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와 SK…합병?!?!?!?!?!?!? 심란하다

이틀 만에 나스타샤와 접속하고 평소대로 돌아다니다 당혹스러운 소식을 접했다. 가장 처음 접한 곳은 스노우캣 블로그(에서 읽은 “egloos”)고 곧바로 이글루스로 가서 확인하곤, 이른바 메가톤급 핵폭탄이 떨어졌다는 진부하고도 폭력적인 문구를 떠올렸다. 태터툴즈를 사용하기 전에 이글루스를 사용했고 항상 자동로그인상태로 지금도 이글루스의 이오공감을 즐기기 때문이다. 즐겨 찾는 블로거의 상당수도 이글루스 사용자고.

블로그란 걸 모르던 시절 사용하던 포털 사이트(네이버 아님-_-;;)의 블로그와 한동안 혼자 노는 카페에서 놀던 때를 거쳐 새로이 블로깅을 시작하고 지속적으로 블로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확인하기 위해 유예 기간 동안 머문 곳이 이글루스기에 애틋함으로 남아 있다. 더 이상 이글루스를 사용하지 않기에 강 건너 남의 얘기일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SK에 합병이라니!

루인이 너무너무 싫어하는 곳이 싸이월드(스토킹을 당했으니 이곳이 좋을 이유가 없다, 이뿐 아니라 미니홈피/싸이월드가 싫은 이유는 백만 가지라도 댈 수 있다;;;)인데, SK라니…. 이런 루인만의 이유는 별도로 하고라도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나 네이버의 블로그나 그게 그거인 루인에게(도대체 미니홈피와 네이버 블로그 운영방식에 있어 차이를 알 수가 없다, 서로를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글루스가 SK로 넘어가면 왠지 싸이월드의 페이퍼처럼 될 것 같은 불안도 생긴다. 일테면 어느 날 갑자기 이제 이글루스의 사용자가 많지 않으니 페이퍼로 이동해주세요, 라던가 페이퍼처럼 이글루스를 운영한다던가, 하는.

아…, 뭐라 할 수 없이 심란하다. 백업하지 않고 비공개로 전환한 글들 모두 백업해야겠다. 합병 이후 운영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기에 지레짐작하기 보다는 기다려봐야겠지만, 당장 탈퇴하고 싶은 심란한 몸인 건 어쩔 수가 없다.

ctrl+c, ctrl+v … 그러시던가.

Nina Nastasia가 다른 앨범에 참여한 곡이 있어, 행여나 국내 사이트에서 찾아 들어 볼 수 있을까 하며 블로그를 검색하다 놀라운 곳을 발견했다.

글이 왠지 너무도 익숙해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문장이 너무 어색해…. 혹시나 해서 2003년 가을, 몇 달간 사용했던 블로그에 접속해서 찾아보니, 아하하, 제목부터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 퍼간 글이었다. 아아, 부끄럽잖아요ㅠ_ㅠ…………………………………………………..여기

글을 퍼간 사람도 무려 2004년 어느 여름이라 지금 와서 뭐라고 하기도 그렇다. 루인의 (아주 오래된, 그리고 루인이란 닉을 쓰지도 않던 시절의) 글을 그대로 퍼 간 것이 유쾌하진 않다고 해도 마냥 기분 나쁜 것도 아니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군요”라고 중얼거리면 그만. 지금 이곳, [Run To 루인]에 쓴 글이 어딘가 고스란히 퍼간 사람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물론 루인의 글을 그 누가 퍼가랴. ctrl+c, ctrl+v를 통해 자기가 직접 쓴 글인 냥 행세하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좀 더 편하게(폼나게?) 소통할 수 있는 글이거나 무난한 내용이거나. 혹은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루인처럼 자신이 이반/비’이성애’자/트랜스임을 떠들고 있는데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의 글을 퍼서 자기가 직접 쓴 글인 냥 행세하긴 쉽지 않을 것 같다. 크크. 더구나 글의 내용이 그다지 좋은 게 아닐 진데(얼마 전, 이랑 중 한 명에게서 루인이 예전에 쓴 글 중 한 편을 처음엔 무슨 소리야, 했다가 나중에야 고개를 주억거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퍼가기 무난한 글이 아니란 얘기다) 루인의 글을 퍼간다는 건,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길이 아니라 욕 먹으려고 작정하는 길이지 않을까(ctrl+c, ctrl+v를 통해 자기 글인 냥 행세하는데 욕먹는다면 안 하니만 못하다). 큭큭.

