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게 엮어 가는 기억

#
할 일은 언제나 쌓여 있지만, 종일 뭔가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빈둥거리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 다음 주 목요일이 석탄일이라 수업이 없다는 사실에, 그러니 당장 일주일 후의 수업 준비를 할 부담이 없다는 사실에 조금은 느슨하게 있다. 이럴 때 개별연구로 하는 책을 읽으면 좋으련만, 또 그러진 않는다. 맨 날 바쁘다고 말하면서도 맨 날 빈둥거리고, 오늘 같은 날은 아예 대놓고 빈둥빈둥.

#
멈칫. 화들짝 놀라지는 않지만 이런 자신에게 놀라. 그러고 보면 처음 댓글을 남기기까지 얼마나 많이 망설였는지…. 지금도 댓글을 쓸 때면, 용기가 필요해. 처음 댓글을 쓰고 다시 댓글을 쓸 때까지 한 달은 더 걸린 것 같아. 이 용기가, 이 “소소한”, 하지만 루인에겐 너무도 큰 용기가 그 전과는 다른 만남을 가능하게 한 것 같아. 이런 용기들이 말을 만들어 가는 계기가 되고 있어. 그래서 고맙고 기쁘고.

#
날씨가 흐리지만, 또 그런 와중에도 파란 하늘이 보이고 햇살도 비춰. 이런 햇살, 햇살 아래 그림자. 그림자를 따라가는 루인. 루인을 따라가는 햇살. 햇살을 따라가는 구름들. 구름 가는 길을 걷고 있는 루인. 루인을 따라 걷는 그림자와 숨바꼭질 놀이.

#
우르릉. 천둥소리. 비가 오려는 소리. 이런 소리와 어울려 오는 니나 나스타샤의 목소리. 시간을 엮어가는 건 음악이라고, 음악을 따라 시간이 흘러. 그 시간들 속에서 기억하고 있는 몇 사람들. 루인은 어떻게 기억될까. 기억은 될까. 그 한 켠 어딘가에 희미하게 남아 있을까. 남겨질까. 사라짐과 동시에 지워지길 바라지만, 그래도 가끔은 기억되고 싶어.

기억+전하기

명절에만 내려가는 부산이고 그래서 부산에 가면 그저 집에만 머물 따름이지만 그래도 어떤 날은 목적 없는 외출을 하곤 하던 몇 해 전. 그렇게 찾은 곳 중엔 어릴 때, 대략 3살 즈음부터 6살 정도까지 살던 곳을 찾은 적이 있다. 기억 속에 그곳은 상당히 넓고 큰 동네였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는 너무도 넓었다. 익숙한 반응일 수밖에 없지만, 20년 정도 지나 다시 찾은 그곳은 너무도 작고 좁았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는 몇 걸음이면 건널 수 있는 곳이었고, 그렇게 넓게만 느낀 골목길들도 좁아서 “성인 두 사람이 지나가면 어깨가 부딪힐 것만 같은” 골목이었다.

기억이란 건, 이런 식이다. 당시의 몸이 경험한 걸 현재의 몸과 동일한 것으로 유지하려 하고, 때론 현재의 몸이 원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4살 정도의 몸이 느끼는 동네의 규모는 20살 정도의 몸이 느끼는 동네의 규모와 다를 수밖에 없지만, 그 동네는 언제나 크고 넓은 곳이라고 기억했다. (루인의 기억 속에 그 동네는 오정희의 소설 [새]에 나오는 곳과 비슷했다. 물론 오정희의 소설 속의 공간이 루인이 기억하는 공간과 같을 리 없지만, [새]를 읽으며 두 곳이 너무도 비슷하다고 중얼거리곤 했다. 하지만 [새]에 나오는 공간이 너무 매력적이라 기억 속의 공간을 [새]의 공간으로 바꾼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기억 속의 공간으로 그 동네를 유지하기 위해선, 그곳이 언제까지나 기억 속의 그곳이기 위해선, 그 동네는 그대로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확장 공사를 해야 한다. 지금 루인의 몸 크기에 맞춰 골목길의 크기, 담벼락의 높이,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의 너비까지,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야만, 20대의 루인이 기억하는 그 동네가 어릴 때의 그곳과 같은 곳일 수 있다.

