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를 이해하는 방식2/4

일전에, 모완 관련 글을 쓰며 “내 몸은 남자의 몸이 아니라 트랜스젠더의 몸, mtf/트랜스여성의 몸이다”라고 적었다( www.runtoruin.com/2138 ). 이 말이 정확하게 무슨 뜻일까? 나는 남자/남성이 아니며 나를 설명하는 데 있어 남자/남성이란 용어를 쓰는 것이 매우 곤란하단 뜻이다. 물론 나는 태어났을 때 남자/남성으로 지정받았고 또 그에 따른 방식으로 양육되었다. 이것이 나를 남자/남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남자로 지정받았다는 것이 나를 남성으로 얘기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이슈다. 아울러 나는 내 몸을 트랜스젠더의 몸, 혹은 mtf의 몸으로 해석하지 남자/남성이나 여자/여성의 몸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내 몸에 있는 어떤 특질(수염 흔적과 같은 것)은 남자의 생물학적 특질이 남아 있는 게 아니라 mtf 트랜스젠더의 자랑스러운/’자연’스러운 특질이다. 이를 두고 “루인은 남성인데 자신을 여성으로 생각하는”이라고 설명한다면 이건 무척 곤란한 일이다.
몸을 해석하는데 있어 생물학적 사실 같은 건 없다. 더 정확하게는 생물학적 사실로 인간을 이해하지 않는다. 만약 생물학적 사실로 인간을 이해한다면 여성 아니면 남성이란 식으로 인간을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태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태어나지 않는데도 둘 중 하나로만 이해하는 것, 이것은 철저하게 문화적 해석 실천이다. 문화적 해석인데 이것을 생물학적 사실로 믿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니 생물학적 사실 같은 건 없다. 특정 해석을 유일하고 객관적 사실이자 유일한 언어로 여기는 인식체계가 있을 뿐이다. 트랜스젠더와 관계를 맺겠다는 건 이런 인식체계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어렵거나 폼 나는 문장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트랜스젠더가 문제가 아니라 트랜스젠더를 일탈/특이 현상이나 초월/횡단으로만 받아들이는 바로 그 인식을 문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트랜스젠더를 안다거나, 나, 루인이란 사람을 안다고 말하는 건 트랜스젠더가 아니라 트랜스젠더를 문제 삼는 사회를 문제 삼는다는 뜻이며 인간을 여성 아니면 남성으로만 이해하는 태도를 문제삼는다는 뜻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이것은 나의 정치학이기도 하다. 나의 입장에서, 누군가 나를 안다고 얘기하면서 이원젠더를 밑절미 삼아 얘기한다면 이건 모순이다. 명백히 모순이다. 혹은 나를 전혀 모르는 거거나.
어제에 이어 말이 길다. 뻔한 얘기인데도 서두가 길다. 이유가 있다. 우연히 어떤 트윗을 알았기 때문이다.
성호 yoon seongho
‏@ysimock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게이남성이라 생각하는 (그래서 남성과 흡족하게 연애하는데 남들에겐 당연히 흔한 이성애 커플로 보이는) 여성에 관한 스토리가 떠올랐다. 따로 레퍼런스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이런 사례가 실재하는지 궁금.
링크 주소로 가면 멘션/쓰레드를 다 확인할 수 있다.
이 트윗만 읽으면서, 좀 건방진 말로, 귀엽다고 말하고 싶다. 이미 무수하게 존재하는 비이성애자 트랜스젠더를 마치 자신의 신선한 아이디어처럼 얘기하는 용기 혹은 패기에 감탄한다. 물론 트랜스젠더 이슈가 낯설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으니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내게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계속*

