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덤함: 인권위 사업

사업계획서를 쓰는 데 너무 많은 도움을 준 ㅅㅅ님께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해요. 그리고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언제 발표 하는지, 발표 결과는 어떤지 신경써준 많은 분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해요.

올 해 지렁이 사업을 계획하며 인권위에 사업을 하나 내기로 했다. 애초 목적은 쉼터 사업의 일환이었고, 구체적인 안건을 짜다며 교육 자료집에 초점을 맞춘 내용으로 수정했다. 아직 외부 기금을 받는 사업을 한 적이 없어 다른 단체/개인 활동가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마감 직전에 제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제가 결과가 나왔다. 선정 되지 않았다.

놀랍지도 않았고, 실망하지도 않았다. 덤덤했고, 그러려니 했다. 언제 우리가 돈이 없어서 사업을 못 했나? 인권위만 돈줄이냐? 훗.

결과를 전해 듣고 안도하기도 했고, 좀 더 제약 없이 사업을 할 수 있겠다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사업계획서를 쓰는 과정 자체가 무척 중요한 경험이었고, 올해 사업을 진행하면서 더 많은 고민과 좀 더 세심하고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으면, 그때 사업계획서를 내는 편이 더 좋은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올해 인권위 사업으로 선정되어 그 인권위가 요구하는 속도에 얽매여 움직이기 보다는, 그런 제약 없이 지렁이가 원하는 속도에 원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경험도 필요하단 점에서 잘 됐단 느낌도 들었다. 발족이후 단독 사업을 진행한 일이 별로 없으니 이 기회에 중요한 경험을 쌓을 수 있으리라.

오히려 더 좋은 기회가 왔다.

다만, 주변의 많은 분들에겐 미안하고도 고맙다.

Cat Power [Jukebox]

총 8장의 앨범을 냈다. 그 중에 마타도어(Matador)에서 낸 앨범은 6장. 재밌는 건 마타도어에서 낸 앨범은, 첫 두 장은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들로 이루어졌고, 세 번째 앨범은 커버 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들로 이루어진 앨범을 두 장 냈고, 여섯 번째 앨범은 커버 곡들로 채운 앨범이다. 마타도어에서 낸 여섯 번째 앨범이 이번에 발매한 [Jukebox]다.

사실, 첫 번째 커버 앨범인 [The Covers Record]는 그다지 만족스러운 앨범은 아니었다. 원곡과 비교해서의 문제가 아니라, 이 앨범을 캣 파워가 직접 작곡한 곡들로 이루어진 앨범이라고 가정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만족스럽지 않아서 문제였다. 그 만큼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들로 이루어진 앨범이 빼어나단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앨범을 발매한다는 소식을 듣고, 약간은 우려했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새 앨범이 발매 된다는 데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을까. 더구나 국내에도 수입되어서 판매하고 있는데 어찌 매장에 달려가지 않을 수 있을까(개인주문을 할까 하다가 소량이라도 수입될 거 같아 기다렸다). 행여나 가게에 가는 길에 다 팔려서 품절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했다. 다행히도 재고가 남아 있었다. 오늘 확인하니 품절로 바뀌어 있네. 내가 산 게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앨범이었거나 한두 장 남은 앨범이었거나, 그랬던 거 같아. 후후.

설레는 기분으로 재생을 했는데, 아아, 이건 감동이야. 첫 곡 “New York”부터 약간의 전율이. ㅠㅠ 이전의 커버 앨범인 [The Covers Record]가 개개의 곡들이 들려주는 완성도와는 별개로 한 장의 앨범으로 듣기엔 약간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는데, 이번 앨범은 정말 기획을 잘 한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한 장의 앨범이라는 맥락에서 각각의 곡들을 편곡한 느낌이고. 이 느낌은 1940년대 녹음한 소울 혹은 재즈 음원을 몇 번의 작업을 통해 음원을 깔끔하게 살려낸 것만 같달까. 이런 느낌으로 녹음을 편곡하고 녹음한 거 같아. 그래서 무엇보다도 좋아.

아울러 이전 앨범에서 들려준 성격을 이 앨범에서도 이어 받고 있는 느낌이야. 자기 앨범의 연속이면서 커버 앨범이라는 성격도 같이 살리고 있는 느낌.

아, 또 한 동안 묘력만 들을 거 같아.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