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TG? 나 TG! ]: 트랜스들과의 만남

2006.06.03. [너 TG? 나 TG!] PM 07:00~10:00 | 서울 i-SHAP센타

1.
두근거림과 설렘으로 도착했다.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회의 중엔 아무 말도 안 했다. 루인의 성격이 살아난 찰라. 아무래도 처음 접하는 사람들만 가득한 곳에서 뭔가를 말한다는 건, 아직은 낯설고 두렵다. 말하기 보다는 글쓰기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뭐, 오프라인으로 알면서 이런 모습을 접한 적 없는 사람들은 “믿을 수 없어!!!”라고 말하겠지만.. 크크크.

어떤 얘기로 소감을 적어야할까, 어렵다. 그래서 어제 이 글을 적을까 하고 접속했다가 제목만 적고 관뒀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데 아직 뭐라고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 아마, 기말논문을 쓰면서 일정 부분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용과는 별 상관없다고 느끼지만, “보수적이다”, “진보적이다”, “급진적이다”와 같은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느낀다. 그날 트랜스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논의를 하며 그리고 뒷풀이 자리에서 관련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다. (물론, 법제화 관련해서의 의미이다. 즉, 성별정정관련법안을 만들면서 어디까지를 트랜스로 범주화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만약 법제화가 없다면 이런 식의 재단하는 논의는 그 날 그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수술까지 해야 트랜스고 성별정정을 할 수 있게 할 것이냐, 호르몬단계에서 할 것이냐, 정신과에서 “젠더 정체성 장애”란 진단을 받으면 정정할 수 있게 할 것이냐의 논의들. 이 과정에서 그리고 나중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의견이 너무 급진적이라고 표현했고, 그날 자리에 있는 사람을 지칭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트랜스들은 너무 보수적이란 표현을 했다. 물론 이런 표현들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는 안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보수적이다 혹은 진보적이다, 와 같은 구별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느낀다. 자신의 의견이 너무 급진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사실, 특정 커뮤니티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수사이다. 넌/그들은 너무 보수적이야, 라고 말하는 것 역시 일종의 답답함-소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답답함을 표현하는 수사이다. 그럼에도 이런 수사는 문제다. 보수적이냐 진보적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왜 그 사람은 그런 식의 목소리를 가지느냐가 중요하다고 느낀다.

얼마 전, 한 수업에서, 요즘의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처럼 미니스커트를 입고 화장을 한 “여성”을 볼 때면, “남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건 아닌가”하는 느낌이 든다는 얘길 들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때 루인은 묻고 싶었다, 그 사람이 ‘이성애’자라는 보장이 어딨느냐고, ‘레즈비언'(“꽃펨”? ― TG모임에서 들은 말이다)이거나 트랜스”여성”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소심해서 발화하지는 안았다. 그 사람이 ‘이성애’자고 “남자에게 잘 보이려고” 그렇다면 그건 또 어때. 문제는 왜 그렇게 하느냐이다. 어떤 맥락에서 그렇게 옷을 입는가를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2006년을 살고 있는 루인에겐, 질문을 이런 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그렇지 않으면, 루인의 욕망과 트랜스로서의 삶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때 너무도 수술을 하고 싶었지만 지금에 와서 왜 수술을 하지 않고 현재의 몸으로 살기로 했는지, 그래서 완전히 동화(passing)한 모습으로 살고 있거나 트랜스가 전혀 아닌 것 “같은”(!) 외모로 살고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트랜스가 “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는 가짜야”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이 “보수적”이라고 느끼기 보다는 왜 그런 말을 하는지가 궁금하다. 그 날, 국가에 시혜를 바라고 인정받고 싶다는 얘길 들었는데, 지금의 루인으로선 결코 쓰지 않을 언어이며 신랄하게 비판하는 언어지만, 그 사람이 왜 그런 식의 언어를 구사하는지, 그것이 더 궁금했다. “보수적이다”, “진보적이다”와 같은 언설은 그 기준을 말하지 않고 있을 뿐더러(“보수”와 “진보”의 기준은 누가 정하지?) 그 말을 하는 맥락을 묻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느낀다.

2.
잠깐 쉬는 시간에 얘기를 나눈 사람이 있다. 수다회가 끝나고선 전화번호도 교환했다. 루인의 손톱-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을 보고 말을 건네 온 그 사람과 한 얘기.

그 사람의 파트너가 네일아트를 한다며, 루인보고 너무 예쁘게 했다고 관련 도구 세트를 갖추고 있느냐는 얘길 나누다가, 루인이 한 말.
: 발톱이 자랑이에요. 누가 농담으로 한 얘긴데, 루인은 발톱이 가장 예쁘다고. 크크크
농담이 아니라 진짜 들은 얘기다. 흐흐.

