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딘 글쓰기

한 달 여전 개요를 쓴 글을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다. 개요만 한 달 전이지 사실 그 내용은 몇 달 째 몸을 타고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까. 그것을 망설이고 있다. 할 말은 너무 많아서 새로운 만남이 있을 때 마다 풍성해지고(며칠 전 학회 워크샵 뒷풀이 자리는 상당히 많은 논쟁거리를 안겨 줬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이야기들이 새로운 몸앓이의 가능성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도 아직 머뭇거리며 미루고 있다. 채식vegan에 대해 쓴다는 것, 생애사를 쓴다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님에도 힘들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현재의 루인이 가진 언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어서일까. 아님 무언가 더 앓게 하려는 몸의 언어/저항일까.

작정하고 오늘은 글만 쓰겠다고 하면서 다른 곳으로 회피하고(일테면 오델로-_-;;) 잠들기 전 새로운 다짐을 하고, 이런 생활의 반복. 이런 반복에서도 벗어나야 글을 쓸 수 있을까.

휴식-세수하지 않고 만나는 얼굴

루인이 사랑하는 주말 휴식은 빈둥거림이다. 특히 최고의 빈둥거림은 늦잠자고 세수를 하지 않는 것. 핵심은 세수를 하지 않는 것이며 이 행위의 의미는 밖에 나가지 않겠다와 누구도 만나지 않겠다, 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일 玄牝에서 지냈다고 해도 세수를 했다면 그건 온전한 휴식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토요일이나 일요일 하루 정도를 지내고 나면 자그마한 위로가 몸에 전해진다.

그렇기에 어제 강의(민우회 여성주의 학교-간다 “경계에서”)에서 레저마저도 노동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편안하게 쉬는 것과 편안한 관계는 세수를 하지 않고도 만날 수 있는 관계라는 말에 어떻게 ‘열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세수를 하지 않고도 만날 수 있는 관계.

맨송맨송한 얼굴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의 편안함, 더 이상 정치가 정치가 아닌 날은 언제가 될까.

거대 토끼의 “저주”

#마지막 즈음에 가면 스포일러 살짝 있어요.

예전에 봤던 [월래스와 그로밋]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몸에 각인되어 있는 기억을 되살리기가 쉽지 않다. 클레이메이션이라는 것 자체가 신기해서 좋아했을까. 마냥 그렇지는 않았을 텐데.

조조로 영화를 보며 깔깔 웃기도 했지만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드림웍스나 다른 헐리우드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패러디를 [월래스와 그로밋]에서도 봐야 한다는 사실과 전형처럼 여겨지는 헐리우드 ‘공식’이 엿보이면서 (무엇을 기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대의 한 부분이 무너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역시나 헐리우드완 손잡지 않는 것이 좋았을까.

그래도 재미는 있다. 예상치도 못한 [마다가스카의 펭귄]들은 귀엽고^^ 등장하는 토끼는 너무 깜찍해서, 으흐흐, 인형으로 나오면 꼮 가지고 싶을 정도.

뭐, 이 정도로 끝내기로 하자. 20세기 초반 재산권을 가진 ‘여성’들의 재산을 탐내며 질투와 음모를 벌였던 ‘남성’들의 행각이(뤼팽 시리즈에 이런 모습들이 잘 나온다) 여기서도 반복된다는 점, 젠더역할gender rule을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 주는 불편함 들과 마지막에 결혼을 한다거나 하지 않고 친구로 남는다는 점이 몸에 들었음을 덧붙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