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고양이는 살아있다

써야 할 글도 있고 저녁 약속(이라고 쓰고 회의라고 읽는다ㅠ)도 있어서 일찍 玄牝으로 돌아 왔다. 그러나 약속이 취소되어 일단 저녁을 사러 밖으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 평소엔 잘 안 다니는 골목으로 움직였는데, 어디선가 작은 고양이가 길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나는 너무 반가워서, 마치 예전에 살던 곳의 동네고양이라도 만난 것처럼 그렇게 반가움을 표현할 뻔했다. 나는 멈췄고 혹시라도 눈이 마주칠까 잠시 기다렸지만 고양이는 어딘가로 숨었다. 아쉬움을 달래며 걸었다. 계단을 올라가려고 하는데, 계단 한쪽에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쓰레기 봉투가 지저분하게 놓여 있는 곳. 아마 먹이를 찾고 있는 중이었겠지. 고양이가 놀랄까봐 거리를 두고 잠시 멈췄다. 고양이는 나를 보더니 모퉁이로 숨었다. 조심스레 계단을 올라가자 고양이는 들어가기도 불편한 구석으로 기어들어갔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고양이캔을 꺼내 고양이가 앉아 있던 자리에 놓아두고 얼른 피했다. 추운 겨울을 살아 낸 귀한 생명… 다행이고 또 다행이다. 이유 없이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예전에 살던 곳의 고양이가 보고팠다. 잘 지내겠지? 내가 없다고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닌 세상. 내가 없다고 그 동네 고양이들에게 큰 일이 생기는 건 아니다. 안타깝고 또 아쉬운 건 나의 감정일 뿐이다. 나의 감정은 결국 자기연민, 자기만족일 따름. 그나저나 주택가에 사는 지금, 나는 내가 사는 곳에 고양이들이 슬쩍 지나가길 바라지만, 내가 사는 곳은 고양이들이 돌아다니기엔 너무 높은 곳이다. 나는 또 이곳에서 고양이를 찾아 다닐까? 혹은 어떤 사랑을 찾아 다닐까?

[길고양이] 음식주는 패턴을 바꾸기: 이별연습

여전히 동네냥이들에게 음식을 주고 있다. 리카와는 몇 번인가 고양이키스도 했다! 그땐 무척 감동이었다. 하지만 리카와 나의
거리은 여전히 1미터. 리카는 언제나 1미터 정도의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하며 내게 다가온다. 스프는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다가온다. 물론 내 손이 닿도록 가만두진 않는다. 음식을 줄 때면 오른쪽 앞발을 흔들며 음식을 낚아 채려는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나는 그 손을 잡고 악수라도 하고 싶지만 가당찮은 일. 아무려나 나는 여전히 음식을 주고 있다.




조금은 변했다. 예전엔 매일매일 가급적 같은 시간에 음식을 줬다면 요즘은 이틀에 한번, 사흘에 한번, 혹은 이틀 연속으로 주곤
다시 하루 쉬는 방식으로 음식을 주고 있다. 이사를 하고 나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으니까. 그래서 이별을 연습하고 있다.
한동안 음식을 규칙적으로 조공했다면 지금은 불규칙적으로 조공하고 있다. 이런 나의 태도와는 별개로 음식을 꾸준히 줄 때도
동네냥이들은 쓰레기봉투를 뒤졌다는 점은 다행이다. 고등어무늬 고양이 중 한 아이는 내가 음식을 주러 나가도, 자기가 찾은
음식을 다 먹고 나서야 내가 준 음식을 먹으러 왔다. 이런 모습들은 안도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지금은 음식을 주는 패턴을
바꾸고 있다. 서로에게 적응했던 몸을 바꿔나가기. 그 시간을 넉넉하게 주기. 내가 음식을 주는 시간을 깨닫는데 일주일 정도
걸렸으니 불규칙한 행동을 깨닫는데 한달이면 넉넉하겠지.




아쉽기도 하다. 리카는 내가 나가면 야옹, 야옹 울면서 음식을 요구한다. 스프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내게 무척 가까이
다가온다. 이 정도의 관계를 만드는데 들인 노력을 떠올리면 아쉽다. 하지만 아쉬움은 나의 몫이다. 고양이들에게 나의 아쉬움은
독이 될 수도 있다. 고양이들에게 나의 행위가 화양연화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때 만만한 인간이 음식을 줬던 적이
있지’라고 떠올려 주기만 해도 좋겠다.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 어차피 헤어져야 한다면, 이별을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겠지. 그 시간이 안타깝지만 않길 바랄 뿐이다.

그나마 이 추운 겨울, 살아있다는 사실은 고맙고 또 고맙다.

[길고양이] 리카와 나는… : 편애

동네냥이들 중 리카를 특별히 편애하지만, 이제까진 특별한 애정표현을 안 했습니다. 다른 고양이들이 제가 리카를 편애한다는 걸 알아 좋을 게 없으니까요. 아, 물론 그들은 제가 누굴 더 좋아하는지 신경도 안 쓰겠지만요. ;;; 아무튼 지금까진 그랬지만, 이틀 전부터 그냥 리카를 향한 저의 편애를 표현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틀 전엔 음식을 기다리며 저를 바라보던 리카에게 특별식을 주었습니다. 리카가 무척 잘 먹어 기뻤습니다. 음하하. 농담처럼 리카를 납치하고 싶다는 말을 했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죠. 알고 있습니다. 길이, 동네가 집인 리카를 좁은 방에 가두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리카가 찾아오진 않는 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저 저의 애정을 책임감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겠죠.

