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간에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데 이러고 있다. ㅡㅇㅡ
9시까지 사무실에서 시험공부를 하겠다고 다짐했으나 7시 즈음, 될 대로 되라는 몸으로 나왔다. 내일 망하고 정신 차려서 기말에 열심히 하지, 뭐. ㅠ_ㅠ
몸이 완전히 붕, 떠버렸다.

공부하는 몸이 완전히 변한 듯 하다. 노는 것과 공부하는 것이 구분이 안 되는 상태. 흔히 말하길, 할 때 하고 놀 땐 놀라고 하지만, 루인에게 있어서 그건 언설이 아니다. 삶과 앎이 구분이 안 되는 생활, 노는 것과 공부하는 것이 구분이 안 되는 생활, 그런 것이 현재의 루인이다. (동시에 삶과 앎이 구분될 수 있다는 언설은 정말 언어가 아니라고 본다.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다.) 논다고 애니메이션을 보지만 동시에 그건 또 하나의 공부가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암기 과목처럼 변해버린 수학 시험공부가 버거운 것이다. 고등학생 때 까지만 해도 수학은 놀이였다. 근데, ‘이상하게도’ 대학에 와선 벼락치기 혹은 암기 과목으로 변했다. 수업에서 가르치는 방식/내용과 루인이 하고 싶은 그것이 차이가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랄까.

어쨌든, 지금 이러고 있다. 곧 나스타샤와 안녕, 하고 책을 보겠지만, 망하고 정신 차리자는 모드로 몸이 변할 듯 하다. ㅠ_ㅠ

글쓰기 소재에 대한 태도 변화

한땐 아래 글처럼, 시험기간이면 시험이다, 가을이 오면 가을이 온다는 식의 글을 별로라고 여겼다. 뭔가 유치해 보였다. 그렇게 믿던 시절엔, 그 시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런 내용으로 글을 써야지 하는 강박이 있기까지 했다.

하지만, 시험기간에 관한 글, 날씨에 관한 글은 가장 ‘자연스러운’ 글인지도 모른다.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위치에서 느끼는 감정에 대한 글이기 때문이다. 가을이 왔음을 심하게 느끼면서도 가을이 왔다는 글을 쓰는 것은 왠지 유치한 일이라는 식의 강박은, 일종의 신이 되고자 하는, 세상에 무관함을 ‘쿨cool’함으로 착각하는(disembodiment, disinterest) 태도이다. 개입하고 있으면서도 개입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길 회피하는 태도이기도 하고.

그냥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꾸준히 적어 나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자신에게 가장 성실한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입장에서 노래 듣기

가을이 오는 소리가 몸에 들려온다.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있지만 소중한 친구들이 환절기 감기로 고생하고 있어 속상하고 걱정이기도 하다.

요즘, 다른 때의 취향을 아는 사람들에겐 ‘의외’일 수도 있겠지만 최재훈을 듣고 있다. (이 ‘의외’라는 반응은 사실, 상당히 폭력적인 반응이다. 그건, 상대를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편견/선입견에 고정시켜 자신이 알고 싶은 모습으로 만들려는 통제에서 벗어날 때 발생하는 것이다. #덧붙이면, 이와 관련해선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듯 하다. 지금 정도의 글은 너무도 단순화된 내용이다.) 신보일 리는 없고 예전에 좋아했던 음악들을 듣고 싶어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몇 곡의 음악을 듣고 있는 정도. (몇 장 가지고 있는 앨범은 CDP가 없던 시절에 산 테이프들이라 찾기 귀찮은(! -_-;;) 곳에 있다.)

한국가요를 들으면 가장 좋은 점이 가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이런 장점은 때로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차라리 몰랐으면 하는 폭력적인 가사라서 그럴 수도 있고 너무 아파서일 수도 있고.) 그래서 음악을 듣다가 아주 재미있는 가사를 발견했다.

[#M_ 최재훈 – 함께 있으면 좋을 사람 | 최재훈 – 함께 있으면 좋을 사람.. |

함께 있으면 좋을 사람 함께 있을 수 없어
우리 사랑은 이제 금방 시작됐잖아

내 인생 여기다 혼자 남겨두고 갈거니
보고 싶지만 널 보고 싶지만 안녕

떠나가는 내 사람아 날 위해 떠나가는 내 사람아
그곳까지 너를 따라 갈 수 없어
울고 있는 한 남자를 용서해줘 내 사람아
나를 잊지 말아 그토록 사랑한 걸 잊지 말아
이 세상 아픔 모두 지나가면 우린 다시 만날 수가 있을 거야

떠나가는 내 사람아 날 위해 떠나가는 내 사람아
그곳까지 너를 따라 갈 수 없어
울고 있는 한 남자를 용서해줘 내 사람아
나를 잊지 말아 그토록 사랑한걸 잊지 말아
이 세상 아픔 모두 지나가면 우린 다시 만날 수가 있을 거야

잊어버려야 좋을 사람 잊어버릴 수 없어
그동안 행복 했어 안녕

#듣고 싶으면…최재훈 – 함께 있으면 좋을 사람

_M#]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모르는 사람도 있을 노래인데 어느 드라마 주제곡인가 그런 걸로 기억하고 있다.

이 노래가 재미있게 다가온 건, “울고 있는 한 남자를 용서해줘 내 사람아” 때문.

이 가사가 귀에 들어오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게이’ 영화 사운드트랙으로 삼으면 딱 좋겠다는 것이었다. 대충 노래 가사처럼 그런 내용으로 해서. 흐흐.

음악이란 것이, 비단 음악 뿐 아니라 모든 텍스트가 고정된 의미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이야 누구나 알고 있을 테고 그렇기 때문에 텍스트는 그 텍스트를 만나는 사람/맥락에 따라 매순간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기 마련이다. 이 노래 가사도 그런 하나의 전형으로 보였다. 스스로를 남성으로 정체화하고 게이로 정체화하고 있는 사람들 간의 연애 영화에 들어간다면, 스스로를 여성/남성으로 정체화하고 있고 각자 이성애자로 정체화하고 있는 관계의 연애 영화에 들어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면서 루인이 본 이반queer영화 중 ‘게이'(로 보이는 혹은 그렇게 자신들을 정체화하고 있는) 관계 중 이 노래가 어울릴 만한 영화가 뭐가 있을까 하며 마구 키득거렸다. 히히히.

사실 가요들 중엔 이렇게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가사들이 상당수 있는 편이다. 가수와 제목이 떠오르진 않지만, 얼핏 보면 이성애gender연애제도의 성역할gender rule에 가장 충실한 듯이 보이는 가사 중에 의외로 ‘레즈비언’/’게이'(으로 자신을 정체화하고 있는) 관계로 볼 수도 있는 곡들이 많다. 그렇다고 어떤 노래들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에 대한 비판이 있으면 안 된다거나 그렇게 비판하는 너의 위치가 문제야 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자세가 더 위험해 보이는데 이런 자세가 바로 텍스트를 고정된 것으로 해석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흘러나오는 음악들에 대한(그리고 텍스트들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더 재밌고 풍부한 삶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