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에 쓴 글 고치기

두 달도 더 된 글을 고치며 어색한 문장과 엉성한 구성에 뭔가 갑갑함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새로 쓰기엔 감당할 자신이 없고 기존의 글을 고치기엔 뭔가 몸에 안 들어서 후회만 잔뜩 할 것 같다.

예전에 너무 몸에 안 들었음에도 어떤 이유로 공개했던 글이 있다. 쓴 사람의 입장에선 너무 싫어서 그 글을 썼다는 사실 자체를 지우고 싶었는데, 읽는 사람의 입장에선 꼭 그렇지는 않았나 보다. 그럼에도 너무너무 그 글이 싫어서 지금도 그 글이 느껴지면 얼른 외면한다.

지금 글이 꼭 그럴 운명에 놓인 것 같다. 뭔가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어색한 것 같기도 하다. 속상하다.

학교/책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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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도 없이 학교에 갔다. 일이 있긴 있었지만 굳이 오늘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냥, 생활의 패턴을 좀 만들까 싶어서 갔다.

보통은 玄牝에서 뒹굴며 노는 편이다. 근데 가끔씩은 그 효율이 떨어지는데, 방바닥과 친하게 지내다 보면 애정이 주체할 수 없이 커져서 만두베개 사이로 숨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무실에 매일 나갈까 했다. 연구실에 간다고 특별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책상이 있다는 사실 하나로 뭔가 다르게 느껴지니까. 玄牝의 강점은 책상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 가자 선생님들의 전화가 왔고 몇 가지 사무를 처리했다. 가지 않았으면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었지만 오히려 잘 된 점도 있어서 불만은 없다. 오늘 가지 않았다면 해야 할 일이 기약 없이 미뤄졌을 수도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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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도서관을 통해 책을 세 권 주문했다. 문과 같은 이과라 비싼 등록금이 억울해서 읽고 싶은 책은 항상 주문한다. 교보에 없는 책도 있거니와 새 책을 가지는 것과는 별도로 제본을 해서 읽는 종류의 책들이기 때문이다. (거의 병적으로 책이 구겨지거나 더럽혀지는 것을 싫어한다. 루인이 책과 처음 닿았을 때의 그 상태 그대로 읽고 보관하는 편이다. 그래서 다섯 번인가 읽은 책을 한 번도 안 읽은 책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CD도 마찬가지인데, 玄牝에 있는 CD들은 비닐포장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이런 루인을 향해, 누군가는 “너 A형이지?”라고 했다.)

이번 주문이 어쩌면 학부 마지막 주문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가졌다. 뭐, 곧바로 대학원에 갈 예정이라 특별할 느낌 같은 건 없다. (아직 대학원 등록금을 안 냈기에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계속 연결되기 때문에 두 달이 훨씬 지나서야 받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주문했다. 졸업식을 하기 전에 필히 더 주문을 하리라 하면서도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느낌은 조금 묘하다. 섭섭한 것도 아니고 아쉬운 것도 아니고 시원한 것도 아닌 그냥 묘한 느낌이다. 그 비싼 등록금이 억울하다는 느낌일 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더 많은 책을 주문해서 본전을 찾았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일지도;;; 크크

채식이 중산층 특권이라고?

01. “생물학이 운명이다”란 말을 접한 적이 있다. 페미니즘에선 조금 ‘유명’한 말인데, 이 말을 통해 젠더차별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원래 이렇고 여자는 원래 그래”라는 식의 언설들이 모두 “생물학은 운명이다”란 말과 닿아 있다. 그래서 이 말에 대항하며 나온 말이 “생물학은 운명이 아니다”이다. 어떻게 읽으면 유용할 것 같지만, 별로 재미없는 말이다.

루인이라면, “그래, 생물학은 운명이다. 그런데 네가 말하는 생물학과 운명은 어떤 의미냐?”고 묻겠다. 루인의 입장에서도 “생물학은 운명이다.” 루인에게, 운명이란 고정되고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구성해가는 것이다. 생물학도 그렇다. 과학이라는 것은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논리의 집합체”가 아니라 그 시대의 요구에 따라 얼마든지 내용이 바뀐다. 머리의 크기가 지능을 결정한다, 뇌의 크기가 결정한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 연금술로 황금을 만들 수 있다 등등 어떤 시절엔 모두 과학적 사실이었다.

“무엇은 무엇이다”, 란 식의 언설에 “무엇은 무엇이 아니다”란 식으로 대답하는 걸 들으면 참 재미없다. 어떤 식으로든 의미는 있지만, 상대방의 전제를 고스란히 인정하기는 마찬가지다. “생물학은 운명이다”란 말이나 “생물학은 운명이 아니다”란 말이나 둘 다, 생물학과 운명에 대한 내용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런 식의 논의는 재미가 없다. 에로틱한 자극이 없으니까.

[#M_ +.. | -.. | 문답이어받기를 하며 15번 대답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좀더 자극적이었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좀더 에로틱하면 좋겠다, 였다. 힛._M#]

02. “채식주의자들은 중산층의 계급적인 특권 문제가 있다”는 말을 자주 접한다. 채식을 선택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얘기다. 오랫동안 이 말에 어쩌지 못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채식을 접하고 있으면 돈이 없으면 채식이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바로 이 지점이 문제였다. 루인이 범한 착각은, “채식주의자들은 계급적 특권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바로 그 사람이나 정말 계급적 특권을 가져서 채식을 하는 사람들과 루인의 계급을 무심결에 동일한 것으로 간주했다는 점이다. (채식에 모종의 반감을 드러내며 이런 말을 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대학교수 등의 중산층 계급이었다.) 쳇, 루인은 중산층이라서 옥탑방에서 생활하고 한 달 생활비를 50원 단위로 계산한단 말이냐.

채식을 중산층의 특권적인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자발이든 비자발이든) 지구 상 인구의 70%가 채식을 한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언설이다. 당연히 이런 통계자료는 채식 내부의 계급, 젠더 등의 다양한 차이를 비가시화한다는 문제를 가진다. 하고 싶은 말은, 소위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웰빙 채식과 젠더차별로서의 채식, 관계를 고민하는 지점에서의 채식, 동물권을 말하는 이들의 채식 등 채식과 채식주의 내부의 다양한 차이를 지우고 화자의 편견으로 채식을 획일화 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당신이 전제하고 있는 채식이 도대체 어떤 건데?”라고 되물었어야 했다. (아, 억울해. 으으으, 너무너무 화나!! 왜 이제야 깨달은 것이지, 바보바보바보.) 혹시 [슈퍼 사이즈 미]에서처럼, 젠더화된 채식과 이성애주의로 점철된 그런 채식을 상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영화에서, 채식을 하는 ‘여자’친구가 주인공 ‘남자’를 챙겨주는 식으로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