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지인이 별자리점을 봐준 적이 있다. 나는 그 운세의 내용을 참 좋아해서 별자리 그래프를 냉장고에 붙여두기도 했다. 그때 들은 말 중에서도 나의 별자리 배치에는 예술적 재능이 하나도 없다는 말을 유독 좋아한다. 예술적 재능이 하나도 없다는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때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 좋아하고, 전시나 공연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종종 직접 창작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 때가 있을 텐데 오래 전에, 아주 오래 전에 내게 그런 재능이 한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직감하고 있었다. 간단한 그림을 그려도 엉망이고 음치에 박치에… 색깔 배치 감각도 별로 없고 취향도 이상하다. 그런데 별자리에 그런 재능이 하나도 없다고 나와 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재능은 있고 없고의 문제도 있지만, 있다고 했을 때 그 재능을 갈고 닦을 경제적, 계급적 바탕이 있어야 하고 또 온갖 다양한 운과 우연의 영향을 받는다. 무엇보다 애매하게 눈꼽만큼 재능이 있다면 그것은 참 괴로웠을 것이다. 그런데 좋아하지만 재능이 없다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물론 그 말이 내게 위로이고 다행이었다는 점은 예술과 관련한 활동을 포기한 시간이 좀 길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글 제목을 ‘드라마터그’라고 적고 예술적 재능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올해(아직 안 끝났지만) 운 좋게도 드라마터그 역할을 두 번이나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19년 퀴어락 전시회 이후 미술 전시와 관련한 어떤 자문이나 조언을 드리는 자리를 가질 때가 몇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괴로웠는데 기술적, 실무적 조언을 할 수 있는 부분은 있지만 예술적이거나 뭔가 조금만 다른 부분을 물어보면,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미술과 관련한 어떤 훈련도 받은 적 없는데, 내가 감히 무엇을. 그래도 아카이브/미술 전시 기획과 준비 등에 참가한 경험 자체가 있기는 하기에 어떤 종류의 이야기를 할 수는 있는데, 연극은 좀 다른 이야기다. 어떤 시기에는 일 년에 연극을 한 편 볼까 말까 했고 어떤 시기에는 연극을 여러 편 볼 때도 있고 그랬으니 연극 자체를 본 적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연극을 관람했다는 것과 연극 제작이나 구성과 관련해서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니까.
그렇기에 그냥 관객이자 작품을 해석하는 사람으로 딩가딩가 살 것이라고 고민했다. 물론 2023년 변방연극제와 구자혜 작가/연출의 제안으로 관객과의대화 같은 행사의 진행을 맡은 적이 있지만 그거야 활동이나 공부노동자로 오래 지내다보면 한두 번은 할 수 있는 일이지. 2024년 변방연극제에서 또 비평 행사에 참가한 것도, 내가 연극을 제대로 공부한 적 없고 예술 비평과 관련해서 훈련 받은 사람은 아니지만 대중문화를 해석하는 작업은 계속 해왔기에 할 수도 있는 일이지. 그런데 드라마터그는 좀 다른 일이다.
연극 제작에 직접 참가하는 이 작업은 내게 (여전히) 어려운 일인데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극 작업을 오래 한 분들에게 여쭤보면 다들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검색을 해봐도 원론적인 이야기가 있거나 오랜 경험에 따른 통찰은 있는데 이런 이야기가 생전 처음 현장에 참가해서 부딪히는 입장에서는 어렵기만 하다. 무엇보다 나는 연극을 제작해본 경험이 아예 없다보니 전체 과정 자체도 배워야 하는 형편이다. 그렇기에 드라마터그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 어렵고 또 어려운데, 나중에 들어보면 드라마터그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들의 경우, 개개인의 방식이 다 다르다고는 하더라.
그럼에도 드라마터그를 두 번 하면서 깨달은 것: 나는 연극 제작 과정에 참가하는 일을 좋아하고, 예술적 재능이 아예 없고 연극 제작에 참가해본 경험이 아예 없어도 때때로 연극 제작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것은 구자혜 작가/연출, 혹은 여당극 구성원의 환대와 친절함으로 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아무려나 그렇기는 했다. 어차피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은 텍스트를 해석하는 일이고, 텍스트의 의미값을 포착해서 설명하는 일인데 이것이 종종 제작 과정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내게 해석하고 의미값을 포착하는 작업은 공연 이후의 일이지 공연 이전의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해석 작업은 공연이 끝나야 필요하다는 나의 이해는 온전히 편견이었고 무지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어떤 해석은 제작 과정에서 유용한 단서가 되고, 어떤 해석은 반면교사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제 겨우 2번(어쩌면 1번?) 드라마터그를 하며 깨달은 것은, 뭐 대충 이런 것이다.
물론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여전히 드라마터그가 뭐냐는 설명을 요청받을 때면, 여전히 전혀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물론 원론적으로 할 수 있는 설명이 있기는 하겠지만, 내가 좀 더 선호하는 방식의 말하기를 하려면 한 5년 동안 일 년에 한 편이라고 꾸준히 해봐야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드라마터그로서 내가 뭔가 어떤 기여를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재미있다는 점이다.
암튼 이번의 기록은 일단 여기까지.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지만, 배운점2는 몇 년이 지나야, 혹은 다음 기회가 더 있어야 쓸 수 있지 않을까. 충분히 다 적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어떤 감각을 남겨둬야 나중에 또 다른 배움을 기록할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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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앞으로 어떤 종류의 행사에서도 진행자나 사회자 역할은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해석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행사 진행을 잘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최근 몇 번의 행사를 거치며 크게 깨달았습니다. 종종 크게 폐만 끼치더라고요. 그러니 혹여나 진행자나 사회자 역할로 요청을 주시면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어차피 1년에 한두 번이었으니 이런 말을 할 필요도 없나… 싶지만. 발언자나 해석하는 사람으로 불러주시면 기꺼이 참가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