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

01

주 5일
하루에 한 두 시간 근무
가급적 재택근무를 선호하지만, 가까운 거리면 출근도 가능
월급 200만 원인 직업 구함.

… 이런 알바 어디 없느냐고 했더니, 이런 알바가 있다고 소개하는 줄 알았다는 반응만 들었다. 근데 진짜 어디 이런 알바 없나요? -_-;;

02
19일이면 종강이자 기말페이퍼 마감이다. 종시 혹은 논문자격시험도 모두 통과했고. 일단 12월 말까진 놀 예정이다. 영화와 소설책을 읽으면서 열흘 정도 빈둥거릴 예정이다. 아아, 걱정은 빈둥거리겠다는 강박과 압박에 시달리면 어쩌지? -_-;; 아님 며칠 ps네에나 다녀와야지. 그리곤 내년 1월부터 계획에 따라 진행해야겠다.

논문은 아마 내년 12월 즈음 마감하는 걸로 고민 중이다. 낮에 지도교수와 얘기하며 이런저런 고민을 말했는데, 괜찮은 얘기도 들었다. 특히나 처음부터 너무 전공을 좁게 잡지 말하는 말과, 기초를 탄탄히 하라는 말씀. 선생님 고마워요!

아무튼 19일까지는 기말페이퍼 기간.

03
9일에도 불법시위가 있다. 우헤헤. 이번에도 무지개건널목시위. 히히.
좀 더 즐거운 계획도 있다.

04
정말로 19일은 종강하는 날일뿐이다.

이런 내가 싫어;;

지난 화요일엔 얼추 새벽 2시까지 출판과 관련한 얘기를 나눴다. 화요일 저녁엔 촛불시위가 있었고, 수요일 오전엔 수업발제가 있었다.

수업 발제문을 대충 준비하고 촛불집회에 갔다가, 출판회의를 하고, 새벽에 玄牝으로 돌아오면서, 이대로 몸이 좀 아파서 내일 수업에도 안 들어가고, 아픈 핑계로 좀 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었다. 발제문을 다 못 쓴 상황이었고, 몸은 무척 피곤했고, 그래서 수업이 있는 날 몸이 아픈 행운 정도, 일생에 한 번 정도 있어도 괜찮다고 중얼거렸다.

우하하.

그래서 어제 블로그에 새로운 글이 올라오지 않은 건 아파서냐고?
그럴 리가 없다. -_-;;

새벽 늦게 들어가서 잠들었건만, 평소와 같은 시간에 잠에서 깨었고, 수업 발제문을 그럭저럭 완성해서 나쁘지 않은 발제를 했다. ;;; 이런 내가 싫다는 상념이 안 들었다면 거짓말이다. -_-;; 아무튼, 교정본 원고를 다시 고쳐서 넘겼고, “성전환자와 성병예방” 강의도 들었다(이 강의와 관련해서 각별히 재밌는 일이 있었는데, 그건 나중에, 후후).

지금은 연신 하품을 하고 있다.

[길]의 외전: 몸의 형태가 전하는 말

일전에도 적었듯, 부산에 갈 때, 혼자가지 않았다. 서울에 사는 줄 처음 안, 먼 친척을 비롯해서 몇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하는 이들 세 명과 같이 내려갔다. 그렇게 하니 기차표 가격이 무척 싸더라는;; (KTX의 동반석인가 해서, 네 명이 마주 앉을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같이 가고 싶지 않은 건, 아주 어렸을 땐 친했는지 몰라도 지금은 서먹한 사이이고, 루인은 막연하게 그 사람들에게 보수적인 면이 있다고 지레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어색한 사람들과 만나는 건 어색함 이상을 견뎌야 하기 마련.