파트너가 있느냐는 말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독신이라고 했다. 그러자, 독신과 연애를 안 하는 건 다르지 않느냐고, 그래서 대답한 말.
: 안 사귀다 보니 탄력 받아서 계속 안 사귀고 있다고.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여서 같이 웃었다.

최근 친구와 비슷한 얘길 한 적이 있다. 연애를 안 하느냐고. 별로 관심이 없다고, 대답했다. 물론 하고 싶다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다고 해서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는 철저히 거부하고 있고, 그래서 “연애하기 싫어!!!”하는 아우라를 온 몸으로 내뿜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까. 안 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한데, 지금은 책이랑 논문들이랑 신나게 놀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석사논문을 살 때까지(!!!, 어떤 의미에서 대학원은 돈 내고 학위를 사는 제도잖아… 흐흐) 지금처럼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루인의 성격이, 어떤 일에 영향을 받으면 그 타격이 꽤나 오래가고, 초기엔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서, 초반엔 아무 일도 못하고 상대방으로 인해 거의 미칠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탐닉]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딱 루인의 얘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럴 시기가 아니라 책이나 논문들과 미친 듯이 사랑할 시기다.

3.
그러니까, 이 날, 커피를 쏟은 건 징조였다. 뒷풀이 장소로 가는 길에, 샌달이 끊어졌다. 순간 당황. 물론 예상은 했지만 그것이 그날 그 자리일 줄은 몰랐다. 뒷풀이 장소에서 임시 조치를 했지만 헛수고였다. 갈등했다. 맨발로 지하철을 탈 것인가 택시를 탈 것인가. 지금에 와선 그냥 맨발로 지하철을 탔으면 재밌었을 거라고 아쉬워하지만 그땐, 그럴 경황이 아니었다. 그냥 택시를 탔고 택시에서 내려 玄牝으로 가는 길까지만 맨발로 걸었다. 맨발이 좋을 것 같지만 별로. 서울의 도로는 너무 지저분해서 오히려 몸에 안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재밌었다. 유리에 찔리지 않아서 다행이랄까. 갑자기, 맨발로 지하철을 탈 걸 하는 아쉬움이 마구마구 밀려온다. 풋.

더글라스 샌더스: LGBT인권

더글라스 샌더스 교수 초청 강연회
LGBT인권: UN과 아시아국가 법정에서의 투쟁 (LGBT Rights: Fights at the UN and in Asian courts)

일 시 : 2006년 6월 2일(금요일) PM 7:00
장 소 : 서울iSHAP센타
주 최 : 퀴어문화축제 기획단
주 관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후 원 : 아름다운 재단 공익변호사모임 [공감]

흥미로운 자리였다. 두 가지 의미로.

우선, 번역과 통역을 다시 고민한 자리였다.

영어를 잘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작년, 고려대의 생활도서관과 임지현씨가 인터뷰를 한 책을 읽다, 대학원생들이 토익이나 토플 점수는 높은데 영어논문을 읽으면 무슨 소린지 이해를 못한다고 비판한 내용이 흥미롭게 다가왔었다. 영어 책 한 페이지를 읽는데 한 시간은 걸리고 단어와 문법을 잘 몰라 헤매던 당시의 루인에게 그 말은 의외였고 흥미로움이었다. 이후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체감할 기회를 가졌고 그래서 영어회화를 잘 하거나 단어를 많이 ‘안다’는 것이 곧 글을 읽고 해석(번역의 의미가 아닌)할 수 있는 의미가 아님을 느끼며, 재미있었다.

어제의 자리가 그런 자리였다. 통역하는 사람은 영어는 잘하지만 배경지식의 부족으로 상당히 곤혹스러워했다. 그래서 때론 강연을 들으러 온 사람들이 그게 아니라고, 지적하며 다시 통역하기도 했다.

무척 흥미로운 순간이었다. 어떤 지식이 독점이 아닌 순간, 더 이상 권력으로 작동할 수 없음을 생생하게 구경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관련해선 이 글을] 뭐, 그래도, 간신히 몇 개의 단어를 알아듣는 수준의 루인으로선 그 나마의 통역이라도 고마웠다.
([Run To 루인]에 올 리 없지만, 수고하셨어요.)

