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노아의 헤어볼

오늘 나와 H가 비슷한 수준으로 경악한 사건.

퀴노아가 토했다. 그런데 몸이 안 좋아서 토한 게 아니라 헤어볼을 토했다. 로켓을 타고 가며 봐도 헤어볼이었다. 그리고 나와 H는 경악했다. 니가????? 니가 왜??????

그러니까 퀴노아는 그루밍을 하지 않는 고양이다. 털에 뭐가 묻어도 냅뒀고 목욕을 시켰을 때도 대충 그루밍 흉내 몇 번 내다가 그냥 돌아다녔다. 그래서 퀴노아는 살며 헤어볼을 토할 일이 없었고 퀴노아의 털은 주로 귀리의 헤어볼에서 발견되었고(귀리는 꿀묘라 구분이 된다) 퀴노아의 그루밍은 보리와 귀리가 해줬다. 물론 그루밍을 해줘봐야 욕만 먹었지만.

그럼 빗질을 해주면 되지 않느냐 하는데 이런 고양이가 그렇듯(이라고 쓰고 전에 읽은 고양이 만화에 나온 다른 고양이의 경우 밖에 모른다) 빗질도 싫어한다. 보리는 빗질을 해주면 500미터 밖에서도 고릉거리며 달려온다. 귀리는 빗질을 해주면 화를 내면서 떠나지는 않는데, 일단 귀리는 다른 냥이들보다 털 생산량이 3배라 어지간하면 붙잡고 빗질을 한다. 퀴노아는… 화낸다. 음… 화낸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고 쌩 난리를 친다. 정말 누가 고양이를 학대하거나 납치하려는 걸까 싶을 정도로 난리를 치며 하악거려 빗질 한 번이 어렵다. 그리하여… 보리와 귀리가 그루밍을 해주거나 어쩌다 빗질 두 번이 귀리에게 허용된 최대치다.

그래서 살면서 퀴노아의 헤어볼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런데… 너도 이제 그루밍 정도는 하는 고양이가 되었구나 ㅠㅠㅜ

SNS로그

ㄱ.

사실 별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오래 아무 것도 안 쓴 거 같아 그냥 끄적이는 잡담

ㄴ.

금서와 관련한 행사에 참가를 했는데, 내가 금서와 관련해서 뭔가를 한 적이 없기에 다소 민망했지만… 나는 또 내가 한 적 없는 주제로 요청이 오면 오히려 좋아하는 유형이라 뭐라도 발표를 했고 행사에 누를 끼치지는 않은 듯하여 다행이었다. 뭐 다음에 다시 할 일은 없겠지만 이를 계기로 고민을 정리할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ㄷ.

마찬가지로 연극과 관련해서 서울변방연극제의 구자혜 작가/연출과 관련한 행사에 참여했다. 내가 뭘 잘 한 거 같지는 않아 부끄러웠고, 다행스럽게도 행사 자체는 재미있게 끝났는데(세 개의 세션을 모두 참가했다면 진짜 재밌는 기획이었음을 알 수 있었을 듯). 살면서 내가 한 일들은 모두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갔지만 그저 요청이 왔을 때 거절하지 않아서 생긴 일 같다. 승낙하고 무서워하다보면 어떻게 되어 있더라고. 그래서 그나마 기여를 하면 다행인데 기여를 제대로 못 하면 미안하고 부끄럽고 죄송할 따름이다. ㅠㅠ

ㄹ.

나는 지극히 정치적인 인간이고(하나마나한 소리) 당파성이 선명하지만 이곳에서는 가급적 그와 관련한 발언을 자중하는 편이다. 선거를 앞둬야 그나마 좀 떠드는 정도? 자중하는 이유는 간단한데, 자중하지 않으면 이곳이 정치 블로그가 될 것이라는 불안과 자중해야 고민의 속도를 조정할 수 있는데 판단을 서둘러 내릴까봐. 그럼에도 하나만 남기면… 아니다. 그냥 마저 자중하는 게 맞겠다. 어차피 일상에서 만나는 주변 사람에게는 말하고 있으니 그걸로 충분하지 무슨 나까지 블로그에 정치 이야기를 하냐.

ㅁ.