종종 어떤 노래 가사에 나오는 “변하지 않고 여기서 기다릴게”라는 구절들. 처음엔 이런 구절들이 변하지 않음, 자신을 당신의 기억에 맞춰 고착시키는 행위라고 느꼈다. 그래서 한 편으론 좋아 하면서 다른 한 편으론 별로 안 좋아했다. 당신이 낯설지 않도록 그 모습 그대로 기다린다는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며, 헤어졌을 때 혹은 내가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혹은 당신이 내게서 보고 싶어 한 모습으로 박제해서 살겠다는 의미로 간주했다. 하지만, 당신의 기억이 변하는데, 내가 살아가는 세월이 흐르는데 어떻게 그대로 지낼 수 있겠어.

그렇다면 언제까지나 당신이 익숙한 모습으로 기다릴게, 라는 말은 나를 박제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렇다기보다 당신의 기억이 변하는 속도에 맞춰 나도 열심히 변하겠다는 의미이다. 만약 당신이 나를 똑똑한 사람으로 기억한다면, 지금 상태로 있어선 안 될 일이다. 10년 뒤에 만나도 여전히 똑똑한 사람이란 이미지로 남기 위해선, 그 시간 동안 상당히 변해야 한다.

결국, 어떻게든 변하지만, 그런 변화의 동력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변하는지가 관건인 셈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기억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도 있어야 하고. 상대방은 나의 이런 모습을 기억할 거야, 라는 (과거)예측과 상대방이 내게 바라는/기억하는 모습 사이엔 간극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조금도 안 변했다”라는 말과 “상당히 변했네”라는 말은 같은 말이다. 어떤 식으로 변했는지 혹은 어떤 식으로 기억하고 있는지가 다를 뿐.

“내가 여기 있음을 기억해줘.” 하지만 이 말은, 그저 기억이라도 해 달라는 간절한 염원이기도 하다. 기억이 변(색)하는 세월 속에서, 어떤 형태가 되었건 기억이라도 해달라는 간절함. 그 소박한 것 같으면서도 무거운 바람. 그러면서도 어떤 형태로 기억해달라는 요구. 이런 여러 몸들이 이 한 문장에 담겨 있고, 그래서 유난히 아프고도 절실하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그런데 들키지 않고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Wffis][영화] 스파이더 릴리

[스파이더 릴리] 2007.04.08. 14:00, 아트레온 2관 E-15

1. 영화를 읽다가, 이런 영화를 읽을 수 있어서 고마워, 라고 중얼거렸다. 이 영화가 있어서 행복했고 고마웠다. 루인이 좋아하는, 미치지 않을 수 없는 코드들이 잔뜩 있는 이 영화는, 그 코드들을 기가 막히게 잘 직조하고 있다. 6월 즈음 개봉한다고 한다. 그때 또 읽을 거다. 올해 나온 최고의 영화 중 한 편으로 이 영화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거다.

2. 영화 전반에 걸쳐 나오는 구절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기억해 줘요.” 이 말이 너무도 절박하게 다가왔다. 다른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나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내가 당신의 생애 어느 한 순간에 스쳐 지나갔다는 걸, 그 작은 사실 하나를 기억해 달라는 바람. 그리고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열망. 내가 여기 있다는 걸 기억해 줘요…

3. 이 영화는 (나중에 읽은 [8월 이야기]와 함께) 기억, 특히나 몸에 세겨져 있지만 망각하고 혼란스럽게 떠도는 기억을 말하고 있다. 타투/문신으로 몸에 세겨서 현실로 남아 있지만, 해리성 기억상실을 통해 어떤 것은 기억하고 어떤 것은 망각하고. 깨어 있는 상태와 백일몽의 상태가 헷갈리고. 그러며 과거는 짐작할 수 없는 어떤 형태로 남아 매 순간 다른 방식으로 내용이 바뀐다. 언제 어떤 식으로 불쑥 나타날지 알 수 없어서 과거는 미래보다 더 불확실하게 남아 있고, 결국 예측할 수밖에 없는 과거.

아냐, 아냐, 이렇게로만 설명할 수 없어. 영화를 읽는 내내, 짜부라질 것만 같은 느낌에 빠졌어. 이 영화는, 왠지 영화관이 아니라 혼자 있는 방에 웅크리고 앉아서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그래도 또 영화관에서 볼 거야. 꼭 볼 거야.

이 영화를 읽으며 느낀 감정들은 그때 풀어 놓을 거야. 그동안은 몸 안에 간직해야지.

4. 몰랐는데, [드랙퀸 가무단]의 그 감독이라고 한다. 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