제가 음식을 내놓는 시간에 항상 리카가 저를 기다리는 건 아닙니다. 리카와 만날 수 있는 날도 있고 못 만나는 날도 있습니다. 아무려나 리카와 만나도, 리카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드뭅니다. 항상 뒤로 밀리거든요. 동네고양이들 간의 위계질서가 있으니 어쩔 수 없지요. 아무려나 사흘 전, 리카가 음식을 일찍 먹어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리카는 음식을 다 먹자, 물을 마신 후 제 갈 길을 가는데요. 저를 향해 얼굴을 돌리더니 “야옹”하고 울었습니다. 아아 … ㅠ_ㅠ “밥 먹는데 왜 자꾸 쳐다보는 거냐!”란 의미일 수도 있지만, 저는 “잘 먹었다”는 인사로 이해하렵니다. 이히히.

이틀 전에도 리카는 음식 먹는 순서에서 뒤로 밀렸습니다. 그렇게 밀릴 때마다 리카는 저를 빤히 바라봅니다. 해맑은 얼굴로 삥 듣으려는 표정이랄까요. ;;; 흐흐. 저는 결국 캔으로 된 사료를 슬쩍 꺼내 리카 근처에 두었습니다. 리카는 열심히 먹더군요. 기뻤어요. 그런데 갑자기 우당탕 소리가 났습니다. 무슨 일인가 확인하니 무려 카노가 음식이 든 봉지를 들고 도망쳤더군요. 그렇게 도망쳐선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혼자 먹고 있었습니다. 카노의 미운짓이 얄미웠지만 그보다 더 큰 걱정은 리카가 깜짝 놀랐다는 거죠. 리카는 골목길을 가로질러 다른 곳에 있는 차 아래로 숨었습니다. 캔은 그대로 두고요. 저는 캔을 챙겨, 리카가 있는 자동차 아래로 가져다 두었습니다. 리카는 다시 캔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 다른 고양이들은 어리둥절하며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근데 분명 카노보다 덩치가 큰 냥이들도 있었는데 카노 음식을 뺏진 않더군요. 덩치와 위계는 다른 거겠죠?

어젠 사료에 캔을 섞어 주었습니다. 밖에 나가니 여러 냐옹이들이 몰려들더군요. 하루 종일 굶었던 거 같습니다. 대충 경향을 보니, 제가 음식을 주기 전에 충분히 먹었으면 안 나타나고, 못 구했으면 나타나는 거 같습니다. 다행이죠. 아무려나 그 와중에 리카도 보였습니다. 이힛. 저는 우선 지저분한 쓰레기들을 치웠습니다. 음식을 두고, 쓰레기를 치우면 다들 도망가거든요. 음식을 먹다 도망치면 건강에도 안 좋을 테니까요. 그렇게 쓰레기를 치우는데, 리카가 한쪽 구석에서 자꾸 저를 보는 겁니다. 그래서 평소와 다른 곳에, 리카가 가장 먼저 먹을 수 있는 곳에 음식을 두었습니다. 성공! 다른 고양이들은 매우 당황했지만, 리카가 가장 먼저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 제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덩치 큰 고양이가 리카를 밀어냈더군요. 밀려난 리카는 다시 자동차 아래서 저를 보았습니다. 리카, 바보! 이 순둥이!! 마침 쓰레기 봉지를 버려야 해서, 玄牝으로 돌아가 음식을 조금 더 챙겨왔습니다. 그리곤 리카 근처에 챙겨온 음식의 일부를 두었습니다. 리카가 먹기 시작하는데요.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 또 다른 고양이에게 밀려났습니다. 이이… 리카, 이 순둥이!! 저는 안타까움으로 리카를 보았는데요. 리카 역시 저를 보았습니다. 그러다 저를 바라보며 슬슬 어딘가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리카를 계속 바라보았고, 리카 역시 저를 보며 이동하더니, 제가 등지고 있던 자동차 아래로 갔습니다. 그거야! 저는 자동차 아래, 리카와 가깝지만 너무 가깝지 않는 곳에 남은 음식을 두었습니다. 리카 역시 만족스러운듯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저는 리카가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론 충분하지 않았죠. 매우 적은 분량만 남았으니까요. 그래서 리카는 사료음식을 다 먹자 아직 배가 고픈 듯, 제 앞에 앉아선 저를 보았습니다. 저는 갈등했습니다. 주머니엔 캔이 있었거든요. ;;; 리카는 일단 저를 한동안 보다가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낮은 담장과 건물 사이,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우리는 눈이 마주쳤습니다. 어쩌겠어요. 다시 고민을 하다, 리카와 떨어진 곳에서 저는 결국 캔을 꺼냈습니다. 바닥에 놓아두고 저는 멀찍이 떨어졌죠. 리카는 얼른 달려와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혹시나 다른 고양이들이 리카를 밀쳐낼까봐 리카 근처에 서 있었습니다. 리카 역시 음식을 먹는 내내 저를 확인하더군요. 아니, 그냥 신경쓰는 걸까요. “밥 먹는 거 그만 구경해!”라는 의미로. 흐흐. 아무려나 그렇게 밤 늦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자자. 농담으로 말했던 리카 납치 기획을 정말 실천해야 할까요?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겠지요. 그런데 리카를 납치하려면 카노도 같이 납치해야 합니다. 둘은 늘 붙어다니거든요. 혼자만 납치하면 분명 외롭고 또 우울할 테니까요. 아무려나 이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결정은 리카가 합니다. 그리고 납치를 못 해도 괜찮아요. 제가 이사를 해도 괜찮고요. 애정은 언제나 책임감을 요구한다는 것을, 저는 리카에게서 배우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