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이연 여름 강좌

비가 많이 오던 어제 오후, 학부시험기간이고 시험조교 일이 있어 나갔던 길에 여이연 강좌를 신청했다. 7개. 총 9개의 강좌를 개설했는데 2개를 제외하고 모두 듣는 셈이다. 하나를 더 들을까 갈등하고 있다.

지난 화요일 마지막 수업을 하고 뒷풀이 자리에 갔을 때,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에게 여이연 여름 강좌에 가느냐고 얘길 꺼냈다. 그러다 루인은 7개 들을 예정이라고 했고, 반응은 방학시작하고 새로 수업 듣는 거야? 였다. 후후후. 대충 계산하면 거의 한 학기 수업분량과 별로 다르지 않다. 시간으로 따지면 한 학기 수업과 거의 일치하거나 살짝 넘는다.

예전에 지나가는 글로 8월에 일본에서 하는 썸머소닉페스티발에 가고 싶다고 쓴 적이 있다. 굳이 일본이 아니어도 어딘가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기에 여행경비를 모으고 있었다. 그런데, 하하, 올 여름은 여이연으로 여행 간다. 후후후. (작년 여름에도 그랬다;;;)

언제나 늦되기 때문에, 확실한 건 아니지만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 중에선 루인이 여성학을 공부한 시간이 가장 적을 것이다. 학기 수로 아직 5학기도 안 된 셈이다. 물론 이런 구분은 기존의 학제를 기준으로 한 것이기에 별 의미를 못가진다. 루인의 경험으론 이른바 대학을 졸업하고 스스로 많이 배웠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똑똑했고 이른바 수업을 들었다고 말하며 자기는 좀 안다고 하는 사람 중에 (루인의 기준으로) 무식한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도 고작 5학기 밖에 안 배웠으니 무식하다고 말하는 건, 모순이 아니라 이 말의 맥락이 학생이란 직업을 가진 루인의 현재 위치 때문이다. 물론 여성학을 몇 학기 배웠느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텍스트와 어떻게 노느냐가 관건이지. (석사나 박사 과정이면 좀 똑똑하고 많이 알 거란 환상은, 작년 가을, 학부생일 때 대학원 수업을 청강하며 산산이 깨졌다. 그 충격에 대학원 진학을 관둘까, 하는 고민을 일으킬 정도였다.)

강좌 신청했다면서 이런 얘기가 튀어나온 건, 루인의 늦됨을 말하고 싶어서다. 언제나 남들보다 늦고 뒤처지지만 그래도 이런 루인이 좋다. 늦고 오래 걸리지만 그 만큼 다른 사람들은 경험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사실 더 중요한 수확이라면, 나이 강박이 덜하다는 것. 어떤 사람은 자신이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하는 말을 한다. 이 나이에 아직 석사논문도 못쓰고 있다면서. 그 사람은 루인보다 늦게 태어났다. 그런 반응을 접할 때마다 뭘 서두르느냐고 말한다. 천천히 하면 되지. 나이 40이 넘어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면 또 어떠냐고. 정희진 선생님은 서른 중반에 석사 논문을 쓰셨다고.

상당히 힘들 것을 예상하고 있고, 하고 싶은 다른 계획과 같이 하다보면 학기 중의 일정보다 더 빠듯하리란 걱정도 있지만, 7개 강좌를 선택한 것은, 그 모두가 듣고 싶어서기도 하고(사실 9개를 다 듣고 싶다) 루인의 늦은 성장을 위한 소중한 발판이 될 거란 믿음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한다, 는 믿음. 아니다. 이런 믿음 같은 거 없었다. 그냥 하고 싶었다. 그 뿐이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내다보면 어떻게 될 거란 INFP다운 착각에 젖어 있을 뿐.

