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단상

사용하지 않는 블로그 두 개를 제외하면 이곳은 루인에게 세 번째 블로그인 샘이다. 첫 번째 블로그가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블로그였다면 두 번째는 이글루스에서의 그것이었다.

첫 번째 블로그를 사용하다가 중간에 그만 둔 것은 사실, 답글 때문이었다. 악플러가 있어서가 아니라 답글 달기가 귀찮아서;;;;;;;;

커뮤니티라던가 뭐, 그런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기에 인터넷의 커뮤니티 방식이 낯설기도 했고 당시 블로그를 하면서도 블로그에 대한 어떤 명확한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블로그는 어떤 식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규율 같은 것이 있다고 몸앓지 않는다. 다만 일종의 홈피 정도의 개념으로 사용했다랄까. 암튼, 그런 상태에서 시작한 블로그였고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엮어 가는 것이 좋았지만 어느 한 편 부담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부담이라기 보다는 그 답글들이 문제였다.

그것을 일종의 의무처럼 여겼던 것이다. ‘나’의 블로그에 답글을 남겼으니 그럼 ‘나’도 그 사람의 블로그에 답글을 남겨야 겠지, 라는 식의 의무감. 그것은 자연스레 부담감이 되었고 꾸준히 블로깅을 해야한다는 부담감과 겹쳐 결국 접고 말았다.

1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다시 블로그를 사용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그간 블로그가 뭔지도 대충 알게 되었고(실은 잘 모른다;;;) 무리하지 않는 방법으로 조심스레 운영하면 재밌을 것도 같았다.

(이글루스에 얼음집을 지은 것은 순전히 스노우캣의 블로그가 이글루스에 있었기 때문. 그외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힛.)

이렇게 새로 시작하며 정했던 운영원칙(그것도 원칙이라면)은 비공개, 답글/트랙백 금지였다. -_-;; 이글루스의 기능 중 가장 좋았던 것은 비공개 옵션이었다. 직접 주소를 알려주지 않는 이상 다른 방법으론 들어올 수 없는 방식이 좋았다. 동시에 답글에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은 아예 답글을 달 수 없는 방식을 택하게 했다. 이것은 방문자에게도 부담 없는 것일 수 있다고 몸앓았다.

그런데 이제와 답글과 트랙백을 모두 열어둔 이유는 무엇이냐고? 어느 정도의 상호 소통이 필요하다는 몸앓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어차피 답글 쓸 사람은 달지 말라고 해도 쓸 것이고 안 쓸 사람은 쓰라고 쓰라고 해도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묘한 긴장에 빠진 루인을 발견하곤 한다. [Run To 루인]에 접속할 때마다 새로운 답글이 없나, 누가 방명록에 글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와 쓰지 않았으면 하는 기대-_-;

사실 이런 묘한 긴장감이 재밌다. 바라면서도 바라지 않는 것. 끌리면서도 끌리지 않는 것.

그냥 이럴 것 같다. 답글이나 방명록에 누가 남겨주면 반갑지만 그렇다고 딱히 남기지 않아도 무덤하게 그냥 그런 상태. 딱 이 상태.

#지금의 [Run To 루인]2nd의 성격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를 몸앓고 있어서 이런 글이 나왔나 보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언제나 그렇듯 사전 약속 없이 만났다. 만나자는 문자가 왔고 그러자는 답장을 보냈다. 아핫.

시원한 토요일 밤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배웠다. 특히나 홍대 같은 곳은 피해야할 대표적인 곳. 그렇게 사람 많은 홍대를 몇 시간씩 걸어다녔다. 한적한 곳을 찾아, 와우산이란 곳엘 가기도 했다. 산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고 모르긴 몰라도 백만년 만에 산에 올라간 것 같다-_-;; 산행도 운동이라면 운동도 백만년 만인것 같다-_-;;;;;;;;;;;;;;;;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살건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그러며 종종 어색하고 예전만큼 신나지도 않은 우리들을 발견했다. 그냥 심드렁한 것만 같은 모습. 친구는 회사원이고 루인은 학생이니 점점 관심사나 흥미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공통점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기에 만나면 어색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앞으로도 만날 것을 알고는 있다. 만날 즈음엔 어색함과도 같은 느낌이 감돌지만 헤어질 즈음엔 헤어지기 아쉬울 만큼 열을 올리며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에.