요즘 안타까워 하는 거. CDP 버리지 말고 잘 챙겨둘 걸. 워크맨 잘 챙겨두고 몇 백 장의 카세트 테이프 잘 챙겨둘 걸. 진짜 워크맨으로 음악 듣고 다녔다면 잼났을 텐데. 하지만 진짜 아쉬운 거. MD플레이어와 디스크 잘 챙겨둘 걸… 이게 찐인데… 물론 기기가 많아지면 그렇잖아도 보부상인 나의 가방은 더 무거웠겠지.

ㅂ.

어쩌다보니 아이돌과 트랜스 페미니즘으로 강의를 하기로 했는데… 때마침, 혹은 애석하게도 이 주제로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사건도 있어 이를 다루며 말하면 좋겠다 싶다. 아이돌은 정말로 노동자일 수 없는가? 아이돌은 자신이 속한 프로듀싱 과정과 기획사의 상황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 청춘 그 자체인 아이돌은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없는가? 뭐 이런 주제를 다룰 수 있겠다 싶고. 굿즈나 티셔츠 구입해서 착용하고 가야지.

ㅅ.

와… 추석인데 엄청나게 덥다. 너무 덥다. 이 와중에 헤이홈이 고장나서 에어컨을 못 켰다… (H가 방법을 찾아줬다.) 인터넷을 바꿔야 할지 헤이홈 말고 다른 것을 찾아야 할지 공유기만 별도로 구매해서 바꿔야 할지… 고민이다. IoT는 만약을 대비한 리모컨을 구비해야 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마찬가지로 왜 IoT 제품은 2.4GHz 인터넷만 지원하는지 이해가 안 되고 블루투스를 겸용으로 지원하지 않는지도 이해가 안 된다. 인터넷이 끊겼을 때를 대비하여 태더링이나 블루투스를 지원해야 하지 않나… 이번에 깨달은 바가 커서 헤이홈은 그냥 버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헤이홈 홍보를 좀 했는데, 반성합니다. 결정적일 때 보완적 장치가 없는 기기는 그냥 쓰지 않는 게 낫겠습니다…

글쓰기

이번에 핼버스탬의 실패로 강의를 했는데, 끝나고 이것으로 글을 쓸 수 있겠다 싶었다. 심지어 구자혜 연출 색자 공연의 “뺨을 맞지 않고”는 네 번 전체 공연을 다 참가했는데, 모 님이 논문 쓸 거냐고 물어봤었다. 그냥 즐겁게 관람했는데 논문이라니… 그런데 쓸 수 있으면 좋겠지.

지금 쓰고 있는 논문이 두 편이 있는데 둘 다 얼개는 다 있는데 나머지를 채우기가 어려워 시간을 끌고 있다. 얼른 써야 하는데… 그 와중에 내년에는 한국 트랜스젠더퀴어 인권 운동사를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자료 얼추 있고 방향에 대한 고민도 얼추 해둬서 쓰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내가 지극히 게으르다는 점이다. 50~70% 정도 작성한 원고가 열댓 편 정도 있는데 완성 안 시키고 그냥 묻어둔 이유도 내가 게을러서다. 부지런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귀찮은지… 하지만 게으른 것은 핑계고 글을 쓸 줄 모르고 공부할 능력이 안 되는 것이 진실인 것이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오늘 개강했다. 2019년 처음 대학 제도 내에서 강의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학부 강의를 하는데, 그래서 매우 긴장했다. 조금 무서웠는데 학부생이 무서운 게 아니라 내가 헛소리를 하거나, 바뀐 분위기를 못 따라갈까봐 무서웠다. 그래서 소개를 하며, 학부 강의는 처음이라 많이 어색할 거라고 고백부터 했다. 어쩌겠는가. 그럴 듯하게 능숙함을 연기해봐야, 어색한 사람은 물을 마실 때도 어색한데. 실제 물을 마시다가 쏟았다… ㅋㅋㅋ 그래서 그냥 학부 강의 처음임, 이런저런 수업 방침은 조정할 수 있음을 시전하며 시작했다. 그래야 수강생도 정정기간에 빨리 철회하지.

아무려나 이번 학기에 논문 두 편 마무리할 수 있을까. 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