아무튼, 신청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이연이었다. 루인이 7개 신청한 거 보고 긴급회의에 들어갔다고, 결정하길 3개 강좌 이상을 신청하면 할인해 준다고. 첫 강좌에 가서 돈을 받기로 했다. 책 사야지. 냐핫.

[2006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여름강좌]21번째

#아침부터 지금까지 초고를 쓰고 있었어요. 후후. 또 스팸덧글이 왔는데 지울 시간이 없어요. 흑흑. 곧 건물 문들 닫거든요. 그럼에도 지금 이 글을 쓰는 건 오늘 하루의 시간 중에 너무 기쁜 소식이라서요. 후후.

홈페이지의 게시글은 여기로
좀더 깔끔한 편집은 내일이나 모레로.. 흑흑.

2006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여름강좌 -21번째

스무 한 번째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여름강좌에 초대합니다.
올해 여름은 어느 해보다 장마철이 일찍 시작되고 길다고 하죠? 아마도 강좌 기간 내내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좁은 다락방은 비오는 날 나름 운치있는 곳입니다. “멋진 공간”에서 멋진 페미니스트들을 만날 수 있는 괜찮은 기회!

[#M_ 성별 문제 (Gender Trouble) 그 이후 ― 이원적 성별에 대한 재고와 도전들.| 성별 문제 (Gender Trouble) 그 이후 ― 이원적 성별에 대한 재고와 도전들.|

본 강의는 쥬디스 버틀러의 “수행적 성별” 개념이 소개 된 이후 어떻게 여성/성
별 이론의 지형이 변화되고 발전되어 왔는지 “여성의 남성적 성별”을 중심으로
논쟁들을 정리하고 탐구한다. 새롭게 부상한 성별 주체들이 어떻게 규범적 성
별과 본질주의적 이원론에 도전하고 대안적 성별들을 실험하는지 유물론적 페미
니즘과 퀴어 이론, 여성 성적 소수자의 하위문화 실천과의 대화를 통해서 검토
하고자 한다.

<1강> 이론적 개괄 : 성별 수행성 이론 이후의 성별에 대한 의제와 토론.
<2강> 가려진 성별 위반 : 여성의 남성성 (Female Masculinity).
<3강 > 무대위에 별난 성별들: Drag King (여성의 남성성) 공연의 의미와 분석.
<4강> 여성의 성별전환주의(female to male transgenderism) 의 정치학
<5강> 미국 여성동성애자 TV 극 “L 단어” (The L Word) 거슬러 읽기:
여성의 남성성에 대한 재현을 중심으로.

강사 : 지혜 (공연학/문화학 연구자)
일시 : 6월 26일-30일 오후 7시_M#]

[#M_ 자연, 여성, 노동: 탈식민의 문화정치를 위한 맥락 잡기 I |자연, 여성, 노동: 탈식민의 문화정치를 위한 맥락 잡기 I |

노동이 문화이자 정치이며 탈식민이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생산과 임노동을 지탱해온, 생명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들과 자연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토대’로 인식하는 새로운 정치경제학이 필요하다. 이 강좌에서는 스피박의 텍스트들을 통해 여성노동에 대한 광범위한 재개념화 작업의 맥락들을 잡아본다.

<1강> 맑스주의적 생산․ 소외 이론에 개입하기:󰡔다른 세상에서󰡕 5장
<2강> 생산/재생산 노동 분리의 해체:󰡔다른 세상에서󰡕 14장
<3강> 성노동, 자연, 민족-국가: 󰡔교육기계 안의 바깥에서󰡕 4장
<4강> 여성노동의 다양한 형태들: 󰡔포스트식민 이성비판󰡕 4부
<5강> 노동과 물질에 대한 새로운 정의: 몸의 유물론적 페미니즘 시각

강사 : 태혜숙 (대구가톨릭대 교수)
일시: 7월 10일-7월 14일 오후 3시_M#]

[#M_ 처음 만나는 정신분석 2| 처음 만나는 정신분석 2|

지난 겨울 여이연에서 처음 만났던 정신분석의 또 다른 얼굴과 직면해 보는 시간. 정신분석의 기본적 매커니즘을 설명해주는 무의식과 꿈의 원리로 내 삶을 다시 들여다보자. 무심코 지나쳤던 많은 것들에서 삼엄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실수에 담긴 의미,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의 원리, 잘못된 인연인 줄 알면서도 비슷한 선택을 일삼는 어리석음의 기원, 우울증과 강박증의 의미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귀한 시간을 제공할 것이다.

