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01
한동안 귀차니즘에 빠져 있었다. 지금도 만사가 귀찮다. 이럴 때 엄마님은, “만사가 귀찮으면 죽어야지.”라고 일갈하실 텐데. 큭. 나의 성깔은 집안 내력인 게야. -_-;;

02
이젠 원두커피를 마실 수 있다. 어떤 경로를 통해, 드립할 수 있는 도구들이 생겼다. 살고 있는 곳 근처에 커피를 맛있게 볶아 주는 곳이 있으니 이 어찌 아니 좋을까. 훗. 다만 커피를 입에 달고 살겠구나… 하는 걱정 아닌 걱정도 같이 하고 있달까.

03
오는 토요일, 31일은 퀴어문화축제의 행사 일환으로 진행하는 퍼레이드가 있는 날이다. 농담처럼 한 해 비가 오면 다음 해는 비가 안 오고, 그 다음 해엔 비가 온다고 했다. 작년엔 비가 안 왔는데, 올핸 어쩌려나. 일단 기상청 예보엔 비가 안 온다고 나와 있다. 비 오면 안 되는데.

이날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에서도 부스를 설치하고 퀴즈쇼를 할 예정이다. 몇 명의 참가자들을 보고, 저 사람의 성별과 성적 지향이 어떤 것 같은지 얘기하는 쇼. 맞추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를 말하는 게 핵심. 나 역시 어떤 옷을 입고 있을 예정. 푸훗.

퍼레이드에선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인데, 어떻게 하려나.

04
목요일에 모 대학에서 화장실과 관련한 특강을 하기로 했다. 잘 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주제가 좋아서 한다고 했다. 아니 하고 싶었다.

지금까지의 특강은, 대체로 “트랜스젠더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특강은 화장실이란 공간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자리이다. 지금까지 특강을 하며 느꼈던 답답함 혹은 지루함을 넘어설 수 있는 자리라 꽤나 기대하고 있다.

감동적인 말들

다큐 [3×FTM]엔 세 명의 ftm이 등장하는데, 이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고종우씨다. 적잖은 페미니스트들이 좋아할 법안 명진씨나 활동가로서의 언어와 정체성이 분명한 무지씨와 같은 캐릭터를 좋아할 것 같은데, 실제 다큐를 읽고 나면 가장 인상적이고 좋아하는 캐릭터는 고종우씨다. 활동가로서 활동을 하다보면, 이전까지 사용했던 언어에서 활동을 통해 익히는 언어로 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점에서 고종우씨의 언어는 날 것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날 것의 언어를 통해 삶의 어떤 진실을 명징하게 포착하고 드러낸다.

그런 말들 중에 가장 좋아하는 말들이 있는데, “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다 받아들여요.”란 말과 “내가 내 삶엔 전문가니까요.”란 말이 무척 좋다.

ftm인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을 여성으로 설명하면서 남성의 옷을 좋아하는 걸 이해하지 못 한다고 종우씨가 말하는 장면이 있다. 술을 마시고 있는 와중에 하는 말인데, 이해는 못 하지만 받아들인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자신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이기에 타인의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받아들인다는 말. 아름답다고 느꼈다.

물론 이 말이, “결국 당신이 ftm이 아니었다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 아니냐.”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내게 이 말은,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성찰하고 이런 성찰을 통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 중에, 완벽하게 기득권인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도 많은 경우, 기득권의 편을 드는 경우가 빈번하다. 하지만 종우씨는, 자신이 기득권일 수 없게 하는 상황, 사회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을 통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고자 하는 셈이다.

“내가 내 삶엔 전문가니까요.”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무척이나 감동했는데, 이 말처럼 내 자신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많은 경우처럼, 트랜스젠더 역시 연구의 대상, 다른 누군가가 설명하고자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아울러 어떤 자리에 트랜스젠더가 나가면 트랜스젠더는 경험 증언자이고 전문가가 별도로 있어서 트랜스젠더의 경험을 해석해주고 설명해주는 역할을 하곤 했다. 활동을 시작하던 초기, 어떤 단체에서 사업을 기획할 때 특히나 이런 구도를 많이 취했다. 그래서 언제나 불쾌했다. 그러니 종우씨의 이 말이 ‘내가 내 삶을 완벽하게 알 수 있다’란 의미가 아니라, 기존의 학력, 학벌, 전문가 권위 등에 기대지 않으려는 의지, 다른 누군가가 나를 설명하게끔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는 의지로 다가오기도 했다.

