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링, 뮤즈(다시 해석하기), 관계맺기

멘토링 관련 글을 찾아 읽고 있는데… 어떤 글에서 셜리번이란 학자는 멘토(mentor)와 뮤즈(muse)를 구분한다. 셜리번은 멘토에서 뮤즈로 관계 방식을 바꾸자고 주장한다.

… 멘토 관계에서 성인의 역할은 가르치고 가이드하며 소녀에게 도움을 주는 모델로 나타난다. 이런 유형의 관계는 우선 일방향이고 과도기적이다. 대조적으로, 뮤즈는 소녀의 잠재성을 소녀가 이해하고 억압적인 사회 규범에 저항하도록 소녀를 도와주며, 소녀의 느낌과 경험을 경청하고 증명한다. 이러한 관계 모델은 성인과 청소년 모두에게 취약함과 힘이 있다고 가정하며, 둘다 관계의 맥락에서 배울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
(번역은 대충 날림에 적당히 윤문한 것. 출처는 의도적으로 생략. 다음에 추가하겠음..;; )


여성주의/페미니즘에서 주로 논의하는 상담관계는 후자란 점에서 뮤즈의 역할 자체가 새로운 건 아니다. 다만 뮤즈 자체를 새롭게 해석한 점은 흥미롭다. 지금까지 내가 읽어온 많은 글에서 뮤즈(‘여성’)는 ‘남성’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지만 착취당할 뿐 결국은 거의 무명으로 버려지거나 정신병원을 비롯한 구금시설에 감금되는 위치였다. 물론 이런 해석 자체도 ‘남성’중심적인 해석이란 점에서 문제가 많긴 하지만. 이런 통념에 비추어 볼 때, 셜리번의 뮤즈는 확실히 흥미롭고, 좀 더 힘이 넘치는 모습이다.

+
그리고 구글만세! -_-;;
이 논문은 어느 책에 실렸는데, 그 책은 내가 접근할 수 없는 학교도서관에만 있다. 빌리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내가 필요한 건, 책 전부가 아니라 해당 논문일 뿐. 그래서 구글링을 했더니… 으하하.

주절주절2: 소박해서 위험한 욕망, 관계

관련 글: 주절주절

01
그러고 보면 늘 생활비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월급 많이 주는 곳에 취직하려고 노력을 한 적이 없다. 그냥 대충 한달 생활비만 어떻게 되면 그만이라는 나날. 나 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어떻게든 입에 풀칠하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40평, 80평짜리 초호화 아파트를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10평 남짓(실 평수가 7평이건 12평이건), 나 한 몸 살 수 있는 공간을 바랄 뿐이다. 그런데도 재개발, 재건축이란 이름으로 작은 공간을 바라는 욕심은 살아남기 힘들다. 이 사회에서 이런 욕심은 위험한 욕망 같다. ‘작거나 소박한’ 욕심이 위험한 욕망으로 변주하는 곳에서 살고 있는 나의 일상은 아마, 평생 위태롭겠지. 그래도 어쩌랴. 나는 평생 이렇게 살 거란 걸 잘 알고 있다.

02
당고의 글을 읽다가 문득 궁금했다. 난 5년 전 만났던 사람들 중, 아직 연락을 주고 받는 사람은 두어 명 정도다. 우연히 만나 아는 척 하는 사람 말고, 가끔 연락을 주고 받고,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사람. 그래서 문득 궁금했다. 내가 이 블로그, [Run To 루인]을 시작했을 때부터 이곳을 찾아, 지금도 계속 들리는 사람이 있을까? 흐흐. 매우 민망한 궁금증이다. 얼추 5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고, 그 사이 이곳은 변해도 너무 변했고, 이런저런 일도 많았으니까… (후략 ;; )

도망 이후: 관계에 사표쓰기

어느 블로그(미투였나? ;; )에서 직원이 사장에게 저항/복수하는 최고의 방법은 돌발적인 사표라는 구절을 읽었다. 물론 이
행위는 직원 자신의 생계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회사가 중소기업이거나 벤처회사라면 악질적인 사장에게 직원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이자 저항은 사표다. 둘의 권력구조를 깨는 것. 그리하여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




일전에 나의 도망을 쓴 적이 있다. 나의 도망은 직원이 사장에게 사표를 내는 것처럼, 그렇게 어떤 관계 구조를 바꾸기 위한
시도였다. 나는 꽤 오랜 시간 그 관계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어느날 문득 그 관계가 섬뜩했다. 내가 바보같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그 관계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도망쳤다. 어쩌면,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그 관계는 내가 바라는 형태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도망쳤다. 마치 관계에 사표를 쓰듯, 그렇게. 아마 그 관계에서 유일하게 타격을 입은 사람은 나 뿐일 것이다. 그
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이 나 뿐이듯. 지금 내가 그 관계에서 완전하게 벗어난 건 아니다. 아직도 그 관계의 자장 가장자리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어리석다는 걸 알지만, 안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2010년이 되었어도 글을 쓸 때마다
습관처럼 2009를 썼다가 지우고 2010이라고 쓰는 것처럼.




그래, 아직은 생계를, 삶의 위기를 느끼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금방 괜찮아질 거다.
2010이 손에 익듯 그냥 그런 식으로 괜찮아질 거다. 그러니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