아, 아무튼 루인의 글을 퍼가서 레폿에 붙이든(그럴만한 내용이나 되려나;;;) 마침표 하나까지 고스란히 퍼가선 자기가 직접 쓴 글인 양 행세를 하든, 별 상관이 없는데 결국 그렇게 생산한 글은 그렇게 한 사람에게 아무런 의미를 못가지기 때문이다. 괜찮은 아이디어는 적당히 숨겨서 나중에 자신의 논문(작품)에 사용하라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루인은 별로 그렇지 않은데, 뭐든지 떠벌리고 다니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루인의 아이디어가 루인만의 독점적인 지식이라고 몸앓지도 않거니와 그 아이디어를 전개할 수 있는 사람은 루인 뿐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능력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전개하는 방식과 그것을 구성하는 내용에 있어 다른 사람과 루인은 다른 위치에 있다는 의미다.

루인도 잊고 있던 예전 블로그의 글을 퍼간 블로그를 발견하다니, 재밌는 일이다. 이봐요. 앞으로 퍼갈 땐, 좀더 잘 쓴 글을 퍼가 주세요. 나중에 발견하면 민망하고 부끄럽거든요. 정희진 선생님의 글처럼 빼어나게 잘 쓴 글이라면 몰라도 루인처럼 서툰 문장의 글을 퍼가는 건, 퍼간 당신이 욕먹을까봐 걱정이에요.

※이 글 어딘가에 불펌한 그곳 주소를 숨겨뒀지요. 흐흐. 숨은 그림 찾기^^;;

[#M_ +.. | -.. | ctrl+c, ctrl+v는 각각 복사, 붙여넣기의 단축키다. 물론 루인의 블로그는 오른쪽 마우스 기능을 막아두었기에 소용없지만, 아는 누군가는 자신의 블로그를 이렇게 막아 두었음에도 창을 두 개로해서 그대로 옮겨 적었는지, 불펌한 글을 발견했다고 하니, ctrl+c, ctrl+v는 일종의 은유._M#]

게이 ‘남성’에 대한 판타지:[브로크백 마운틴]이 좋았던 이유

몇 해 전, 도서관에서 에쿠니 가오리의 [반짝반짝 빛나는]을 빌렸다. 그냥 일본 소설 쪽을 기웃거리다 묘하게 끌려서. 나중에야, 에쿠니 가오리 소설이 도서관에 남아 있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란 걸 알았다. 거의 항상 예약해야 하거나 예약도 끝나서 한정 없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거나. 그렇게 접한 에쿠니 가오리는 결국 도서관에 있는 책에 한해선 다 읽고 말았다. 좋았다.

그때 읽은 에쿠니 가오리의 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하느님의 보트]와 [반짝반짝 빛나는], 이렇게 두 권이다. [하느님의 보트]는 그 광기가 좋았고 [반짝반짝 빛나는]은 주인공 ‘여자’가 딱 루인이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울증에 뜨거운 물이 가득한 욕조에 몇 시간이고 들어가 있는 걸 좋아하는. 자취를 하며 가장 안타까운 것 중의 하나가 욕조가 없다는 것.