<1강> 무의식
<2강> 꿈과 실수행위
<3강 > 강박증, 부친살해
<4강> 반복강박과 죽음충동
<5강> 우울증

강사 : 구번일 심혜경, 허윤(여성문화이론연구소,) 오은경(동덕여대 교수), 조현순(성신여대 강사)
일시 : 7월 10일-14일 오후 7시_M#]

[#M_ 생명윤리를 넘어선 과학과 여성주의| 생명윤리를 넘어선 과학과 여성주의|

이제 좀 지겹게 느껴질 정도지만, ‘황우석 사태’는 여성들에게 많은 질문과 과제를 드러내주었습니다. 황우석 사태를 통해 ‘여성’은 신체를 침해당한 피해자로 그려졌고, 생명공학에 대한 여성주의적 대응은 ‘고지된 동의(informed consent)’라는 생명윤리법상 규정이 철저히 지켜질 것과 가능한 한 안전한 난자채취의 요구, 난자 기증시 기회비용보상과 부작용에 대한 보상등 절차상 정의를 요구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번 강좌에서는 생명윤리를 말하기 앞서 ‘생명’이라는 단어가 어떤 역사적/정치적 함의를 지니는 지 살펴보고, 기존 생명윤리 논의의 한계를 일상의 눈높이에서 짚어보며, 인권’보호’의 논리를 넘어서 생명공학에 여성주의적으로 개입할 방법을 생각해봅니다. 이를 통해 생명공학을 여성주의적으로 전유하며 신나는 미래를 열어갈 길을 함께 찾아보려 합니다.

<1강> 생명윤리와 일상의 윤리: 고지된 동의(informed consent)의 한계
<2강> 생명공학과 특허문제: 정보로 번역되는 몸
<3강 > ‘Bio’의 정치: 생명, 국가, 사회, 자본
<4강> 포르노화 된 생명이미지: 배아, 태아 그리고 여자
<5강> 환원론 너머의 생물학

강사: 백영경(연세대강사), 박소영(여/성이론 편집위원)
일시 : 7월 18일(화)~22일(토) 오후 3시 _M#]

[#M_ 안티고네와 주이상스 | 안티고네와 주이상스 |

본 강좌는 안티고네에 대한 다양한 해석 중에서 안티고네를 현대의 정신분석의 윤리학에서 쟁점이 되는 여성적 주이상스의 문제와, 퀴어 이론의 정치학적 쟁점이 되는 퀴어 주체와 연결하여 논의해 보기 위한 목적에서 개설되었다. 따라서 이 강좌는 우선 여성적 영웅이자 숭엄한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안티고네가 여성적 상징 위치를 차지하는 방식과 그것의 윤리적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 상징적 반란에서 오는 퀴어 정치학의 실천적 가능성도 타진하고자 한다. 이 강좌는 국내 번역이 있는 경우 번역서를 중심으로 하겠으나, 번역서가 없는 경우 영문 텍스트를 기본 자료로 할 것이므로 영문 텍스트를 읽을 의지가 있거나 영문 텍스트에 대한 저항감이 없는 수강생으로 제한을 두고자 한다.

