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이렇게 옅은 농도의 그리움에 빠지게 했을까. 빨아도 빨아도 너덜해질 뿐,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으로 얼룩진 삶. 막막한. 정적에 갇힌 시간들.
보고 싶고 그립다. 하지만 무엇이?
무엇이 이렇게 옅은 농도의 그리움에 빠지게 했을까. 빨아도 빨아도 너덜해질 뿐,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으로 얼룩진 삶. 막막한. 정적에 갇힌 시간들.
보고 싶고 그립다. 하지만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까. 그것을 망설이고 있다. 할 말은 너무 많아서 새로운 만남이 있을 때 마다 풍성해지고(며칠 전 학회 워크샵 뒷풀이 자리는 상당히 많은 논쟁거리를 안겨 줬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이야기들이 새로운 몸앓이의 가능성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도 아직 머뭇거리며 미루고 있다. 채식vegan에 대해 쓴다는 것, 생애사를 쓴다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님에도 힘들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현재의 루인이 가진 언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어서일까. 아님 무언가 더 앓게 하려는 몸의 언어/저항일까.
작정하고 오늘은 글만 쓰겠다고 하면서 다른 곳으로 회피하고(일테면 오델로-_-;;) 잠들기 전 새로운 다짐을 하고, 이런 생활의 반복. 이런 반복에서도 벗어나야 글을 쓸 수 있을까.
우리는 항상 서로의 불운을 경쟁했지요. 누가 더 많은 불운 속에 있는지 이야기 하고 ‘내’가 더 불운하다고 더 불운하다고 악다구니하며 지냈죠. 그래요, 우리는 서로의 불운을 멸시하고 그 불운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서로를 감시하는 관계였어요.
바람이 부는데도 뒹굴지 않는 낙엽을 보며 당신을 떠올렸어요. 당신이란 거울 너머 있는 저를 외면하고 싶었거든요. 더 불운해야만 사랑할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이 떠올라요. 그렇게 해서 남은 상처들이 다시 흉터로 남으려고 하네요. 썩을 수조차 없는 몸의 흔적들이 있어요. 실은 썩어가면서 더 선명해지는 흔적들이죠. 변하면 안 된다고 안 된다고 부둥켜안고 매 해 새로운 상처를 덧대고 그렇게 곪아가는 곳에 또 한 번 날을 들이밀고.
당신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요. 몸 한 곳의 욱신거림, 그 욱신거림으로 떠올리는 당신, 그리고 빗장 걸린 마음.
몸 한 곳에 이런 표정으로 웅크리고 있는 자신을 만나요.
당신은 안녕한가요?
전 안녕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