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이런저런 고민들: 트랜스젠더이슈, 인터넷쇼핑몰, 카페가입 안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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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늦은 밤 골목에 어떤 사람이 어슬렁거리고 있는 걸 멀리서 본다면, 사람들은 그를 어떤 존재로 이해할까요? 특히나 그의 키가 170센티미터 이상이고 머리카락이 짧은 편이라면? 저라면 그를 치한으로 여기면서 두려워할 거 같습니다. 더구나 그가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흠칫, 놀란다면? 매우 불안해 한다면? 분명 그를 치한으로 여길 겁니다. 그가 고양이에게 음식을 조공하고 있다고 상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의 키가 160센티미터 정도고 머리카락이 상당히 길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요. 아무려나 동네냐옹이들에게 음식을 주고, 간혹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저의 행동이, 행인들에겐 치한의 위협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악. ㅠ_ㅠ

이것은 한국사회에서 길고양이가 처한 상황, 길고양이에게 음식을 주는 행위의 의미, 개인의 신체를 해석하는 젠더(이분)화된 인식들이 교차하는 순간입니다. 제 몸은 길고양이에게 음식을 주는 순간에도, 매우 불안하고 불편한 몸이더군요. 트랜스젠더 이슈가 스며들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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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부분의 쇼핑을 인터넷으로 해결합니다. 편하고 빠르니까요. 편하고 빠른 만큼이나, 상당히 빨리 해결하는 편입니다. 제가 입고 다니는 옷의 대부분은 인터넷쇼핑몰에서 산 겁니다. 한 번에 두세 벌을 동시에 사는데요, 두세 벌을 고르는데 30분 이상 안 걸립니다. 그렇게 사서 별로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매우 만족스러운 경우도 상당하죠. 운이 좋은 게 아닙니다. 설명할 수 없는 노하우도 있고, 감도 있고요.

하지만 요즘 동네냐옹이들에게 줄 사료를 사기 위해 사이트에 들어가선 얼추 사흘 동안 매일 한 시간 씩 비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다른 경우라면 결코 읽지 않을, 상품후기도 하나하나 다 읽고 있습니다. 고양이들이 잘 먹는지, 건강엔 좋은지 등을 따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괜시리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을 때면 “그냥 주는 대로 먹어!”라고 외치지만, 이건 그냥 즐거운 투덜거림일 뿐입니다. 고양이는 제가 조공하는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먹어 줄 뿐입니다. 고양이는 음식을 바라지 않습니다. 당당하게 요구하죠. 그러니 고양이가 입이라도 대면, 제가 감지덕지! 흐흐. 더구나 제가 먹을 음식이 아니라 고양이가 먹을 음식인데 아무 거나 고를 수는 없죠. 제가 먹을 음식이면 그냥 대충 고르고 맙니다. 김밥천국과 동네분식집에서 거의 모든 식사를 해결하는 제가 입맛을 따질 리 있겠어요? 하지만 고양이잖아요.

요즘은 꽤나 괜찮은 거 같은 사료를 주고 있는데요. 며칠 전, 학교고양이인 얼룩이에게 사료를 주었습니다. 얼룩이는 제가 준 사료를 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지나가면서 종이컵을 얼룩이 옆에 두고 가더군요. 뭔가 했더니 그가 챙긴 사료였습니다. 얼룩이는 그 사료를 잠시 먹더니 다시 제 것만 먹기 시작했습니다. 잠깐씩 두 사료를 비교했지만 결국 제 것만 먹더군요. 음하하. 꽤나 기뻤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제게 분명하게 알려 준 것은, 어정쩡한 사료를 사서 냥이들에게 줄 생각하지 말 것! 물론 다음날 확인하니 그가 준 사료도 다 먹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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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포털사이트의 카페에 가입하는 걸 안 좋아하는 편입니다. 로그인해서 확인해야 하는 것이 번거로워서요. 흐흐. 가입한 카페가 몇 개 있지만, 2009년도에 로그인해서 확인한 적이 없는 듯합니다. 아무려나 고양이 관련 자료를 찾다가, 결국 다음카페 냥이네에 가입할 일이 생겼습니다. 공지글 중에 길냥이들에게 음식을 주는 사람들에게 필독을 권하는 글이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제가 읽어야 할 글인 듯해서 제목을 클릭하니 로그인을 요구하더군요. 카페에 가입한 사람들에게만 공개하는 듯했습니다. 첨엔 그냥 안 읽겠다고 창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신경쓰여 결국 카페에 가입하기로 하고, 잊고 지낸 비번을 간신히 찾아 로그인했습니다. 그리고 가입하기를 클릭했는데 …. 무려 실명확인한 회원만 가입할 수 있더군요. 저는 실명확인을 거부하고 있거든요. 더구나 그 아이디는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지 않을 당시에 만든 거고요. 흐흐. 그래서 그냥 가입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글이 궁금하지만 어쩌겠어요. 🙂

