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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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슴이 아파서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이런 날 당신은 어떻게 하나요, 궁금하지만 물을 수 없다는 사실이 참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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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친해지는 속도는 다 다르고 유지하는 거리도 다 다르다고 느껴요. 그 거리를, 속도를 지켜주세요. 지금의 상태가 딱 좋거든요. 그 이상이라면, 루인은 튕겨나갈 거예요. 신나게 쥐불놀이하다 툭, 끊어져 멀리 날아 가버리는 것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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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vegan이 아니었기에 채식주의자로 정체화하지 않았지만, 비건일 때에도 채식주의자로 정체화하길 꺼렸다. 그냥 채식가로만 부르며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과의 식사자리에선 그냥 조용히 가만히 있고, 누군가 챙겨주면 그제야 다행이라 여기며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그냥 제 성격이 이상한거죠”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곤 했다. (물론 이런 반응엔 또 다른 경험이 겹쳐있다.) 권력에 순응하고 결코 위협하지 않는 방식으로 반응했기에 루인은 더 “바보”가 되었고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헤헤” 웃기만 했다.

별자리와 관계 맺음의 노력

새로 알게 된 사람의 생일을 알게 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엉뚱할 수도 있겠지만, 루인의 [내 별자리의 비밀 언어]란 책을 뒤적거리는 거다. 크크. 몇 년 전 나온 48가지 별자리 시리즈인데, 별자리 같은 걸 좋아하기에 별 망설임 없이 샀었다. 그 후 생긴 습관이 새로 알게 된 사람의 생일을 알게 되면, 이 책을 뒤적거리는 일이다.

이 책의 저자도 말하고 있듯이, 관계라는 것이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기에 어떤 식으로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별자리에서 아무리 좋은 관계라고 해도 노력하지 않으면 이어질 수도 없고 좋아질 수도 있는 일이 틀어지기 마련이다. 최상의 관계라고 말해지는 사이에도 문제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 책을 읽는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 재미는 묘하게 맞는 부분이 있기에 생기는 재미다. 물론 저자가 내용을 두루 뭉실하게 썼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낯가림이 꽤나 심한 루인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단지 몇 번 만났을 뿐인데도 장난을 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만큼 금방 친해지고(루인이 누군가에게 장난을 치거나 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건, 그 사람을 그 만큼 신뢰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상대방은 그렇게 느끼지 않겠지만;;) 어떤 사람은 몇 년을 꾸준히 만나며 알고 지내면서도 얼마간의 서먹함을 가지곤 한다. 주변에 유난히 많은 특정 별자리가 있는가 하면 한 번도 접한 적 없는 별자리도 있다(없었다고 하기 보다는 생일을 몰랐거나 알았어도 루인에게 별다른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잊혀졌다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루인에겐 유난히 염소자리와 인연이 많은 편이다. 가장 오랜 친구도 염소자리고 이상하게 빨리 친해진다고 느낀 사람도 알고 보면 염소자리인 경우가 많았다. 역설적이겠지만 염소자리와는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을 것인지 노력에 따라 다른 식으로 루인에게 남아 있다. 7년 이상 친구로 지내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몇 달 만에 심각한 갈등으로 절교하기도 했다. 루인을 페미니즘으로 이끈 사람도 염소자리고 채식주의자인 루인에게 같이 있으면 “고기”를 먹을 수 없다며 끊임없이 화를 내며 육식을 강요했던 사람도 염소자리다. 평생의 친구로 지내고 싶은 바람을 품고 있는 사람도 염소자리고 관계에 별다른 노력을 하지도 않고 자꾸만 냉소적으로 대했던 사람도 염소자리다. (12가지 별자리로 구분했을 때 이렇지 48가지로 구분하면 다르다.) 그러니까 어떤 별자리와 인연이 많다는 것이 곧 좋은 인연으로만 남아있다는 건 아니다. 그저 이상할 만치 인연이 많다는 걸 의미한다.

요즘도 별자리 책을 자주 꺼내 읽는다. 이 책의 미덕은 좋은 관계일 땐 어떤 부분을 조심해야 할지, 뭔가 안 좋은 관계일 땐 왜 그런지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점이다. 어떤 사람에게 너무도 화가 났는데 그게 실은 상대방에게서 루인의 가장 부정적인 부분을 봤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문장을 읽으면, 알게 된지 얼마 안 된 사람과 얘기를 나누면 너무 즐거운데 그게 상승기류를 타는 관계라서 그렇다는 문장을 읽으면 고개를 주억거리지 않을 수가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관계의 모든 걸 알 수 없고, 모든 걸 얘기하지도 않는다. 왜냐면 누구나 10가지 별자리의 지배를 받기에…가 아니라;;;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대화를 나누면서 배우고 깨닫고 노력하는 부분이 더 많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은 그런 부분들에 대한 일종의 암시를 해주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별자리 책이지만. (뭐든지 두루 뭉실하게 적어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처럼 해석할 수 있는 게 이런 책의 특징.)

결국 어떻게 노력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식의 결말은 너무 도덕교과서 같아서 이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된다, 고 쓰고 싶은 충동은 뭘까. 책장사를 하자는 건 아니지만. 크크크

설연휴?

부산으로 가야한다는 사실도 그다지 유쾌하지 않거니와 루인의 주변 어디에서도 설을 비롯한 명절이 연휴라며 좋다는 사람이 없기에, 라디오를 들을 때마다 당황한다. “며칠 만 기다리면 설연휴예요.”

라디오 (‘남성’) 디제이들은 어떤 경험을 하는 걸까, 새삼 궁금하다.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는 괴리를 확인하며.

“우리는 동시대인이다”란 말은 거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