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 선언문

[어쩐지 미리 써둔 글이 이것 뿐이라… 다른 글을 올리고 싶었는데… 흠.. 흠…]
현재 이 블로그의 writing 메뉴 ‘루인의 글’ 목록엔 첫 번째 글로 “트랜스젠더 선언문 1/2”을 올려뒀다. 하지만 루인이란 이름으로 처음 쓴 글은 선언문이 아니다. 트랜스젠더 이슈를 다룬 첫 번째 글 역시 선언문이 아니다. 이랑 시절 쓴 글 중 트랜스젠더 이슈와 직간접 관련 있는 글이 몇 편 있다. 루인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쓴 글도 몇 편 있고(글을 읽는 순간, 이건 ‘루인이 썼구나’ 하겠지만… 하하 ;; ). 그 글을 목록에 올릴지, 선언문 이전 시대의 글로 그냥 덮어 둘지 고민이다. 물론 이건 나만의 고민이고 관심 있는 분은 거의 없을 듯;;
고작 나 따위에게 00시대 이전, 이후란 구분을 붙이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런 구분을 하는 건 “선언문”이 나 자신에겐 상당히 의미 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이슈와 관련해서 작정하고 쓴 첫 번째 글이기도 하고, 석사 지도교수와 사제의 연을 확정해준 글이기도 하고, 지혜 선생님과의 인연을 맺어준 글이기도 하다. 그 글 한 편에만 다양한 역사와 의미가 담겨 있다. 다들 그런 글 한 편 정도는 있지 않나? 잘 쓴 글은 아닌데, 잘 쓴 글이 아닐 뿐만 아니라 문제가 될 소지가 많을 수도 있는데, 그 글에 다양한 사연이 있어서 각별한 의미를 가지는 글. 실체는 파묻어 없애버리고 싶다고 해도 그 글이 존재했다는 기록만은 꼭 남겨두고 싶은 글. “선언문”이 내게 그렇다.
언제 용기를 내서 한 번은 다시 읽어봐야 할텐데… 용기가 안 나네.. ㅠㅠ
뭐, 이렇게 말해봐야 현재 비공개로 묶여 있고 실제 읽은 분이 몇 안 되니 이곳에 오시는 분들껜 의미 없는 넋두리에 불과하겠지만..
다른 한편, 이랑 시절의 글은 이랑에서 운영한 웹진에 올렸고, 웹진은 벌써 오래 전에 사라졌고, 웹진에 올린 글 중 몇 편만 인쇄 형태로 남아 있다. 인쇄 형태로 남은 것 중 일부는 전문이 아니라 발췌 판본이다. 찾아봐야겠지만 내게도 최종본이 없을 가능성이 크달까. 물론 다행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지만.. 으하하. ;;; 역사 조차 지우고 싶은 건 아니지만 흔적은 없애고 싶은 글 하나 정도는 다들 있지 않나요… 전 지금까지 출판한 모든 글을 회수하고, 사람들 기억에서 소거하고 싶어요.. 그래서 루인이란 사람이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글은 썼다고 하는데 무슨 내용인지 아는 사람은 없으면 좋겠어요… ㅠㅠㅠ