[길고양이]고양이: 얼룩이, 가필드, 그리고 내 사랑 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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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설 연휴가 지나고, 당시 사무실과 연구실을 겸해서 사용하던 곳에 갔을 때, 나는 바짝 말라 죽은 화분을 보았다. 일주일 동안 사무실을 비운 동안, 허브는 오랜 가뭄으로 말라죽은 것처럼 죽어있었다. 나는 너무 미안했고, 일종의 죄책감에 다시는 살아 있는 생명과 함께 살지 않기로 다짐했다. 아니, 내가 책임질 자신이 없는 상황에서 함부로 다른 생명/존재와 함께 살지 않기로 했다. 이건 무서운 교훈이었다.

2007년 추석 연휴 기간, 설에 부산에 갔는데, 추석에도 가야 하느냐며 서울에 머물렀다. 날마다 연구실 혹은 사무실에 나왔다. 그러며 학교고양이들에게 참치캔을 주었다. (관련글은 여기) 다른 날이라면 학교에서 음식을 찾기가 어렵지 않겠지만 추석 연휴 동안은 쉽지 않을 일. 사람들이 없기에 학교는 일시중지 상태에 빠진다. 사람을 기준으로 학교는 일시중지. 하지만 학교에서 살아가는 식물들, 고양이들은 여전히 살아야 한다. 제 삶을, 생을 일시중지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추석연휴 기간 동안에만 음식을 주기로 했다. 최소한의 음식으로 생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아울러 나와 고양이가 서로 적응하지 않고 서로에게 길들지 않도록.

추석이 끝났을 때, 나는 ‘고양이사료라고 불리는 음식을 사서 꾸준히 줄까’라는 고민을 했다. 하지만 결국 하지 않았다. 그것은 고민으로 끝났다. 그 이후 내가 머물던 연구실 혹은 사무실이 있는 건물 근처의 고양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여전히 잘 살고 있을까? 그해 겨울이 지나면서 익숙했던 고양이 울음을 들을 수 없었다. 나는 걱정했지만 그 이상의 행동을 하진 않았다. 지금에 와선, 그냥 음식을 조공(!)했어야 했다고 판단하지만, 이 판단은 현재의 것이다. 그 시절엔 거리두기, 무심하기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것이 비록 나 편하자고 내린 결론이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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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마다 사람을 주인으로 삼지 않는 동물(혹은 비-인간)들이 있는 거 같다. 내가 다녔던, 여전히 일을 핑계로 만날 드나드는 학교에도 몇 종의 동물이 있다. 토끼도 있고(아직도 있을까?) 고양이도 있다. 고양이는 계속해서 모습을 바꿔가며 출몰한다. 그 고양이들은 길고양이가 아니라 학교고양이일 테다. 학교를 생태계 삼아 살아가는 이들.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학교란 공간을 자신들의 집 삼아, 생태계 삼아 살아가는 고양이들.

지금 내가 일을 빌미로 자주 드나드는 학교엔 고양이가 최소한 둘 있다. 한 아이는 흰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얼룩이고 다른 아이는 가필드를 닮은 고양이다. 재밌게도 둘의 성격은 너무 다르다. 얼룩이는 놀랍게도, 사람들 근처에 다가와선 곧바로 몸을 뒤집어 배를 드러내며 애교작렬이다! 덕분에 난 생전 처음으로 낯선 고양이와 접촉할 수 있었다!! 쓰다듬으면서 느낄 때의 행복이란!!! 얼룩이는 무려 나를 포함한 사람들 주위를 떠돌고 몸을 부비며 친밀함을 표했다. 아아. 난 얼룩이를 쓰다듬은 후, 톰 소여가 좋아하는 이와 처음 악수했을 때처럼, 고양이를 쓰다듬은 손을 평생 씻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유치함을 발휘했다. 하하. 반면 가필드는 여전히 사람을 경계한다. 혹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물론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길고양이처럼 일정 거리 이상 가까워지면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건 아니다. 그저 사람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얼룩이가 애교작렬이라면 가필드는 고양이 특유의 도도함이라고 불리는 것을 매우 잘 보여준다. 음식이나 고양이 간식을 줘도, 가필드는 사람이 너무 성급하게 다가가면 그냥 무시하고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얼룩이에겐 꾸준히 밥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는 듯하다. 난 며칠 전에야 발견했지만, 고양이 음식 접시도 있다. 그리고 그곳에 고양이사료(비스켓처럼 생긴 거)를 주는 날도 있고, 쌀밥을 주는 날도 있다. 그 덕에 적어도 얼룩이는 살이 올랐고, 털 빛도 고와졌다고 한다. 사람에게 다가가는 걸 꺼리지 않는 얼룩이는, 그 덕에 적당한(그러나 고양이에게 적당한 음식이었는지는 알 수 없는)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었으리라. 반면 가필드의 털 빛은 어떻게 변했을까? 아마도 얼룩이에게 주는 혹은 학교고양이들에게 주는 음식을 같이 먹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한 아이의 건강이 다른 아이의 건강에도 전염되어, 같이 건강해지지 않을까?