1강: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 읽기
주 교재: 소포클레스, [안티고네]
참고 교재: 주디스 버틀러, [안티고네의 주장] 1장

2강: 라캉의 안티고네: 두 죽음 사이에 있는 숭엄한 아름다움
주 교재: Jacques Lacan, Seminar 20, “Between Two Deaths”
참고 교재: Jonathan Scott Lee, Jacques Lacan
Bruce Fink, Reading Seminar 20(“Knowledge and Jouissance”)

3강: 셰퍼드슨과 주판치치의 안티고네: 사랑과 미의 영웅 혹은 욕망의 매혹과 공포
주 교재: Charles Shepherdson, “Of Love and Beauty in Lacan’s Antigone”
참고 교재: 알렝카 주판치치, [실재계의 윤리: 칸트, 라캉]

4강: 버틀러의 안티고네: 친족과 젠더를 허무는 퀴어 주체
주 교재: 주디스 버틀러, [안티고네의 주장] 3장
참고 교재: 주디스 버틀러, [안티고네의 주장] 2장

5강: 여성적 주이상스
주 교재: 김미연, “주이상스: 남성의 쾌락을 넘어서” <페미니즘과 정신분석>
참고 교재: 엘리자베스 라이트, [라캉과 포스트페미니즘]
레나타 살레클, 사랑과 증오의 도착들, 3장 여성적 향유의 침묵: 살아있는 죽음의 사이렌

강사 : 조현순 (경희대 강사)
일시 : 7월 18일(화)-22일(토) 오후 7시_M#]

[#M_ 성은 젠더, 이름은 트랜스 | 성은 젠더, 이름은 트랜스 |

영미권에서 진행되는 논의를 중심으로 트랜스젠더 범주에 대한 욕망과 효과,
트랜스젠더와 의학계 사이의 불균형한 권력 관계, 젠더 이원론을 벗어난 체현의
기제를 고찰하고자 한다.

<1강> 말: 트랜스젠더와 범주
<2강> 칼: 트랜스젠더와 의학
<3강> 살: 트랜스젠더와 체현

강사: 운조
일시: 7월 24일(월)-26일(수) 오후 3시_M#]

[#M_ 여성주의, 공동체를 묻다 | 여성주의, 공동체를 묻다 |

우리는 ‘공동체’라는 단어로 어떤 삶을 생각하고 있는가? 특히 여성들에게 공동체란 무엇일까? 족쇄? 굴레? 상상? 대안? 우리가 만들며 그속에서 살아온 공동체에 대해 ‘묻고’ 성찰하면서, 남성중심의 억압적인 기존의 공동체를 토막내서 ‘묻어’버릴 페미니즘의 위험한 통찰과 여성들이 좀 더 즐겁게 함께하는 삶을 상상해갈 새로운 공동체에의 상상력을 나누어 보고자 마련한 강좌입니다.

<1강> 남성연대, 군사주의, 안보공동체
<2강> 공동체의 기원신화로서 과학 그리고 상황적 지식
<3강> 이승과 저승사이 여자들의 공동체
<4강> 인구위기, 공동체, 재생산의 정치학
<5강> 공/사영역의 재구성과 여성주의 공동체

강사 : 정희진(연세대강사), 박소영(여/성이론 편집위원), 문영희(경희대강사), 백영경(연세대 강사), 권김현영(언니네트워크 운영위원)
일시 : 7월 24일~28일 7시_M#]

[#M_ 함께 읽고 이야기하는 “경계없는 페미니즘”| 함께 읽고 이야기하는 “경계없는 페미니즘”|

경계를 둘러싼 논의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페미니즘 진영에서 이에 대해 모한티가 입을 열었다. 모한티가 이야기하는 지점을 함께 짚어보면서 우리에게 놓여있는 경계를 고민해보자.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경계를 넘어 경계없는 페미니즘을 향한 연대를 모색해보자.