서서히 친해졌지만 그래서 오래 만나고 있는 관계이듯 그렇게 오래 계속될 것을 알고 있다.

아픈 몸은 언어의 증거이다

몸이 아팠다. 이 말은 병이 나서 아팠다는 것이 아니라 “언어 없음”으로 인한 몸앓이였다. 타인의 행동에 부당함 혹은 폭력성을 느꼈지만 그것을 표현할 언어가 없었다. 비단 타인의 행동에 대해서 뿐이랴. 루인,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잘못했는데, 분명 어떤 행동에 스스로도 깨림칙함을 느꼈는데 왜 그런지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지냈고 그런 불편함들이 몸에 쌓여 가면서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서 언어를 찾았는가.
혹은 언어를 배웠는가.

그 말을 기억한다. “자기 목소리를 가져라.” 혹은 “자기 언어를 가져라.” 이 말에 매혹되었다. 언어와 소통에 천착하는 루인이기에 이 말은 그 자체로 매혹이었다. 하지만 충돌하는 감정들. 이 감정의 출처는 어디일까.

소위 진보적이라고 자처하거나 운동권이라고 불리는 집단에서 “딸들아 깨어나라”와 같은 노래를 부른다고 들었다. “딸”은 깨어나야 할, 계몽되어야 할 대상인가. 정희진 선생님의 말처럼 “성차별에 저항하는 여자는 나쁜 여자로 찍히고, 가만있으면, “여성들이 의식이 없어서 문제”“고 여긴다. 마찬가지로 “목소리를 가져라”, “언어를 가져라”는 말은 목소리나 언어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이는 “딸들아 깨어나라”처럼 계몽의 대상이라는 타자화/대상화와 얼마나 다른가.

목소리가 없었다고 언어가 없었다고 몸앓지 않게 되었다, 어제 쓴 글에서도 적었듯. 목소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 있지만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말들, 언어들이 억압되고 억눌려진 것이다.

몸이 아팠던 건, 그리고 지금도 아픈 건, 언어가 없어서 생기는 감정들의 충돌들 때문이 아니라 억압하고 있는 자기 안의 언어/감정들이 깨어나려고, 발화하려고 몸을 타고 돌기 때문이다. 언어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들을 귀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혹은 그 언어를 발화하면 ‘처단’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언어가 없는 것처럼 가장假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장된 행동이 자신을 더 아프게 하는 ‘역설’적인 상황.

“언어를 가져라”, “목소리를 가져라”가 아니다. (이런 언설은 또한 몸과 정신의 이분법을 가정한다.) 자신의 몸이 곧 언어이고 목소리며 감정이다. 페미니즘은 언어를 주거나 목소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억압된 언어/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라고 몸앓는다. 그래서 아픈 몸 혹은 ‘무력감’은 허약함 혹은 약자/타자의 ‘약점’/본질이 아니라 발화하려는 몸의 팽팽한 긴장감이다. 몸이 아픈 건 현 상황에 부당함, 불편함을 느끼는 몸의 또 다른 발화 방식인 것이다.

자기 몸에 가장 편한 언어가 있다고 몸앓는다. 그 언어는 하나가 아니라 다양해서, 때론 모순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모순이 아니며 오히려 그것을 모순으로 여기며 한 가지 방식의 목소리만 강제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런 다양한 몸언어를 발화할 수 있기를…

Audre Lorde의 시 [Latany For Survival]를 기억한다.

and when we speak we are afraid
our words will not be heard
nor welcomed
but when we are silent
we are still afraid

So it is better to speak
remembering
we were never meant to survive.

어차피 잃을 것도 없다면, 아픈 몸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랑에도 올린 글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