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점한 대여점 단상

집 근처에 비디오와 만화책, 소설책을 대여하는 가게가 있었다. 이사올 때부터 있었으니 꽤나 오래 되었겠지.
신기했다. 아직도 이런 대여점이 남아 있다는 것이. 장사가 될까, 궁금했다. 아니 주인장이 장사에 관심이 있는 건지 궁금했다. 규칙적으로 문을 여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오후 늦게까지 문을 안 열다가 저녁에야 문을 열었다. 어떤 날은 주말인데도 문을 안 열었다. 문을 여는 시간도, 닫는 시간도 불규칙했다. 장사가 안 된다는 의미거나 장사에 뜻이 없다는 의미거나.
주인장에겐 미안했지만 내가 이 동네를 떠나기 전에 폐업하고 재고처분하길 바랐다. ;;; 그 가게 앞을 지나갈 때마다 폐업을 앞두고 재고처분을 한다는 공고가 붙길 기대했다. 그렇담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긁어서 만화책을 잔뜩 살텐데. 어쩌면 귀한 비디오와 DVD를 구할 수도 있을 거고.
나의 바람이 통했을 리 없으니, 그냥 주인장의 뜻이리라. 어느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데 가게가 텅 비었다. 어랏. 만화책, 비디오, 책장 등이 모두 빠져 나가고 없었다. 으헉… 폐업은 했는데 재고처리는 안 했다. 아마 어느 헌책방이나 재고처리 전문 가게에 헐값으로 넘긴 것이리라. 주인장 입장에선 현명한 선택이지만 내 입장에선 아쉬웠다. ;;;
그 가게는 그렇게 텅 빈 상태로 있을 줄 알았다. 새로운 가게가 들어서기엔 재개발 문제도 있으니까. 그래서 내부에서 뭔가를 정리할 때마다 신기했다. 작업부들이 일을 할 때마다 신기했다. 왜?
오늘 아침, 알바하러 가는 길에 공고를 봤다. 김밥천국에서 일할 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으잉? 이곳에 가게를 연다고? 이 동네에 드디어 김밥천국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살짝 좋았다. 그러며 혼자 망상하길, 설마 몇 달 장사하려고 가게를 개장하는 것은 아니겠지? 근데 구인공고가 대여점 위치가 아닌 다른 위치의 것은 아니겠지? 설마 함바집을 예정하고 가게를 여는 것은 아니겠지? 최소한 몇 년은 버틸 것을 예정하고 가게를 여는 거겠지? 혼자 온갖 상상을 한다.
난, 이 동네에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부동산에 물어보면 가장 쉽고 확실한데 귀찮아서 이러고 있다. ;; )

호모포비아 관련 기사

기사: [단독]호모포비아… “이런 게이××들” 묻지마 폭행 http://goo.gl/yBZuB
동아일보에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기사의 기승전결에 따르면 초반에 언급한 A씨의 가해자는 그 자신이 동성애자면서 호모포비아란 결론이 난다. 뭐, 그 자신이 동성애자면서 호모포비아가 있는 것 자체는 이상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기자라면 최소한 문맥을 제대로 맞춰 써야 하는 것 아닌가?
댓글은 가관이다. 아울러 댓글을 읽고 있노라면 정말 논문으로 써야 할 법한 주제가 넘친다. 동성애는 한국 것이 아니라는 웃기지도 않은 댓글부터 각종 혐오 발화가 난무한다.
이런 반응에 논리로 반박하면 효과가 있을까? 논리로 백 년 반박해도 소용없다. 혐오는 기본적으로 논리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호모포비아의 혐오발화는 그 자신의 불안과 공포, 취약함을 은폐하기 위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혐오발화자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딱 하나 뿐이다. “뭐가 그렇게 무섭니? 우쭈쭈쭈” 혐오범죄 이슈에선 결국 감수성의 변화가 중요할 수밖에 없고 이런 이유로 논리보다 더 어렵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런 기사를 한국에서 들으며, 이제 시작이겠구나 싶어 걱정이다.

‘오’에 집착하시는 미야베 미유키

요즘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리즈를 읽고 있다. 『괴이』, 『혼조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를 읽었고, 지금은 『메롱』을 읽고 있다. 지금까지 읽은, 읽고 있는 작품은 현대물과는 느낌이 좀 다르다. 뭐, 재밌는 건 여전하고.
근데 불만은 여성 캐릭터 이름. 세 권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중,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메롱』의 다에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여성 캐릭터의 이름이 ‘오’로 시작한다. 오린, 오엔, 오쓰타, 오리쓰… 이 정도는 약과다. 『메롱』에 에피소드 수준으로 가게를 운영하는 이웃의 두 가족이 등장하는데, 그 집단에 속하는 네 명의 여성 캐릭터 이름이 오하쓰, 오슈, 오리쿠, 오시즈. 등장하는 귀신 다섯 중 여성 캐릭터가 둘인데 그들 이름 역시 오우메, 오미쓰. 나처럼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우는 입장에서 이렇게 비슷비슷한 이름이 계속 등장하면 곤란한데.. ㅠㅠ
에도 시대의 모든 여성 이름이 ‘오’로 시작한 것도 아닐 텐데 일부러 이러는 것? 심지어 『괴이』, 『혼조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메롱』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이름이 상당히 겹친다. 이쯤되면 ‘오’로 시작하는 이름을 여럿 만들어 놓고 에도 시리즈물에서 반복해서 사용한다고 추정할 수 밖에… -_-;;
그나저나 에도 시리즈물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이름이 모두(한둘 예외는 있겠지만) ‘오’로 시작한다면 이것도 대박이겠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