽어야겠다고 욕심 부리는 책들이 잔뜩 있어서 쉽지가 않다는 것.

곧 시작할까? 초등학생 시절 이후로 첫 저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