댈러웨이 부인

제8회 서울여성영화제
2006.04.10.20:00 아트레온 2관, 1층 G-10 [댈러웨이 부인]

다른 사람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느꼈을까. 끝나고 박수 소리가 작았고 적었던 것으로 느끼기엔 메를린 호리스의 다른 영화에서 만큼의 만족은 없었나 보다. 사실 충분히 그럴 법한 영화다.

루인은 정말 매력적으로 즐겼는데, 그럴 수 있었던 건, [디 아워스]를 이미 즐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알다시피 [디 아워스]는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에 토대를 두고 있는 영화다.)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영화화한 이 작품이 재미있었던 건, 책으로 읽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의 흐름이 왜 그렇게 변화하는지를 이미 알고 있기에 울프의 문체와 구성을 어떤 식으로 영상화할 것인가가 너무도 궁금했던 루인은, 오오,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했다. 자살하는 사람의 일이 댈러웨이 부인에게 영향을 주고 그런 상호작용에서 풀어나가는 방식을 영화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는 정말 흥미롭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영화는 잘 풀어가고 있다. 자살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입을 비추고 댈러웨이 부인의 고통을 대비하는 방식. 등등 여러 장면이 흥미로웠다.

이 말은 이전에 [댈러웨이 부인]을 읽지 않았다면 이 영화를 즐기는 동안 꽤나 헤맸을 수도 있다는 얘기. 루인은 만족하지만 사람마다 평은 갈릴 것 같다.

침묵에 대한 의문/그녀의 비밀/부서진 거울

2006.04.09.11:00 아트레온 2관 1층G-11, [침묵에 대한 의문]
2006.04.09.14:00 아트레온 2관 1층G-7, [그녀의 비밀]
2006.04.09.20:00 아트레온 2관 1층G-7, [부서진 거울]

#[침묵에 대한 의문]
누구의 언어로 말하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상대가 소리쳐도 들을 수 있는 귀가 없으면 듣지 못한다. 그래서 루인이 하곤 하는 말은, 타자들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어서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들을 수 있는 혹은 들으려는 귀가 없어서 듣지 못하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동성애’/이반이 가시화되자 “세기말이 되고 서구문화가 유입되니까 성정체성 위기가 생긴다”며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동성애’는 한국”전통”문화에는 없었는데 서구문화가 유입하면서 생긴 거란 얘기다. 하지만 과거 기록에 ‘동성애’ 관련 기록은 있고 관련 목소리는 항상 있었다. 199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듣기 시작하고선 그때야 처음 생긴 거라고 얘기하는 셈이다.

누구나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며 그래서 들을 수 있는 것 밖에 못 듣는다. 슬프지만 ‘현실’이다. 침묵은 침묵이 아니라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니까, 말을 하지 않는다고 규정하는 것이다. 물론 아무리 말해도 상대가 알아듣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협상력으로서 침묵을 선택하기도 한다.

[침묵에 대한 의문]은 이 지점을 절묘하게 포착하고 있다. 이른바 페미니즘 고전영화라고 평하는데, 영화를 즐기고 나면 왜 그렇게 평하는지 알 수 있다. 페미니즘 고전영화라고 해서 재미없는 영화냐면, 호리스의 영화 자체가 너무너무 재미있다.

영화의 또 다른 재미는 심리학자가 처음엔 기존의 ‘남성’언어만 사용하기에 세 ‘여성’들의 말을 못 알아듣다가 자신의 위치를 읽으면서(positioning) ‘여성’의 언어로 기존의 법언어에 저항하는 것. 영화 끝 부분에 ‘여성’들이 소리 내어 웃는 장면은 정말 통쾌하다.

#[그녀의 비밀]
이 영화의 평을 쓰고 싶지만 쓸 수가 없다. 세 가지 코드가 겹쳐있는데, 망명/”불법”체류, ‘레즈비언’/이반queer, 트랜스/드랙이다. 기존의 법언어 바깥에 위치하는 주인공의 행동은 커밍아웃 혹은 아웃팅이 곧 바로 추방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그리고 추방되어 돌아가는 고국에선 사형선고와 같은 선고가 내려져 있는 상황이다(주인공은 이란 출신이고 이곳에선 ‘동성애’는 금지되어 있다). 이제, 주인공은 죽을 것인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타자”로서의 정치학으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엮어 간다.

빼어난 작품이지만 한국에 개봉할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언젠간 꼭 이 영화의 평을 쓰고 싶다.

#[부서진 거울]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에 대한 감독의 욕망을 읽었다. 1995년 작품이 [안토니아스 라인]이라면 11년 전 개봉한 이 영화에선 그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외딴 집에 사는 사람, 사회에서 배제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

주로 나오는 공간은 해피하우스라는 성매매업소이다. 이 공간의 이름은 역설적인데 루인은 해피하우스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관계를 엮어가는 그 순간이 해피하다는 점에서 해피하우스라고 읽었다.

메를린 호리스의 영화는 매유 유쾌하고 좋다.

빨간 모자의 진실: 딱 “전체 관람가” 영화

2006.04.09.09:00 아트레온 5관 C-10, [빨간 모자의 진실]

전날 [나나]를 예매할 때, 많은 사람들이 [빨간 모자의 진실]을 예매하는 모습을 접했다. 개봉 전부터 기대했는데, 바로 이 기대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9시를 보러 갔다. 며칠 전 바보같이 새벽 2시에 잤고 그때의 피로가 풀리지 않은 상태인지라 너무 졸렸지만 그래도 9시에 [빨간 모자의 진실]을 즐기고 11시부터 서울여성영화제를 즐기면 딱이겠다 싶어서였다.

하지만 영화, 홍보문구처럼 더빙은 정말 좋았다. 그리고 끝. 홍보전단지에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말이 있는데, 범인이 등장하는 순간, 아 쟤가 범인이겠구나, 했다. 스토리는 네 명의 진술이 끝나는 지점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아하, 아하, 하는 재미가 있지만 그 지점을 넘어가면 진부하다. 그래서 후반부에 가면 지루했다. 그렇잖아도 졸음이 밀려오는데 스토리마저 진부하면 어쩌란 말이냐. 거의 잘 뻔 했다고 할까.

뭐, 딱 “전체 관람가”인 영화다. 더 뭘 바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