트랜스젠더를 이해하는 방식 1/4

트랜스젠더란 용어의 뜻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가요?
흔히 언론에서 주로 사용하는 “트랜스젠더”는 “남자/여자의 몸으로 태어난 여성/남성”이다. 다른 말로, 태어났을 때의 반대 성으로 자신을 인식한다는 언설이 가장 유명하다. 이런 설명은 정확한가? 트랜스젠더의 경험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제 블로그를 구독하는 분이라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반대의 성 개념과 달리, 나는 종종 태어날 때 지정받은 젠더와 자신이라고 인식하는 젠더가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트랜스젠더를 설명하곤 한다. 나름 대중적으로 협상해서 사용하는 정의다. 그렇다면 이것은 정확하게 무슨 뜻일까? “지정받다”라는 말은 나의 의지, 나의 해석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의지와 해석이 강하게 개입했다는 뜻이다.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내게 특정 의미를 부여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연두는 태어났을 때 남자로 지정받았지만 자신을 여성으로 생각한다”라는 문장은 내가 사용하곤 하는 정의의 다른 판본이다. mtf/트랜스여성 판본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설명에서 확인할 수 있는 두 가지 ‘사실’은 태어났을 때 남자로 지정받았다는 점과 자신을 여성으로 생각/정체화한다는 점이다. 이 진술에서 연두가 생물학적 남자/남성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이 진술을 듣고 연두는 남성인데 자신을 여성으로 생각하는 트랜스젠더라고 서술한다면 비약이다. 그것도 심각한 비약이며 내가 줄곧 비판해온 부분이다. 더구나 연두가 혹은 내가 태어났을 때 남자로 지정받았다는 점은 엄밀하게 생물학적 사실을 밑절미 삼는 판단이 아니라 의사 혹은 의료진이 갖는 문화적 해석 체계의 반영일 뿐이다. 내가 특강 자리에서 종종 얘기하듯 우리 중 자신의 유전자 정보, 염색체 정보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르면서 안다고 믿는다. 이런 믿음이 인간을 여성 아니면 남성으로 이해하고 이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여기도록 하는 토대다. 태어날 때 남자/남성으로 지정받았음을 곧 그는 남성이다라고 등치하는 것이 트랜스젠더를 향한 사회적 차별 혹은 폭력의 출발점이다. 나는.. 이 정도는 이곳을 찾는 분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이것은 트랜스젠더를 이해하고, 트랜스젠더와 관계를 맺고, 트랜스젠더 맥락에서 세계를 이해하는데 있어 기본 중 기본이라고 믿는다. 이것이 기본이라는 건 온전히 나의 주장이니 기본이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정도는 상식으로 알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 블로그에 오는 분들에게 묘한 기대와 믿음이 있다. 트랜스젠더 이슈에 남다는 이해가 있을 것이란 믿음과 기대가 그것이다. 내가 기본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고 그렇게 사유할 거란 묘한 믿음과 기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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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페미니즘 선언문 – 메모 01

나는 이 사회가 트랜스젠더를 존중하는 사회로 변하길 바라지 않는다. 존중이라니. 그런 거 필요없다. 트랜스젠더란 이유로 존중하지 않는 사회를 바란다. 트랜스젠더건 뭐건 상관없이 그저 사람이기에 존중하는 사회로 변하길 바란다. 그러니 존중을 요구하지 않는다. 트랜스젠더를 존중하지 마라. 트랜스젠더는 존중할 대상이 아니다. 존중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사고 방식 자체를 바꿔라. 이것이 내가 요구하는 변화다. 트랜스젠더를 존중할 줄 아는 태도, 그리하여 트랜스젠더를 여전히 특이하고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태도는 이 사회를 별로 바꾸지 않는다. 개별 관계에서 이런 태도는 중요하지만 개별 관계에서 이 정도 태도로 끝난다면 트랜스젠더는 끊임없이 존중을 얻기 위해 매순간, 각자 자신의 관계에서 싸워야 한다. 그래서 성공하는 사람은 존중받을 것이며 실패하는 사람은 위험할 것이다. 혹은 바닐라 이성애 트랜스젠더는 존중받고 그렇지 않은 트랜스젠더는 존중받지 못 할 뿐만 아니라 저어함의 대상, 혐오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도대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러니 비트랜스젠더 맥락에서 트랜스젠더를 존중하는 태도 말고, 트랜스젠더 맥락에서 인간의 젠더 경험 자체, 인간 주체성을 구성하는 근본 토대 자체를 바꾸길 요구한다. 존중해봐야 어차피 위계는 유지되는데 존중해서 뭐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