<1강> 서구의 시선아래: 서로 다른 페미니즘의 목소리
<2강> 서로 다른 차이를 넘어서는 동맹의 정치학
<3강> 투쟁의 지도를 그리며
<4강> 신자유주의의 영향력에 맞서는 모한티의 페미니즘
<5강> 반자본주의 투쟁을 위한 페미니즘 연대

강사 : 문현아(여성문화이론연구소, 경계없는 페미니즘 역자)
일시 : 8월 7일(월) – 8월 11일(금) 오후 3시_M#]

[#M_ 성노동 : 섹슈얼리티와 경제의 로고스 | 성노동 : 섹슈얼리티와 경제의 로고스 |

더 이상 “성노동은 가능한가”를 질문하지 않는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 소통할 준비는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소통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나갈 생각이다. 이번 강좌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1강> “성노동”을 둘러싼 언어들 : 매춘․성매매․성노동․성판매여성 등등
<2강> 법은 성노동을 어떻게 보는가 : 비범죄주의․합법화․금지주의
<3강> 성노동과 시장 : 상품․가치․욕망
<4강> 여성운동과 성노동자운동 : 성노동의 정치학
<5강> 성노동과 섹슈얼리티 : 노동하는 성애 vs 성적 노동

강사: 고정갑희, 김경미, 문은미, 문현아, 박이은실(이상 여이연 성노동연구팀)
일시 : 8월 7일-8월 11일 오후 7시_M#]

!! 참고사항
수강을 원하시는 분은 아래 계좌로 입금 후 여성문화이론연구소로 전화주시거나, 홈페이지 ‘강좌 게시판’을 통해 입금 여부를 알려주세요. 혹은 강좌게시판을 통해서 먼저 신청하실 수도 있습니다.

-수강료 : 강좌당 6만원(“성은 젠더, 이름은 트랜스” 강좌는 4만원)
– 쪽강의 신청은 받지 않습니다.
-입금계좌 : 국민은행 031-21-0781-178 (예금주 고갑희)
-강좌장소 : 여성문화이론연구소
-강좌신청마감 : 각 강좌 전일까지
– 여성문화이론연구소 02) 765-2825
– 홈페이지 www.gofeminist.org(강좌신청 및 강좌게시판)
– 이메일 gynotopia@gofeminist.org

* 여성문화이론연구소는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 쪽 100미터 정도 TTL 건물 5층에 있습니다. 자세한 위치는 홈페이지 약도(AboutUs)를 참조해 주세요.

심란하다: 퍼레이드 포기, 수습하기

어제 오후부터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비가 오기 전엔 필히 천둥소리가 들리고 어둠과 쌀쌀한 바람이 열어 둔 창문으로 들어오고 있다. 아, 玄牝 창문 열어두고 왔는데… 으흐흐;;;

퀴어문화축제의 가장 큰 행사의 하나인 퍼레이드 참여를 포기했다. 어제 그렇게 결정했다. 결정하고 잘했다고 느끼고 있다. 이렇게 비 오는 날 퍼레이드 참석이 웬 말이냐. 하지만 참가를 포기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뒷감당 못할 만큼 일을 벌였기에 수습하느라 바쁜 덕분이다. 어제, 한참 갈등하고 있는데, 유령알바를 준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고 월요일 오후에 일을 할 수 있느냐고 하셨고 한다고 했고 퍼레이드 참가 포기를 확정했다. 어쩌겠는가. (포기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드랙을 할 예정이었는데, 마땅한 옷이 없었기 때문이다.-_-;;; 각각으로는 괜찮다고 할 수 있는데 조합을 하면 뭔가 어색한 상황. 푸훗.)

두 편의 기말논문 중, 한 편을 준비 중에 있다. 그 논문 제출 마감 날짜가 먼저기도 하고 루인이 쓰려고 하는 혹은 쓸 예정인 석사논문 주제와 가장 밀접하게 닿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이유로 시작할 때 엄청난 욕심을 부렸다. 루인의 평소 속도에 비추어 무리일 만큼의 참고문헌을 준비했고 그렇게 매일 조금씩 참고할 문헌과 그렇지 않을 문헌을 고르는데 일정 시간을 들였다. 그러며 느끼고 있다.

