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마감

글을 써야 하는 사람(대학원생 포함)이 종종 착각하는 것 중 하나는, ‘마감 시간은 넘겼지만 한 번이라도 더 읽고 조금 더 내용을 보태면 글이 더 좋아질거야’라는 믿음이다. 일천한 나의 경험에 따르면, 다른 말로 내 협소한 경험에 따르면 마감 시간을 넘겨가며 글을 쓰면서 글이 좋아지는 경우는 잘 없더라. 마감 시간을 넘긴 상황에선 마감 시간 전이나 후나 글은 거기서 거기더라.
글쓰기와 마감에 있어 염두에 두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마감 시간을 지킨 글이 잘 쓴 글이다. 마감 시간을 조금 넘기더라도 글을 한 번 더 고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한 번만 다시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마감시간을 지켜서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며 글 쓰는 일정을 조정할 때와 ‘이번에도 마감시간을 좀 넘겨서 내야지’라며 글을 쓸 때, 어느 경우에 글이 더 좋을까? 마감시간을 넘긴 글은 이미 글에 투자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글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예외가 있긴 한데, 이 경우 미리 마감시간을 조율해서 연장하지 마감시간을 일방적으로 어기진 않는다.)
이렇게 말하는 내가 단 한 번도 마감시간을 넘긴 적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면, 그리고 글을 잘 쓴다면 설득력이 있을 텐데 그렇지 않다는 게 함정. 일단 마감시간은 거의 다 지키지만 글을 못 쓰니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두 편의 글 중 하나는 몇 달, 다른 하나는 얼추 1년 넘게 마감을 연장하고 있다는 게 치명적 함정이랄까… 아하하. ;ㅅ; (편집자느님 죄송합니다.. ㅠㅠㅠ)

꼬이고 꼬인 일정

10월까지는 일정 관리를 그럭저럭 했다. 이번 학기 들어 계획한 일 중 하나는 주말엔 일절 일정을 잡지 않는 것이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엔 약속을 잡지 않는 것. 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그래야만 수업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중 5일은 매일 저녁 5시까지 알바를 하거나 수업을 들어서 주중에 수업 준비를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알바 끝나고 집에 오면 6시가 넘고 좀 쉬고 하면 금방 7시, 8시였다. 그러니 주말을 무조건 비워야 했다. 물론 부득이한 상황도 있었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의 주말 일정이지 그 이상은 아니었다.
11월 들어 어찌된 일인지 주말마다 계속 일정이 있다. 이틀 중 하루는 일정이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다. 수업 준비를 할 시간이 빠듯했다. 정말 빠듯했다. 주말에 수업 준비를 얼추 끝내고 주중에 수업 준비를 보충하거나 원고를 쓰거나 해야 하는데 주중에도 수업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토요일부터 촉박한 일정은 수요일 저녁에야 끝났다. 수욜 저녁에 한숨을 돌리면, 목욜 저녁이나 금욜 저녁에 또 다른 일정이 있었다. 주말을 확보하기 위해 주중에 주로 일정을 잡다보니 목요일과 금요일 저녁엔 거의 항상 일정이 있었다. 한숨 돌리고 다음 수업을 준비하거나 투고 원고를 쓰거나 다른 공부를 할 시간이 부족했다. 일정이 계속 꼬이고 밀리고 엉켰다.
지난 월요일은 임계점이었다. 그렇잖아도 알바하는 곳에선 짜증나는 일로 종일 기분이 처진 상태였다. 더구나 약속한 일이 늦어져서 급하게 처리해야 했고 화요일에 있는 수업 준비를 다 못 했기에 수업 자료도 읽어야 했다. 수업 자료를 다 못 읽었으니 수업 쪽글/에세이도 못 쓴 상황이었다. 누가 조금만 잘못 건드리면 폭발하거나 모든 걸 포기하거나, 둘 모두가 될 상황이었다. 부글부글. 이 상황에서 간신히 나를 다독이며 월요일에 처리할 일을 어찌어찌 모두 처리했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꼬인 일정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 주의 주말 일정은 참여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했는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12월 일정도 조절해야 한다. 12월이 되면 마감해야 하는 원고가 두 편이지만 그래도 숨통이 좀 트인다. 숨통이 트인다고 이런저런 일정을 잡다간 11월보다 더 위험하겠다 싶었다. 그래, 현재까지 잡힌 일정 말고 나머지 일정은, 부득이한 상황이 아닌 이상 잡지 말기로 하자… 좀 쉬자…
내년 1월까지 푹 쉬기로 했다. 차분하게 앉아서 책만 읽기도 하고 그냥 뒹굴거리기고 하고 글도 쓰고.. 좀 쉬기로 하자. 생계형 일(강의 같은 거..)이 아니면 다른 일정을 잡지 말고 그냥 쉬기로 하자…
올 한 해 숨차게 달렸다. 그러니 남은 한 달은 좀 쉬기로 하자. 글이나 쓰면서, 책과 논문이나 읽으면서 좀 쉬어야지..
+
표면적 일정으로 보면 상반기가 더 바빴다. 그럼에도 상반기에 덜 지쳤던 건 글쓰기 일정, 원고 마감 일정이 다수였다. 하반기는 원고 일정은 줄었는데 어디 참가해야 하는 일이 늘었다. 이게 힘을 많이 뺀다. 온 종일 집에 있는 건 좋아해도 외출은 피곤해하는 나로선 이 차이가 미치는 영향이 은근히 크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건 즐겁고 힘을 받지만 외출한다는 것 자체가 힘을 많이 뺀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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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은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에 달게요.. 죄송해요.. ;ㅅ;

