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페스, 킹키부츠

히르페스

최근 얼추 한 달 동안 헤르페스가 세 번 발생했다. 입술 주변에 돋으니 눈에도 잘 띈다. 번거로워. 아무래도 피곤해서 그런 듯한데 기말이 끝나니 더 바쁘다. 내일부턴 조금이나마 쉴 수 있을까? 그런데 헤르페스가 계속 돋아나니, 내가 곧 헤르페스고 내 몸은 헤르페스의 숙주로만 존재하는 느낌도 든다. 이름을 루인에서 헤르페스로 바꿀까? 😛
킹키부츠
뮤지컬 킹키부츠를 봤다. 오만석 주연 판본을 봤는데, 내가 내린 결론른 두 번 볼 공연이 아닐 뿐만 아니라 딱히 추천할 퀴어공연도 아니라는 점이다. 프리실라 수준을 기대하고 갔는데, 헤드윅보다는 괜찮았지만 별로였다. 일단 오만석의 드랙퀸 연기는 뻣뻣하고 끼라곤 찾을 수가 없었다. 헤드윅도 했다면서 왜 이렇게 뻣뻣한 거지? 공연 중간중간에 “레이디스 젠틀맨,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아직 결정을 못한 분들”이라며 웃음을 유도한다. 드랙퀸 공연이라고 뭔가 센스를 발휘하려고 한 것 같지만 드랙퀸을 비롯한 트랜스젠더퀴어를 조롱하고 모독하는 말이다. 정말 기분 더럽다. 그런데 이 대사가 킹키부츠의 전반적 분위기를 응축하는 것이기도 하다. 퀴어 뮤지컬이 아니라 그냥 이성애-이원젠더를 옹호하고 지지할 뿐만 아니라 위로하는 공연이다.
(프리실라에서 부치 역을 했던 배우가 이 공연에선 ‘여성’ 중 유일하게 남성편을 드는 역으로 나온다. 매우 복잡한 감정을 일으키는데 다음에..)
그럼에도 매우 괜찮은 장면이 있는데, 오만석이 드랙퀸 분장 혹은 여장을 하고 있을 땐 덩치가 큰 몸으로 드러나는데 남장을 하고 있을 땐 몸이 줄어들고 왜소한 인상을 준다. 젠더에 따라 몸 크기가 달리 해석되는 순간이기도 하고, 의도한 것이라면 오만석이 연기를 잘한 부분이도 하다.
호불호는 개인의 선택이고 해석인데, 프리실라가 강추라면 킹키부츠는 비추다.

바이섹슈얼리티/양성애, 이성애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강의를 할 때면 트랜스젠더와 인터섹스를 사유하며 젠더 자체를 뒤흔들고, 수강생이 얼마간 불안을 느끼길 바랐다. 하지만 양성애를 통해 동성애와 이성애의 경계 자체를 불안하게 만들 때 이성애-비트랜스젠더 범주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걸 배웠다. 오늘 강의 자리에서 배운 이야기였다.
이른바 남+남, 여+여, 남+여 이미지를 보여주며 각각이 어떤 관계를 지칭하는지 물었고, 수강생은 남성동성애, 여성동성애, 이성애(작은 목소리로, 어느 한 분이 양성애)라고 답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식의 이미지는 성적지향 이슈에 있어 이성애를 성적 지향이 아닌 것처럼 가정하거나 양성애를 아예 사유하지 않거나 매우 희미한 존재로 만든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이런저런 설명을 했다. 양성애에선 연애를 할 경우 언제나 양성애가 비가시화된다고, 범주로서 존재가 비가시화된다고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하는 중간에 질문도 받았는데, 양성애 관련 설명을 하고 나자 한 분이 매우 흥분하며 이성애가 불분명하고 불안정하다는 것이냐며 따져물었다. 이성애만이 아니라 모든 성적지향이 그러하다고 답했다. 그냥 넘어간 것 같았지만… 첫 번째 쉬는 시간이 지나고 다시 시작했을 때 그 분을 포함한 3~4명이 자리를 비웠다. 두 번째 쉬는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구나.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로 바이/양성애가 끊임없이 부정되고 인식에서 사라지고 배제되는 것이리라. 이성애 범주, 동성애 범주 자체를 가장 불안한 상태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트랜스젠더가 성적지향을 불안하게 만드는 측면은 상상하지 않는데, 아마도 트랜스젠더의 섹슈얼리티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겠구나 싶다. 말을 해도 다소 피상적이고. 글쓰기 방식, 강의하기 방식을 바꿔야겠다.)
바이/양성애로 많은 가르침을 주는 E느님께 고마움을 전하며.
+
이것의 조금 다른 결론은 성적지향은 어느 정도 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침투가 되었지만 젠더정체성은 그렇지 않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
느낌적 느낌으로는 강의를 잘 받아들이는 것처럼 반응하는 사람 중엔 자신의 범주를 전혀 의심하지 않으며 그냥 좋은 이야기, 교양을 듣는 느낌이기도 하다. 반면 화를 내는 사람은 뭔가 불안을 느꼈다는 것이고 다른 말로 어떤 의심이나 흔들림을 느꼈다는 점에서 강의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뜻도 된다.

부산, 젠더

경기도나 서울에 있을 때보다 ‘너 뭐냐’란 표정을 훨씬 많이 마주했다. 특히 노년의 사람들이 날 유난히 노려보거나 ‘넌 뭐냐’는 얼굴로 날 보는 사람이 많았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부산이 더 보수적이라고 생각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약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짐이 좀 있어서 콜택시를 불렀다. 택시가 도착했는데, 기사님이 곧장 내리더니 내게 “허리 다칩니다”라며 직접 짐을 트렁크에 넣으셨다. 그저 친절한 분이구나,라며 기분 좋게 택시를 탔다. 운전도 안전하게 잘 하셔고 괜찮았다. 기차역에 도착하자 이번에도 기사님이 같이 내렸다. 그러곤 직접 짐을 내려주시며, “허리 다쳐요. 아가씨, 허리 다치니까 가만히 계셔요”라고 말씀하셨다. 닥치고 가만히 있었다. 아가씨라고 무거운 짐을 못 들 건 아니지만 내가 이런 대접을 또 언제 받으랴 싶은 마음도 있었다.

어쩐지 이번 부산행은 재밌는 젠더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