두서 없는 잡담

ㄱ.
화제였던 것 같은 김혜나의 <정크>를 일전에 읽었다. 한줄 평가하면, 일단 소설부터 좀 잘[제대로] 쓰고… 소설부터 잘 쓰면 그때 그 소설로 다시 논평하겠습니다… 다시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ㄴ.
어쨌거나 <정크>는 게이가 주인공이니 퀴어락에 등록해야 할까? 한 권 더 구매해야 하는데 그 돈이 아까워… 헌책방에서 구하는 것도 아까워… 어떡하지… 이 책 구매해서 읽고 내놓으실 분 계시면 퀴어락으로 버려주세요… 히히.
ㄷ.
-성적소수자를 지지하면 곧 성적소수자의 입양권도 지지해야 하는가?
-동성결혼을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곧 호모포비아인가?
… 이것이 딱 떨어지는 정답이 있는 이슈인가요? 퀴어 공동체 및 퀴어 학제에서도 각자의 다양한 위치와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말 그대로 여전히 논쟁적 이슈 아닌가요? 제가 잘 몰라서 하는 질문입니다.
ㄹ.
혐오와 인권감수성 돋는 표현을 가르는 분명한 대답 혹은 정답이 있다면, 저는 그 정답을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그 이슈를 공부하겠습니다. 혐오와 지지를 분명하게 가르는 정답이 있다는 인식, 이 둘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다는 인식에 문제의식이 있어 공부를 하기도 하는 저로선 때때로 난감해요.
며칠 전 교황선출과 관련해서 추기경 중 여성이 없음을 두고 MBC 기자는 시대착오적이라고 했던가, 구시대적이라고 했던가. 이런 논평은 명백히 박근혜를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이 큰데, 여성이 참여하면 곧 성차별 없고 (적당히) 진보인 걸까? 다른 한편 ‘동성’을 성추행했다고 고소당한 추기경도 많은데, 그럼 비(규범적)이성애자 추기경이 꽤 있다는 얘기다. 이런 부분은 왜 평가를 안 하지?
어느 한두 가지 잣대로 재단하지 않고 그 특유의 폐쇄성을 좀 더 복잡하게 사유할 방법은 없는 걸까? 복잡한 것을 복잡하게 사유하기란 정말 어렵구나… ㅠㅠㅠ
ㅂ.
며칠 전 수업 교제로 벨 훅스를 (다시)읽었다. 읽고 좌절했는데 나는 벨 훅스처럼 글을 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난 안 될 거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벨 훅스의 대중적 글쓰기와 관련해서 지혜 선생님의 깔끔한 요약은, “벨 훅스는 대중적으로 쉽게 쓰기 위해 내용을 희생하지 않고, 내용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면서 형식을 바꾼다.”
대중적 글쓰기, 쉬운 글쓰기는 복잡한 내용을 단순하고 단편적으로 전달함이 아니라 복잡한 내용을 복잡하게 다루되 이것을 전달할 형식을 바꿈이다.
ㅅ.
벨 훅스의 책은 정말 중요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고 빼어난 성찰이 많은데도, 신기할 정도로 한국에 번역도 많이 되어 있는데도 의외로 안 읽히는 경향이 미스테리. 내가 벨 훅스의 초기 4부작으로 페미니즘을 공부해서 이러는 건 아니고.. 흠.. 흠.. ;;; 물론 종종 오드르 로드(오드리 로드)로 처음 공부했다면 더 좋았겠다는 고민을 하지만요…

외부성기재구성 수술 없이도 ftm/트랜스남성의 성별변경을 허가한 법원의 판결을 환영합니다.