아무려나 추측컨데 고양이의 음식을 챙겨 주는 사람은 한 명은 아닌 듯하다. 처음엔 한 명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음식접시를 챙긴 사람은 한 명이었을 테다. 그리고 그곳에 물과 밥을 준 사람도 한 명이었을 테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사람이 챙기는 밥 외에도 시중에 파는 사료를 챙기는 사람, 고양이 간식을 챙기는 사람이 생겨나고 있다. 그저 이런 일이 일시에 중단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다른 사람이 챙길 거라고 믿는 순간, 누구도 챙기지 않는 일이 생기니까. 일정한 조공(!)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시작한 학교고양이에게 조공의 중단은 매우 위험한 일일 수 있으니까.

난 아직은 간식거리(포로 만든 간식) 정도만 가끔 챙기는 1人이다. 12월 중순이 지나서도 내가 학교를 드나든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그저 처음 접시를 가져다 둔 사람이 꾸준히 음식을 챙겨주길 바랄 뿐이다. 내가 가끔 간식을 주는 건, 고양이에게 조공을 받치는 것이기도 하지만, 처음 접시를 가져다 놓고, 밥을 주기 시작한 사람을 지지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것이 중요하다. 혼자가 아니란 걸 깨닫는 것,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기에 서로를 독려하고 격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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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집 근처에 가만히 서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며칠 전 나타났던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리카가 나왔다. 온전히 리카에게만 신경을 쓰며 기다렸지만, 리카는 돌연 나타났다. 흰색에 갈색과 고등색, 검은색이 예쁘게 어울리는 길냥이, 리카. 나는 잠깐 놀랐고, 놀람은 곧 기쁨으로 설렘으로 변했다. 리카는 소리없이 나타나선 잠시 멈춰 나를 보았다. 우리는 눈을 마주쳤다. 리카는 다시 사뿐한 걸음으로 자동차 밑으로 들어갔다. 나는 자동차를 지나 낮은 담을 뛰어넘을 거라 믿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리카는 자동차 밑으로 들어가선 내가 정면으로 보이는 곳으로 나와선 멈췄다. 앞발을 세우고 앉은 자세를 취했다.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곧 깨달았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리카는 움직이지 않고 나를 보았다. 나는 다시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제야 리카는 만족스러운 듯, 자동차 밑에서 나와 낮은 담을 돌아 지나갔다. 그러곤 ‘그곳’으로 갔다. 나는 매우 조용히, 조심스럽게 세 걸음 앞으로 나갔다. ‘그곳’에 리카가 있었다. 리카는 나를 등지고 있다가 뒤돌아 보았다. 다시 눈이 마주쳤다(라고 내가 우기는 거다;;). 나는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하고선 玄牝으로 들어갔다.

오늘 아침에도 리카와 마주쳤다. 평소 아침에 만나는 일은 드물어 기뻤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나는 멈췄다. 리카가 안심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기. 사람이건 고양이건, 모든 생명과 존재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가만 서있었다. 하지만 그 거리가 리카에겐 불편했나 보다. 리카는 얼른 자동차 아래로 들어갔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 리카를 보았다. 리카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두근거림으로 한참을 마주보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동차의 다른 쪽으로 갔다. 그리고 다시 쪼그리고 앉았다. 리카는 나를 정면으로 볼 수 있게 몸을 틀어 나를 보았다.

리카는 나를 기억할까? 알 수 없다. 눈이 마주친 건, 나 혼자의 착각일 수도 있다. 리카는 나를 경계하며 언제든 도망갈 수 있게 준비하는 건지도 모른다. 리카에게 난 그저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인지도 모른다. 괜찮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일방적으로 구애하는 이와 경계와 거리를 유지하며 바라보는 걸 허락해주는 이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 그리고 매일 비슷한 시간, ‘그곳’에서 만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