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폭력에서 젠더와 섹슈얼리티, 메모

혐오 폭력에서 물리적 피해는 트랜스젠더가 주로 겪고 운동의 상징성은 게이 남성이 가진다. 이것은 추론이지만 백인 게이 남성이 혐오 폭력 피해를 겪었을 때와 비백인 트랜스젠더가 혐오 폭력 피해를 겪었을 때 소위 LGBT 단체로 불리는 곳의 반응은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물론 아직은 추론이다. 그리고 레즈비언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덜 논의되고, 바이의 혐오 폭력 피해는 아예 언급도 안 되는 듯하다. 나는 바로 이런 식의 위계가 혐오 폭력에서 젠더와 섹슈얼리티가 작동하는 지점이라고 믿는다.

다큐 ‘테네시 윌리엄스의 아들들’ 상영회

다큐멘터리 <테네시 윌리엄스의 아들들>을 상영한다는 소식이 있어 공유합니다.
저는 아마도 보러갈 듯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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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4년 3월 6일 (목), 오후 6시-8시30분
장소 아메리칸 센터 (용산구 남영동 전쟁기념관 옆)
프로그램 ‘테네시 윌리엄스의 아들들’ 영화 상영(한글자막).
          영화 상영 후 Tim Wolff 감독과의 대화(동시통역).
주최 주한미국대사관
*간단한 다과 제공*
2014년 2월 28일까지 ShinKH@state.gov로 참가신청 하시기 바랍니다.
찾아가는 법:
*영화 소개 홈페이지 (영어)
*영화 트레일러 보기 (영어)

시스젠더 의미, 메모

트랜스젠더란 용어는 역사적 개념입니다. 한 사람의 현재 몸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오며 몸과 젠더의 관계를 어떻게 겪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용어죠. 만약 시스젠더를 자신이 인식하는 젠더와 태어날 때 지정받은 신체적 섹스가 일치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면 저는 시스젠더입니다. 왜냐면 저는 mtf 트랜스젠더고 제 몸 역시 트랜스젠더의 몸, 트랜스여성의 몸, 그리고 여성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얘기하지만 제 턱에 난 수염 흔적은 제가 여성이기 때문에 그리고 트랜스젠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단지 현재의 몸 상태만 얘기한다면 저는 시스젠더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논리 장난을 치면, 저는 저를 트랜스젠더로 인식하고 제 몸은 트랜스젠더 몸이란 점에서 저는 시스젠더입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란 용어는 한 개인이 살아가며 몸과 젠더가 겪는 다양한 경합을 설명하는 용어란 점에서 저는 자랑스럽게 트랜스젠더입니다. 아울러 시스젠더란 용어는 단지 태어날 때 지정받은 젠더와 신체적 섹스가 일치하는 사람을 지칭하기 위해 등장한 용어가 아니라 트랜스젠더에 대응하는 용어의 필요에서 등장한 용어입니다. 트랜스젠더와 일반인이라고 말한다면 트랜스젠더만이 특이한 경험을 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규범으로 작동하는 이원 젠더를 자연화하지요. 그래서 비트랜스젠더와는 다른 어떤 용어가 필요했고 이를 시스젠더란 용어를 만들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을 놓친다면 트랜스젠더와 시스젠더를 분리된, 별개의 존재로 상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시스젠더는 트랜스젠더와는 다른 젠더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비트랜스젠더를 자연화하지 않기 위한 용어입니다. 몸과 젠더를 어떻게 경험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용어란 점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하고 이 지점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 역시 제가 시스젠더란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