아무튼 그렇게 먼 사촌들과 내려가는 동안, 썰렁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그런 와중에 루인의 손톱을 눈치 채기 시작했다. 이른바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 세 사람의 반응은 각기 달랐다. 일단 다들 침묵했다. 말해선 안 되는 무언가로 간주하는 건지, 말할 엄두가 안 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런데, 놀랍게도 한 명이 집요하게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사람들의 반응은 더욱더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질문하는 사람과, 힐끔 쳐다보곤 매니큐어는 일단 무시하고 얘기를 나누는 사람, 말도 안 거는 사람. 매니큐어와 관련해서 계속 질문하는 사람은, 직접 칠했느냐, 네일아트도 자주 하느냐, 예쁘다, 내 손톱은 너무 못 생겼다, 등등의 말을 했다. 의외로 관심이 있는, 자신도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어 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이런 ‘관심’속에서 그 “질문하는 사람”은 “여자 친구 있느냐”는 질문을 했고, 없다고 하자 “네가 여자라서 그렇구나”라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그 사람의 맥락에선 농담이었지만, 이 말이 살짝 재밌다고 느꼈다. 당연히 그 사람은 루인의 이러저러한 상황들을 모르기에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한 것과 현재 “여자친구”가 없다는 이유로, 젠더를 이렇게 표현할 줄이야…. 그런 후, 지금까지 사귄 적은 있느냐고 물었는데, 이때도 없다고 했다. (현재 있는지 없는지, 지금까지 있었는지 없었는지의 실제 여부와는 무관하게 이런 자리에선 그냥 없다고 하는 게 상책이다. 아니면 여러 가지로 피곤하다.) 그러자 그 “질문하는 사람”은 “혹시 남자에 관심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라는 질문을 했다. 이 놀랍고도 곤혹스러운 질문이라니!

놀란 건, 그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같이 내려가는 세 사람은, 상당히 보수적인 동시에 섹슈얼리티나 성적지향과 관련해선 무관심으로 지낼 거라 짐작했는데, 다른 어디서도 듣기 힘든 이런 질문을 듣다니. 그래서 상당히 놀라면서도 곤혹스러웠음에도 일단 “그렇지는 않아요”라고 답했다. (여기서 어떻게 대답하느냐가 중요하지요.)

하지만 이렇게 대답하기까지, 상당한 갈등과 곤혹스러움이 있었다. 어쩌면 “그렇지는 않아요”가 아니라 “아니다”라고 답했어야 정확한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렇지는 않아요”라는 대답도 쉽지 않았던 건, 이런 식의 부정이 단순히 “나는 게이가 아니다”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게이가 아니다”라는 말은 “나는 규범적인 이성애 남성이다” 혹은 “비록 규범적인 젠더표현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는 이성애 남성이다”란 의미를 내포한다. 예전에 이런 저런 방식의 설명이 귀찮기도 했고, 한창 고민을 하고 있던 상황이어서, 그냥 “비이성애자”라고만 말했던 적이 있다. 놀랍게도(놀라는 것이 이상한 건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비이성애자”란 말을 곧 “게이남성”으로만 해석했고, 그래서 나의 위치를 “게이남성”으로 고정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레즈비언이나 레즈비언 트랜스일 가능성을 언급한 사람은 없었다. (어떤 사람은, “저, 트랜스예요”라고 말하자, 게이남성을 설명할 때 나를 지칭하기도 했다. 물론, “모든 트랜스젠더는 이성애자”란 식의 언설이 지배적인 상황에선, 게이남성이나 트랜스여성이나 차이가 없어지는 지점이 있긴 하다-_-;;)

의미가 유사하다는 점에서 “남자에게 관심이 있느냐?”란 질문을 “너는 게이냐?”란 질문으로 바꿀 수 있고, 대답이 결국 “예” 아니면 “아니오”로 수렴되기 마련이란 점에서 곤혹스러웠다. “그렇지는 않다”라는 말은, 나의 비이성애적 상황, 퀴어인 상황, 비이성애 트랜스인 상황들이 모두 지우기 때문이다. “그렇지는 않다”라는 말은, 트랜스젠더로서의 상황이나 레즈비언으로서의 상황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게이남성”으로서의 상황만을 부인한 것임에도, 이 모든 것을 다 부인하고 “규범적인 이성애 남성”으로 나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차라리 침묵을 택하는 것보다 더 곤란한 갈등을 일으켰다.

물론 이런 갈등은, 그 상황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항상 경험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경험은 아니었다. 그저 이런 상황을 극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이럴 때마다, 낯설게 내 몸의 상황을 깨닫는 동시에, 몸의 형태가 그 사람의 무엇을 알려주는지 다시 한 번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