그 시절 에쿠니 가오리를 읽은 후, 더 이상 에쿠니 가오리를 읽지 않았고 더 찾지도 않았으며, 헌책방에서 발견하더라도 대체로 시큰둥한 정도였다. [하느님의 보트]와 [반짝반짝 빛나는]이 나오면 사야지 했지만 아직 헌책방에서 발견한 적이 없다. 그러니 여전히 루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이 두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짝반짝 빛나는]이 아프게 즐길 수 있기만 한 책이냐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너무 불편해서 화를 내고 싶은 책이다. 이성애 ‘여성’이 게이 ‘남성’에게 가지는 판타지를 완벽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같이 여행하기 “안전”하고 대화가 잘 통하고 패션 감각이 뛰어나고 세련되고, 등등 이성애’남성’에게 바라지만 실현할 수 없는 지점들을 게이 ‘남성’들에게 투사하고 있는 이 소설의 내용은 사실 소설에서만의 것이 아니라 루인이 가끔 혹은 우연히 들리곤 하는 블로그에서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본 적은 없지만 한국의 한 드라마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이 나왔다고 들었다.)

“여자와 남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란 말을 어릴 때부터 지겹게 들어왔다. 이성간의 관계는 곧 성적인 관계란 얘기다. 이성친구와 조금만 친하거나 자주 같이 다녀도 “둘이 사귄데”란 소문이 돌고 그로인해 멀어진 사람도 몇 있다. 잘 통하는 친구일 뿐인데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만남 자체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 말과 이런 반응은 모든 사람은 이성애자란 전제를 깔고 있다. 물론 요즘은 동성끼리 손잡고 다니면 “이반이냐?”란 말을 듣기도 하지만, 여전히 이성애를 정상화하고 비’이성애’자를 별나라의 외계인 취급한다. 바로 이런 지점에서 게이 ‘남성’에 대한 판타지가 이성애 ‘여성’에게서 생기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른바 사회에서 “남성다움”이라는 역할-무뚝뚝한 것이 “남자답다”로 여겨지고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등의 행동들에서 게이 ‘남성’은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판타지. 결국 이성애 제도에선 무성적인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기도 하다. “게이코드”, “동성애코드” 따위의 말이 모두 이를 드러내는 언어들이다(“이성애코드”란 말은 없다).

정말 이런 사람이 있다, 없다, 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판타지가 폭력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반/비’이성애’자/트랜스들의 삶에는 별 관심이 없고 이들의 담론이 자신의 세계관을 흔드는 것은 거부하지만 판타지를 재현할 수 있는 “스크린”이 된다면 환영이라는 것. 에쿠니 가오리의 [반짝반짝 빛나는]은 이런 이성애 ‘여성’이 게이 ‘남성’에게 바라는 판타지를 완벽하게 그리는 “동화”일 뿐이라 읽고 나면 좋은 만큼 짜증도 함께 밀려온다.

어제 [브로크백 마운틴]과 놀고 난 후기를 쓰며, 에니스의 가부장적인 모습을 언급했던 이유도, 에니스에게 일이 생기자 알마가 바쁘게 일을 하고 있음에도 짜증을 내며 아이들을 맡기고 가버리는 장면이 몸에 깊이 남은 이유도 그래서다. 불필요한 판타지를 덧입히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자신을 게이라고 정체화하고 커밍아웃을 하거나 운동을 하지도 않고 그저 죽은 잭을 기억하는 모습으로 그리는 것이 좋았다. 이반queer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반들이 권리투쟁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그러지 않아서 실망했다는 얘길 들은 기억이 몸에 있는데 이반이면 모두가 운동을 해야 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운동하지 않음을 비판하고 운동을 요구하는 반응은, 노골적인 이반혐오와 별로 다르지 않은 혐오다.

그냥 잘 만든 로맨스물이라고 부르고 싶다. ‘동성애’가 나온다고 “비주류” 영화라는 식의 표현은 심각한 착각이며 과도하게 “퀴어/동성애” 운운하는 건 오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