아니, 아니. 이런 식의 해석 따위 필요 없다. 그냥 이 말 자체가 멋지잖아. 힘을 주는 말이란 점에서, 그냥 좋아.

풍경들

어제 늦게까지 회의를 하고, 玄牝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갔을 때였다. 늦은 밤의 지하철은 술 냄새를 비롯한 역한 냄새가 심해서 별로 안 좋아하지만 버스가 끊긴 시간이라 선택사항이 없었다. 터벅터벅 졸리는 눈을 비비며 지하로 내려가 개찰구를 지나가려할 때였다. 한 게이커플이 서로 헤어지길 아쉬워하며 손을 붙잡고 있었다. 아, 수줍어하면서도 헤어지길 못내 아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내가 특강을 갔던 수업의 한 수강생이, 자신은 자신이 게이로 오해 받는 상황이 너무 싫어서, 관련 논의들이 활발해지는 게 싫다고 말한 사람이 떠올랐다. 지금은 이성애연애를 할 생각이 없고 그저 일을 열심히 하고, 성공하면 그때 연애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주변의 몇몇 사람들이 이런 말을 듣곤, “혹시 게이 아니세요?”라고 물었다고 했다나. LGBT와 관련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많은 사람들이 LGBT란 용어가 익숙해질수록 오해가 많이 생긴다고 싫다고 했다. 불편하다고 했나? 이 말을 들은 이후부턴 자신이 이성애자로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이 말 자체가 재밌었다. 게이로 보이기 싫어서, 이성애자로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 게이처럼 보이지 않는 건 어떻게 하는 것이며, 이성애자처럼 보이는 행동은 어떤 걸까? 이후 이 사람은 자신이 남성을 사랑한다는 상상만 해도 토악질이 난다고도 했다. 근데 이 일련의 말들이 재밌었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했다. 모든 강한 부정이 긍정은 아니지만, 어떤 강한 부정은 긍정이기도 하다. 사실 이 사람의 행동들은 오히려 자신이 게이/바이인데 아닌 척 하는 거거나, 자신이 게이/바이일 수 있다는 자기 안의 어떤 느낌을 부인하고 싶은 상황이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주기도 한다. 물론 정말 아닌데 이런 오해가 많아서 이렇게 강하게 부정하는 걸 수도 있다. 자기 입으로 얘기하지 않는 이상 옆에서 섣불리 추측하고 단정할 수 없기에 그저 이런 저런 상상력만 펼쳐볼 따름이다.

하지만 어제 지하철 개찰구에서 헤어지길 아쉬워하는 게이커플과 자신은 자신이 게이일 수도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공존하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아마 이들은 때로 같은 공간에서 일할 수도 있을 테고, 서로 지나가다 마주치거나 아는 사이로 지낼 수도 있다. 아울러, 자신은 자신이 게이일 수도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구역질난다는 그 사람의 말이, 게이혐오에 기반하고 있음에도 “그런 말은 게이 혐오야!”라고 단정해서 말하기 힘들다. 아마 예전 같았으면 “그런 게이 혐오야. 넌 호모포비아야.”라고 말했겠지. 지금도 이렇게 간단하게 말하는 버릇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쉽게 말하기가 힘들다. 이런 말은 때로 자기혐오를 드러내는 말일 수도 있는 만큼이나, 이런 방식의 표현을 혐오로만 단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냥 이런 풍경들, 반응들이 재밌었다. 12시가 넘은 늦은 밤, 졸린 눈을 부비며 탄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문득 이렇게 공존하는 상황들이, 각자가 품고 있는 고민들이 좋았다. 부인하는 반응이,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정황이기 때문에 좋은 것만은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