일전에, 한 사람이, 방학 때 읽은 책이 그 다음 학기에 쓰는 리포트의 질을 결정한다고 얘기했던 적이 있다. 그땐 그냥 흘려들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 돌이키면,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느낀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참고문헌들은 모두 과거에 읽은 글들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새로 읽고 있고 그때와는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선 모두가 처음 읽는 글이기도 하다.) 이번을 위해 처음 읽는 글은 별로 없다. 평소에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란 얘기기도 하다. 과거의 행동이 현재의 어떤 지점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얘기기도 하다. 이렇게 느끼고 있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들은 수업 중에서 별로라고 느낀 수업은 없는 것 같다. 같은 수업을 들은 다른 사람은 수업이 너무 별로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루인은 모든 수업이 괜찮았다. 그 수업에 어떤 식으로 참가하느냐의 문제다. 따지고 보면 교수나 강사의 수준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는 수업은 많았다. 그럼에도 그 수업들이 다 괜찮았다고 느끼는 건, 그런 와중에도 배울 내용이 있고 루인이 각각의 수업을 재밌게 참여했기 때문이다. 논문을 쓰는 것도 그렇지만 수업을 통해 교수나 강사가 해줄 수 있는 건 매우 적다고 느낀다.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다. 루인은 정말 재미있게 들은 수업을 다른 사람은 재미없고 별로라고 말하는 수업이 몇 있는데, 사실 그 수업은 토론 중심인 수업이었고 그래서 토론에 얼마나 참여하느냐가 수업의 ‘질’을 결정했다.

지금 참고하거나 다시 불러들이고 있는 글들은 상당수가 작년부터 읽어 온 글들이다. 그 전에 읽은 글은 이미 루인의 몸과 겹쳐서 누구의 목소리인지 모호한 상태다. 그나마 작년에 읽은 글을 불러들인 건, 참고문헌 목록에 올릴 책이나 논문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불러들인 논문 중엔 그냥 루인 혼자의 즐거움을 위해 읽은 논문도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선, 이미 그 전에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이건 비단 논문이나 수업보고서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이른바 수필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얼마만큼 하고 있느냐가, 그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논문 쓰기는 주제를 잡으면 그때부터 관련 글을 찾아서 읽는 것이 아니라 주제를 구성하는 단계, 혹은 그 이전 단계부터 읽은 글을 바탕으로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평소의 고민이 참고문헌을 얼마나 찾을 수 있게 하느냐에 상당한 영향을 주기도 한다. 학부 시절 조발표 준비를 하다보면 이런 경향은 자명한 듯이 나타났다. 주제를 정하고 이틀 뒤에 만났을 때, 10편 이상을 찾아오는 사람, 서너 편 찾아오는 사람, 한 편도 안 찾아 와선 자료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 토론 과정에서 하는 얘기도 이에 비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게 참고문헌을 정하고 정리하고 전체적인 개요에 따라 재배치하다보니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이미 초고를 쓰고 있을 시간이지만 아마 초고는 내일부터 쓸 것 같다. 그리고 월요일 알바. 화요일 수업. 수요일부터 또 한 편의 논문을 시작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두 번째 논문은 좀 수월할 것 같다. 주제가 ‘쉽다’는 것이 아니라 첫 번째 논문을 바탕으로 다른 논의를 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평소의 고민과 수업 시간에 읽은 논문을 결합해서 얘기를 만들 예정인 두 번째 논문은, 토대를 이루는 한 편의 논문이 있기 때문이다. 그 논문을 어떻게 가지고 노느냐가 관건이다. 뭐, 어떻게 놀긴 어떻게 놀아, 그냥 신나게 노는 거지. 흐흐.

심란하게도 비가 내리고 천둥소리에 조금 무섭고 바람이 차다. Enigma의 음악을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