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과 페미니즘이 만나는 모임을 꿈꾸며

한 채식주의 모임에 참석하고 돌아오며, 그 모임이 채식만을 얘기한다면 좋았다. 이미 관련해서 고민하는 분들이고 기간에 상관없이 삶에서 채식을 고민하는 분들이기에 채식주의만을 얘기 한다면 그곳은 꽤나 좋은 곳이다. 하지만 채식만을 얘기할 수 있는 경우는 없잖아.

처음, 모임에 갔을 땐, 도대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페미니즘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을 거라 기대했다. 페미니즘을 공유한다는 건, 페미니즘에 대해 몇 년씩 공부를 했다거나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젠더와 성에 대한 폭력에 감수성이 있다는 의미이다. 어떤 말이 차별적이라거나 폭력임을 알 수 있는 감수성. 그랬기에 (이 자리에선 결코 밝힐 수 없는) 어떤 사건에 관해 얘기하며, 그때의 방식과 태도에 너무 당황했다(상당히 스트레스 받았다).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얘기하면서 젠더 감수성을 얘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그 당시의 얘기들이 틀린 말은 아니었고 어떤 부분에선 ‘맞는’ 얘길 수도 있지만 불편했다.

이런 이유로 계속 하길 갈등하고 있다. 그러다 떠오른 몸앓이가, 페미니즘과 채식주의를 함께 소통하는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 사실, 어떻게 보면 불편함의 이유가 이랑 공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미나인지 수다인지 놀이인지 경계가 애매한 공간 혹은 이런 경계 자체를 문제시하고 노는 공간. 이런 공간에 익숙하다보니 다른 공간에서 어려워하고 불편함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페미니즘과 채식주의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몸앓이를 한다. 채식주의자가 아니어도 좋고 페미니즘을 몰라도 좋지만 두 가지가 만나는 지점을 몸앓고 있거나 흥미가 있는 이들과 얘기하는 모임. 일테면 세미나를 같이 할 수도 있고 다른 여러 활동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건 모임을 통해 엮어 갈 부분이고. 그런 모임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왜, 기존의 모임에 참여하고 싶지는 않은 걸까. 이 역시 이랑 중독일까.-_-;;)

SM

일전에 라디오에서 SM이란 단어로 장난치는 걸 들었다. SM이니, ESM이니 MM이니 하면서 웃는 걸 들으며 재미있다고 몸앓긴 했지만 재미의 기원은 불편하다. SM이란 단어가 나왔을 때 순간적으로 감돌던 긴장감과 small mind라고 말하는 순간 웃음으로 바뀌는 분위기. 긴장감과 웃음, 그리고 이 간극은 SM을 부정적이고 금기시하는 사회문화적 합의 없인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합의에 동의하는 이들에겐 유머가 되지만 이런 합의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겐 불편하다. SM은 상호 합의 하에 일어나는 가장 지적인 성적 지향이기에(여기서의 지향성은 관계와 무관할 수도 있다) SM을 ‘변태’ 성욕으로 인식하는 건 젠더(이성애주의)에 기반 한 폭력/횡포다. 그래서 장난치기로 했다. 폭력이 권력으로 작동하기 위해선 권력으로 의미를 가지게끔 하는 이데올로기에 동의해야 한다. 이런 이데올로기에 동의하지 않는 순간, 의미는 전복되고 권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성애자가 비’이성애’자/이반queer/트랜스에게 변태라고 욕하는 것과 “그래, 나 변태야”라고 되받아치는 건 의미가 전혀 다르며 기존의 의미를 전복한 것이다(퀴어란 말 자체가 그런 거니까).

[#M_ 근데 쓰고 보니 장난이라기엔 처참하다-_-;;.. | 처참해서라기 보다는 내용이 별로라 그냥 백색처리;;;.. |
SM이라고 있다. Small mind의 약자로 소심이라고 한다. 일테면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는데, 일정 시간 안에 답장이 안 오면 몸 상해서 삐지는 경우다. 문자가 잘못 간 건 아닌가, 불안해하기도 한다. 두어 번 정도 문자를 보냈음에도 답장이 없으면 몸 상해서 더 이상 문자를 안 한다. 답장 없음에 상처 받기 싫어서 아예 안 보낸다. 물론 답장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풀린다.

ESM/MM이라고 있다. Extreme small mind/Micro mind의 약자다. 핸드폰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으면 뭔가 잘못 보낸 것이 아닐까 불안해한다. 내용을 몇 번이고 확인하고 보냈지만 뭔가 잘못된 내용이 있어서 상대방이 불쾌한 건 아닌가, 불안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심지어, “어제까지 친하다고 믿었는데 그새 날 싫어하게 되었나봐” 하면서 자학한다. 바빠서 안 보냈을 수도 있고 핸드폰을 안 들고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는데도 자신이 뭔가 잘못해서 상대방이 자신을 싫어하는 거라고 단정한다. 답장이 오거나 그 사람과 만났는데 전과 다름없음을 확인해야 풀리지만 그래도 불안함이 남아서 이런 상황을 반복한다._M#]

바꾸고 있는 언어를 공유하기

블로그를 통해 글을 쓰며 여러 언어들을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기존의 불편한 언어들이 아닌 다른 언어들로. 일테면 몸앓다란 언어가 한 예가 되겠지. “보다”, “마음” 등과 관련한 언어들을 바꾸는 것도 그 중 하나다. 하지만 리플을 달거나 할 때 쓰기가 난감한 언어도 있다. 아직 공유하지 않아서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루인도 즐거우면서 다른 사람과도 공유할 수 있는 언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