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연극과 영화 사이

어제 어느 학술행사에 참가했다. 원래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어 겸사겸사 참가한 거였는데, 종합토론이 진짜 재미있었다. 일단 다종을 논한 선생님의 발표가 재미있었고 모두가 불편할 것이라며 하신 말씀에 상당히 큰 배움이 있었다. 그렇지, 해러웨이 등 다종을 논할 때 그냥 지식이 아니라 저렇게 사유의 틀을 완전히 틀어버리는 방식으로 바꿔야지. 그것이 공부, 몸에 익히는 과정이지. 또한 종합토론은 근 10년 동안 본 토론 중 가장 뜨거웠는데 학술적 언어로 서로를 비판하고(사실 디스였음 ㅋㅋㅋ) 심지어 어느 질문자는 토론에서 오간 주제 자체에 대해 불편하다고 말할 정도의 자리라니. 이거 유튜브로 스트리밍 했어야 했는데!

(혹시나 싶어 일부러 다 익명으로 얼버무림)

저녁이 다행스럽게도 일정이 되어서 한국퀴어연극아카이브 홈페이지(구글링하면 나온다) 오픈 행사에 참석했다. 이 작업을 해내다니 정말 고생하셨고 홈페이지 자체도 잘 나와서 기뻤다. 행사장에서는 말을 못했는데, 6색 무지개 색을 활용했는데 그 색감이 정말 세련되게 나와서 놀라웠다! 무지개 6색은 잘못 쓰면 촌스러운데 어떻게 저 색감을 만들어냈지! 암튼 오래 고민하고 준비하셨는데 이렇게 결과물을 공유할 수 있다니!!

행사 끝나고 집 돌아오는 길에 뭔가 좀 내가 웃겼다. 12월 말에 논문 하나가 나오는데 영화 분석 논문이다(자세한 건 나온 뒤에). 지금까지 쓴 논문(등재 여부와 상관없이 학술지 기준으로) 중 세 편이 영화 분석 논문이다. 웃긴 점은, 나는 영화 분석 작업을 좋아하는 편이고 지금도 또 다른 영화 분석 논문을 준비 중인데 정작 영화와 관련한 어떤 공부도, 제작 과정에 참여도 해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따로 영화와 관련한 어떤 독서를 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체계적인 것이 아니고 그래서 어디 가서 내가 영화와 관련해서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다. 그럼에도 영화 분석을 좋아하고 글을 쓴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연극 관람을 좋아하고, 큰 환대 속에서 연극과 관련한 이런저런 행사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있고, 무엇보다 드라마터그를 하며 연극 제작 과정에 참가하는 소중한 기회를 갖기도 했다. 그런데 연극 분석은 어려워한다. 분석하고 싶은 작품이 몇 있는데 어째서인지 어려워하고 부담스러워한다. 이게 어떤 종류의 친밀감, 특히나 사람과 연결된 친밀감이 있어서 부담스러워하는 것일 가능성이 있기도 하지만 내가 감히 작업해도 괜찮을까라는 고민을 한다. 그렇다고 영화는 분석하는 작업에 부담이 덜한 편이다. 그러고보면 분석하고 싶은 소설도 몇 있고 소설 분석에의 부담은 덜 한 편이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암튼 몇 년 내에 연극분석 논문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소년범의 책임

어느 배우의 소년범이 갑자기 부각되고, 이후 행적이 겹쳐서 문제가 되면서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많은 사람이 많은 의견을 갖겠지만, 다행이라면 학부수업에서 형사미성년의 법적 책임과 반성의 문제를 다룬 적이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물론 그 배우는 형사미성년(소위 촉법소년)일 때의 범죄가 아니지만, 어쨌거나 그와 관련한 처벌은 다 받은 상태였다. 폭행 등 사안의 심각성이 문제라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나는 조금 다른 경로를 고민했다.

그 배우에게 요구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은퇴 뿐이었을까? 일군의 사람들이 고민하듯, 나는 그 배우가 은퇴를 하기보다 차라리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반성하고 사과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서둘러 쫓겨나기보다 과거의 범죄와 선한 역할을 맡으며 배우게 되는 반성, 청소년기의 잘못을 성인으로서 어떻게 반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반성 말이다. 여기에 나는 그가 그저 은퇴하기보다, 형사미성년이나 소년범으로 처벌을 받고 있거나 퇴소 후 삶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을 위한 교육 및 상담 지원 프로그램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고 적극 활동하는 것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한다. 2022년에 나온 드라마 [소년재판]을 본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이 드라마의 핵심은 형사미성년에게 확실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재판에 제대로 참석시키고 자신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고, 제대로 반성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 김혜수는 처벌이 약해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처벌이 안 될 것이니 재판 절차마저 대충 진행하는 것에 화를 냈다. 그래서 나는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데, 내가 한 행동이 야기한 여파를 제대로 직면하고 그것을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어려운데 시간이 없고 예산이 부족하다.

나는 10년도 더 전에 소년원에서 운영한 프로그램을 떠올리며, 그때 제대로 정리하고 관련 글을 쓰지 않은 것을 늘 반성한다. 그리고 배운 것은 정말로 교정교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한없이 부족하고 그와 관련한 좋은 모델이 부족하다. 그러니 나는 그 배우가 과거에 소년범이었는데 지금 선하고 정의로운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역겹거나 위선적인 일이 아니라, 정의로운 역할이 과거 세탁이 아니라,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현재 정의로운 역할을 맡도록 한 그 양심이나 수치심, 혹은 또 다른 감정이 무엇인지 강의를 하고 다닐 수 있다면 어떨까. 청소년일 때의 범죄를 30년이 지난 현재도 책임을 지고 사회적으로 매장된다는 것은, 사실 범죄를 저지르면 평생 꼬리표로 따라다니니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된다는 ‘교훈’이 될 수도 있겠지만, 형사미성년 혹은 민법상 미성년일 때 지은 범죄를 반성하고 다른 삶을 살 기회는 평생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오히려 잘못에 대해 제대로 된 반성을 할 필요도 없다는 메시지가 되는 것은 아닐까? 진짜 필요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 행위가 피해자에게 끼친 피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리하여 혼자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영화 [밀양]에서는 납치범이 혼자 하나님께 구원받는다) 반성하고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의 모델을 만드는 것, 그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실제 그 배우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최근 어떤 성품과 성격인지 모르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차라리 위선이라도 이런 모델을 만들고 그래서 그 위선이 품성이 될 때까지 계속 애쓰는 모습이라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한다.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낭만적이겠지만, 진짜 필요한 일이라고 고민해서.

배움 겸손

박사를 하고 일 년 정도 우울 상태로 대충 지내던 시기, 그래도 내가 명확하게 배운 것이 하나는 있었다. 내가 전공하지 않은 지식이나 분야에 대해서는 겸손할 것, 내가 전공한 분야에 대해서는 더더욱 겸손할 것. 모르는 분야를 아는 척하고, 심지어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