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루인의 글쓰기 세미나

[두 번째, 루인의 글쓰기 세미나]
일시: 4월 7일(월) 저녁 7시
장소: 이메일( runtoruin@gmail.com )로 개별 연락 주세욤.. 🙂
<내용>
 – 글/논문을 쓰면서 많은 사람들이 반복해서 겪는 문제점 집중 조명
 – 글쓰기에 기본이 되는 기술적 사항 점검
 – 필요한 참고문헌과 자료를 찾는 (야매) 요령 전수
 – (해당사항 없음) 글쓰기에 대한 인식론은 다루지 않음 -> 수업에 많이 다루니까요~
* 선착순 2명에 한 해, 미리 자신이 작성한 글을 보내주면 루인이 직접 코멘트를 해줍니다. (와우!)
서로의 글쓰기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점검해 보는 유익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코멘트 내용은 세미나 참석자들과 공유될 예정입니다.  
희망자는 루인(runtoruin@gmail.com)에게 3월 31일(월)까지 미리 글을 전달해주십시오.
-> 라고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누구도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우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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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사람이 아니어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관심 있으면 연락주세요. 🙂

수도승 같은 글쓰기: 김학이, 나치즘과 동성애

김학이의 <나치즘과 동성애>를 읽고 있으면 연구를 수도하듯 하는 연구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느 정도 경건하고 감히 쉽게 읽으면 안 될 것 같은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열심히 자료를 찾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뻘소리하지 않고 성실하게 자료를 해석하고 배치하는 태도가 생생하다. 그래서 <나치즘과 동성애>는 단순히 내용만이 아니라 글이 풍기는 어떤 분위기만으로도 배울 점이 많다.
정말 잘 쓴 책이다. 정말 잘 쓴 글이다. 잘 쓴 책이자 글이다. 이러기도 쉽지 않다. 자신의 사유를 밑절미 삼아 새롭고 또 성실하게 쓴 글은 여럿 읽었다. 하지만 기록물을 발굴하고 읽고 해석하고 글을 쓰는데 있어 어떤 경건함을 느끼긴 또 정말 오랜 만인 듯하다. 자신의 관심이라곤 온전히 기록물 뿐이라서 그 외의 모습은 일절 느껴지지 않는 어떤 포스가 글에 넘친다. 그래, 포스가 가장 적절한 표현일 듯하다. 포스가 있다. 공부에 모든 것을 건 수도승과 같은 포스가 있다. (메예로비츠가 쓴 미국 섹스의 역사는 엄청난 내공을 느낄 수 있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지만 수도승과 같은 포스는 없었다.) 그래서 읽고 있으면 감동적이다. 한 줄 한 줄이 헛되지 않고 한 줄 한 줄 읽는 시간이 소중하다. 서둘러 다 읽는 것이 아까울 정도다.
이런 좋은 책을 읽으며 저자가 직접하는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니, 참으로 기쁘다. 나는 언제 이런 글을, 책을 쓸 수 있을까? 쓸 수는 있을까?
그나저나 언론사 기자가 작성한(혹은 보도자료를 정리한) 기사 말고 <나치즘과 동성애>로 쓴 서평/리뷰가 없네. 이 책으로 누군가가 서평을 쓸만한데, 정말 많은 얘기를 할 법한데 서평이 없다니 아쉽다. 내공 짱짱인 멋진 분들이 서평을 써주면 정말 좋을 텐데. 독자로서 정말 즐거울 텐데.

글쓰기 책에서 읽은 저자의 비문

몇 년 전 글쓰기 관련 책을 읽고 그 저자의 블로그에 들락거리곤 했다. 블로그에도 글쓰기 관련 내용을 주로 올렸기에 꽤나 도움을 받았는데… 그 와중에 글쓰기와 문법 관련 글을 쓰지만 정작 자신의 글에 있는 문제는 놓칠 때가 많다는 포스팅을 읽었다. 초벌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며 그대로 출판되리라 예상했지만 교정쇄엔 상당한 비문과 오탈자 등을 지적한 빨간펜 흔적이 상당하더라고 했다. 문법을 잘 알고, 문법을 가르치는 글을 쓰지만 그 글에서 문법을 틀릴 수 있다는 뜻이다. 글쓰기 관련 글을 쓴다고 해서 반드시 글을 잘 쓰는 건 아니란 뜻이다.
어제 도서관에서 글쓰기 관련 책을 몇 권 빌렸다. 그 중엔 기본 맞춤법, 퇴고 요령 등을 기술한 글도 있다. 제목과 목차만 훑고 빌리려다가, 각 저자의 문장은 어떤가 궁금해서 서문을 조금 읽었다. 당황했다. 글을 고치는 요령을 다룬 책에선 “심지어 대학 교수님들”이란 표현이 나왔다. 교수와 같은 직업엔 님을 붙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청소부님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경비원님이라고 하지 않는다. 특정 직업에만 님을 남발할 뿐이다. 아울러 문맥을 통해 충분히 복수의 교수란 점을 알 수 있음에도 불필요한 ‘들’을 붙였다. 책 서론에 나온 구절이라 당황했다. 또 다른 책에선 첫 문장이 피동형이다. 능동형으로 써도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능동형이 맞는 듯한데 피동형으로 썼다. 끄응…
이런 당혹스러움에도 각 책의 내용을 불신하지 않는다. 내용은 충분히 염두에 두어야 할 내용일 테니까. 그럼에도 뭔가 묘한 기분이다. 글쓰기 관련 책에서 교정해야 할 것만 같은 문장이 나오다니… 물론 이렇게 궁시렁거려도 각각의 저자는 나보다 100배는 더 잘 쓰는 사람이다. 그러니 글쓰기 관련 단행본을 쓸 뿐만 아니라 관련 주제로 여러 권의 책을 내지. 암튼 글쓰기 공부를 해야 하는데 게으르니 어떡한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