기사: 한겨레 “[단독] 법원, 성전환자 성기수술 안해도 성별 전환 첫 허가” http://goo.gl/KxQJn

연합의 후속기사 “성전환자 성기 성형수술 안해도 성별전환 첫 허가” http://goo.gl/X3vgF
이번 소송을 함께한 희망법의 보도자료: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보도자료] “기존 성 제거수술 했다면 성기성형 없이 성별정정 가능” http://hopeandlaw.org/100
공식적으로 어제, 다섯 명의 ftm 트랜스남성이 외부성기재구성 수술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법원이 공부상 성별 변경을 허가한 결정이 났습니다. ftm 트랜스남성의 경우, 외부성기재구성수술 기술이 의료기술적으로 충분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흔히 말하는 남성형 외부 성기를 구성하는 기술이 충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재수술할 확률이 매우 높은데 수술비는 mtf 트랜스여성에 비해 훨씬 더 비쌉니다. 이런 이유로(물론 이런 이유만은 아니지만) 많은 ftm 트랜스남성이 외부성기재구성수술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에 반해 이제까지의 대법원 사무처리지침은 모든 트랜스젠더에게 외부성기재구성수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의 이런 요구는 공부상 성별변경을 바라는 많은 트랜스젠더의 현실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트랜스젠더와 인터섹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동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대법원 사무처리지침을 비판했습니다.
1990년 6월 첫 mtf 트랜스여성의 성별변경을 허가한 판결이 있은 이래로 이번 서울서부지법의 판결은 ftm 트랜스남성의 요구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판결입니다. 2006년 대법원에서 성별변경을 공식 허가한 이후 기록에 남을 또 하나의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번 판결을 환영하며 이후 다른 판결 역시 이번 판결을 판단 기준으로 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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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성명서 판본으로 작성하려고 애쓴 것… 물론 실패했습니다.ㅠㅠㅠ
ㄱ.
토요일 아침 8시도 안 된 시간에 전화 주신 연합뉴스 기자님… 마치 이번 판결과 관련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어리버리하게 받은 점 죄송해요. 하지만 이번 판결에 제가 숟가락을 얹을 순 없거든요. 저에게 연락하실 게 아니라 기사에도 나와 있는 한가람 변호사에게 연락하셨어야 했어요… 그렇다고 제가 이번 판결을 둘러싼 전말을 아는 것도 아니라 할 수 있는 얘기도 별로 없지만요. …물론 이 글을 안 보시겠지만요… 흐.
ㄴ.
전 어제 오후나 저녁 즈음 기사가 나올 줄 알았는데… SOGI 연구원께서 오늘 단독기사로 나올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아침에 단독 기사로 나왔어…
암튼 초기 17개 댓글은 모두 캡쳐했고 저녁 즈음에 다시 댓글을 캡쳐해야 겠어요. 어떻게 최다 추천수 댓글이 바뀌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재밌거든요.
ㄷ.
이번 판결 소식을 전해 듣고 자궁 제거 수술도 하지 않은 경우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네요.. 유방 제거 수술은 당연히 했을 거라고 여겼지만 자궁 제거 수술은 안 한 경우이길 상상했던 저는… 언젠간 남성형 외부성기재구성수술을 하지 않은 경우 뿐만 아니라 자궁 제거 수술도 하지 않은 ftm 트랜스남성의 성별 변경도 허가되길 바랍니다. 궁극적으로는 국가가 개인의 젠더를 판단하지 않는 세상을 바라고요.
ㄹ.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부분은 이번이 정말로 첫 판결인가 하는 점입니다. 아는 사람 중에 외부성기재구성수술을 하지 않고 성별 변경을 허가 받은 경우가 있어서입니다(확인이 더 필요한 지점입니다). 물론 두 판결을 등가로 비교하기 힘든 건, 지인의 경우 수술을 할 수 없는 몸의 조건이 있었고요.
첫 판례인가 아닌가라는 지점이 이번 판결의 중요성을 훼손하진 않습니다. 하리수 씨가 한국 최초의 트랜스젠더가 아니라고 해서 하리수 씨의 존재 의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요. 지난 판결과 이번 판결은 기획과 의도 자체가 다르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접근해야 하거든요.
ㅁ.
외부성기재구성수술을 하지 않은 ftm 트랜스남성의 성별변경은 허가되었고, 그럼 이제 외부성기재구성수술을 하지 않은 mtf 트랜스여성의 성별변경은 어떻게 될까요? 겉모습은 여성으로 통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고 이런저런 의료적 조치를 했고 고환절제술도 받았지만 음경(혹은 큰 클리토리스, 트랜스클리토리스)은 유지하고 있을 때, 법원은 어떻게 판결할까요? 이 부분과 관련해서도 이번과 같은 판결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다른 말로 의료적 조치가 공부상 성별을 변경하는 기준이 되지 않길 바랍니다.
ㅂ.
이번에 공부상 성별 변경이 허가된 다섯 분의 ftm 트랜스남성에겐 축하의 인사를 보냅니다. 물론 앞으로의 삶도 만만하지 않지만요… 그래도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