또 다른 흥미로움은, 지역적인 것의 전지구적인 상황이다. 영국에서의 판례가 홍콩에 영향을 미치고 짐바브웨이의 판례와 호주의 판례가 한국에 영향을 미치고, 피지의 판례와 일본의 판례가 한국에 영향을 미치고… 이런 식으로 별로 상관없을 것 같은 외국의 판례들이 한국에서 법을 제정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건, 운동이 특정 국가의 경계에 한정해서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의미한다. 물론 지역마다 맥락이 있기에 어떤 식으로 해석할 것인가의 논쟁이 발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의 트랜스/이반queer 혐오범죄가 결코 그곳에만 국한한, 한국의 트랜스/이반에겐 무관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웃겼던 건, 인권위가 이반들 관련 법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단체들의 논리적인 근거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외국에 그런 판례가 있느냐를 요구했다는 것. “인권은 보편적 당위”라는 식의 언설이 코미디가 되는 순간이다. 법제화를 위해선 그것이 “보편적 당위”라거나 설득력 있는 논리가 아니라 그저 “남”들도 그렇게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인권위 소개글에 보면

라고 적혀있는데, 이 말이 무색한 순간이다.

끝나고 나오는 길에, 예전에 베지투스 모임에 갔다가 만났던 분을 만났다. 대충 누군지는 떠올랐다. 그 분이 시간이 괜찮으면 게이바에 갈 건데 같이 안 가겠느냐고 물어 잠시 고민했다. 미국의 교수가 한국 ‘게이’들의 밤문화를 알고 싶어서 간다면서,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동인연 사람들도 온다고. 하지만 시간은 밤10시였고, 그 시간이면 루인으로선 심리적 통금시간이다-_-;; 흐흐. 재밌는 건, 왜 게이바는 젠더에 상관없이 가는데 레즈비언바는 특정 젠더만 갈 수 있을까, 이다. 물론 이 맥락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아, 그래서 시간이 저녁이었으면 갔을까? 글쎄다. 바든, 클럽이든 음악 소리 크고 담배 냄새나고 술 마시는 공간은 별로인 루인으로선 저녁이라도 거절했을 가능성이 크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아무튼, 그렇게 어제는 흐르고 있다.

눈을 뜨니 6시 45분이었다. 45분이나 늦잠을 잤다. 라디오에선 손석희와 김종배가 뉴스를 정리하고 있었다. 우울하고 조급함이 밀려왔다.

잠이 덜 깬 것인지, 긴장이 풀렸는지, 늦잠의 처벌인지, 사무실에 와서 커피를 두 번이나 쏟았다. 한 번은 바닥에, 또 한 번은 책상에. 책상에 있던 책이나 가방은 무사한데 쌓아둔 논문들이 젖었다. 일부분이 커피에 물들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변색한 것처럼 눅눅하다.

아, 그제야 떠올랐다. 아침에 온 몇 개의 문자. 회원/고객관리 차원에서 보내는 것들이다. 그러면서 또 다른 사실이 떠올랐다. “이팀장” 생일이 얼마 전이었다는 걸. 음력을 계산했다. 푸훗. 오늘과 내일 이틀 연속으로 생일이다-_-;;;;; 웃기다. 이틀 연속 생일이라니.

생일선물은 푸짐하다. 퀴어문화축제 행사의 하나인 수다회에서, 마침 오늘 [너 TG? 나 TG!]를 한다. TG, TS(트랜스젠더transgender, 트랜스섹슈얼transsexual)와 고민 중인 사람들만 참석할 수 있는 자리다. 루인에게 이 보다 좋은 자리가 있을까. 다만 토론 내용은, 너무 논쟁적이다. 성별변경의 법제화와 관련한 내용인데, 모든 법제화를 반대하고 기존의 모든 법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루인으로선 모호한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는 주제다. 지지하지만 반대한다는 의견은 가능할까? 이분법으로 나뉘는 논쟁에선 불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루인은 지지하지만 반대한다.

생일 따위 모른 척 지나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느꼈던 적이 있다. 초등학생 저학년 즈음 이후로 생일을 건너뛰는 날이 많았기도 하고 루인은 축하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란 느낌 때문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생일을 물으면 언제나 대답을 피했다. 물론 요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작년부터, 스스로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자기에게 선물을 주고 있다. 작년엔 [우리 시대의 소수자 운동]을 주었다. 올해는? [메종 드 히미코] DVD가 나왔다면 이 DVD를 주겠지만 아직 안 나왔나 보다…라고 적고 확인하니 이미 출시했다. 흑. 그렇다면 [스윙걸즈]와 [청연: 특별판]을 사려고 했던 계획을 취소해야 한다. 흐흐. 이히히히히히. [메종 드 히미코]보다 좋은 선물이 어디 있겠어.

이젠 그냥 이렇게 스스로 축하는 방식으로 보내고 싶다. 조용히 스스로를 다독이며 축하하는 방식. 우울하게 시작한 하루지만 “다 괜찮아”라는 말로 다독이는 하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