생명연장 기술인 성전환? 평균의 의미

근래 몇 번 진행한 강의에서 되풀이한 내용이 있다. 나를 트랜스젠더로 설명하며 주변 지인에게 조금씩 말하던 시절, 한 지인이 내게 말했다. 호르몬은 절대 하지 말라고, 호르몬 하면 몸이 많이 아프고 일찍 죽는다고. 트랜스젠더는 일찍 죽는다는 말을 환기시키는 언설.. 이 언설로 여러 얘기를 할 수 있고 강의에선 좀 다르게 풀었는데(그 얘기는 수업 기말페이퍼 아이디어라 블로그엔 나중에 쓰는 걸로..;; ) 여기선 그와 다른 얘기를 하고 싶다.
나이듦과 관련한 글을 읽고 있노라면 종종 나오는 얘기가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산다는 구절이다. 이건 인구통계적 평균에도 부합한다. 소위 말하는 여성의 평균 수명이 남성보다 길게 나오니까. 그렇다면 만약 내가 의료적 조치를 시작한다면 이것은 생명연장의 기술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른바 남자의 몸에서 여성으로 의료적 전환을 겪는 것이며 여성의 평균 수명이 남성보다 길다면 mtf의 의료적 조치는 생명연장 기술이어야 할 듯한데… 후후후. 그러니 저의 기대수명은 120년에서 의료적 조치를 하는 순간 150년으로 연장될 겁니다. 우후후후후후후.
물론 농담으로 하는 얘기지만 이 농담엔 뼈가 있다. 평균 수명이라는 언설을 밑절미 삼아 논의를 전개한다는 것 자체가 특정 여성만을 포함하겠다는 뜻이며, 트랜스여성을 비롯한 트랜스젠더는 사유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언설이 단지 트랜스젠더를 배제하기에 문제란 의미가 아니다. 그보다 ‘인구의 평균적 XX’라는 사고 방식을 비판하는 인식론에서 특정 지점에선 이 평균을 질문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문제란 뜻이다. ‘인간의 평균’으로 논의를 전개할 땐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여성의 평균’은 왜 그냥 넘어가는 것일까? 나이듦과 관련한 책을 읽으며 이런 지점이 불만이다. 그렇다고 이런 가정에서 전개하는 모든 논의가 다 불만인 건 아니고, 특정 지점이 걸린달까.
그러니까.. 생명연장 기술로서 mtf의 성전환수술을 사유의 기본틀로 가져가야 한.. 아, 이건 아닌가..;; 근데 아주 아닌 건 아닌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