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집에 사람 들이기

설 연휴 동안 부산에 머물렀습니다. 블로그엔 매일 새 글이 갱신되도록 예약 발행을 했기에, 알아서 잘 운영하더라고요. 크. 하지만 바람을 혼자 둬서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예전엔 명절에 본가에 가야 하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였다면, 요즘은 바람 걱정이 더 큽니다. 이성애-이원젠더 규범의 스트레스는, 면역은 안 되지만, 그래도 예측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짜증과 함께 ‘또 이러는구나..’합니다. 하지만 바람이 혼자 있다는 점은 어떻게 해도 적응이 안 되네요. 밥은 잘 먹고 있는지, 혼자 심심해서 울고 있지는 않는지(라고 믿고 싶다ㅠㅠ), 위험 요소는 없지만 그래도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는지… 그래서 종종 누군가에게 방문을 부탁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곤 합니다.
아는 분은 아시지만, 전 집에 사람을 들이지 않는 편입니다. 이태원의 집을  구경한 사람이, 고양이를 분양  받아간 분들이 전부란 점으로도 알 수 있지요. 그땐 제가 직접 데려갈 수 없는 여건이라 제 집으로 모셨습니다. 그 외에 제 집에 와본 사람은 택배기사와 검침원 뿐입니다. 제게 집은 제가 잠수타고 숨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입니다.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공간이란 의미도 있고요. 그래서 일부러 사람을 초대하지 않았고 놀러오고 싶다는 제안도 다 거절했습니다.
이 고민이 바뀐 계기는 아버지 장례식입니다. 아버지 사고 소식을 듣고, 어떤 예감이 들어, 바람에게 얼추 닷새 정도의 사료와 물을 챙겨 주고 떠났습니다. 그 정도면 돌아오겠거니 했고요. 하지만 얼추 일주일 정도 바람을 혼자 뒀지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밥과 물도 걱정이었고, 바람을 혼자 뒀다는 점도 걱정이었습니다. 또 다른 걱정은 집 주변 동네고양이였습니다. 길냥이들이 제 집 앞에서 밥을 먹는데 못 주는 상황 역시 걱정이었죠. 부산에서 장례식을 치르며 든 고민 중 하나가, ‘아, 삶의 고양이 네트워크가 필요하구나’였습니다. 크.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만 걱정한 건 아닙니다. 누구나 갑자기 죽을 수 있다면, 저 역시 예외는 아니죠. 지금 공개하는 글이 제 마지막 글이 아니라고 누가 단언하겠어요. 죽는 건 문제가 아닌데, 제가 수집한 다양한 기록물과 함께 바람의 삶이 걱정입니다. 이성애-혈연가족이 바람을 입양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니, 입양은 그 다음 문제고 제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바람에게 밥과 물을 주고 화장실을 치워줄, 즉 바람을 보살펴 줄 네트워크가 있어야겠다는 고민을 진지하게 했습니다. 저를 조문하러는 안 와도 좋은데 바람을 보살펴 주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니까요. 제가 죽었다고 바람도 저를 따라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아울러 제가 수집한 기록물을 헌책방에 보내지 않고, 퀴어락에 기증할 수 있도록 절차를 진행할 분도 있으면 좋겠다 싶죠.
이런 얄팍하고 계산이 분명한 이유로(후후),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이 의미 있는 작업이구나, 했습니다. 꼭 이런 이유는 아니지만 이사 이후, 제 집에 방문한 분도 몇 계시고요. 🙂
집에 사람을 초대할 수 있다고 고민이 바뀌면서, 이번 설에 바람을 좀 봐줄 분이 계시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결국 혼자 뒀지만요.. 추석엔 바뀌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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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니 실내화가 여기 저기에 나뒹굴고 스크래처가 나뒹굴고 있는 점만 제외하면, 바람이 바가지를 박박 긁는 점만 제외하면 무사하네요… 흐흐.

[고양이] 바람과의 일화 몇 가지: 막장 드라마, 겨울잠바

하루에 한 두 번 정도 겪는 의례인데…
갑자기 바람은 야옹, 야옹 격하게 울 때가 있다. 이른 새벽과 늦은 밤에 이런 식으로 울 때가 많지만 하루에도 몇 번내키면 언제든 이렇게 운다.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다가가면 바람은 후다닥 도망간다. 그래서 더 쫓아가길 그만두고 나는 다시 나의 일을 한다. 바람은 내가 다가갔을 때만 조용했다가 다시 우아앙, 야아옹하고 운다. 그럼 난 다시 바람에게 다가간다. 바람은 도망한다. 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방으로 후다닥 도망간다. 나는 계속 쫓아다닌다. 누가 보면 괴롭히는 줄 알리라. 바람은 울면서 도망가고 나는 번거로워하면서 쫓아간다. 그리고 싫다는 듯 저항하는 바람을 억지로 붙잡아 품에 안고 꼭 껴안는다. 그럼 바람은 얌전해지고 조용하게 한 동안 내 품에 머문다.
이 얘길 했더니 지인이 막장 드라마 찍느냐고 말했다. 이성애 관계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싫다고, 헤어지자고, 자신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욕을 하고 화를 내는데 남자는 억지로 붙잡고 그리하여 거칠게 껴안는 장면. 그 장면에서 여성은 “날 버리면 죽일 거야”라고 말하고…
아… 딱 이거구나… 바람과 나는 막장 드라마를 찍고 있었구나…
집에 있으면서 15년은 되었을 법한 겨울 잠바를 입곤 한다. 작년에도 그랬는데 그땐 외풍이 워낙 심했고 보일러를 틀어도 따뜻한 느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항상 입는 건 아니고 그냥 가끔 입는 정도인데, 입지 않을 땐 매트리스 위에 던져 두곤 했다. 그럼 바람은 잠바 위에서 뒹굴뒹굴거리곤 했다. 난 그냥 그 모습이 귀여웠고 겨울이불과는 다른 질감에 그냥 노는 거구나 했다.
며칠 전, 보일러를 좀 많이 낮춰야 해서 그 겨울 잠바를 꺼내 입었다. 그러다 하반신은 이불 속에, 상반신은 잠바를 벗은 다음 잠바 위에 누웠는데… 바람이 갑자기 잠바 위로 훌쩍 뛰어 올라왔다. 그러곤 좁은 공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랏?
다음날 낮, 책상에서 놀다가 책상 한 켠에 겨울 잠바를 펼치고 바람을 올려 놓았다. 평소 그 시간이라면 몇 분 있다가 이불 속으로 간다. 그런데 그날은 몇 시간을 잠바 위에서 뒹굴거리는 것이다! 오홋… 이 잠바의 감촉을 좋아하는구나!
앞으로 몇 년은 못 버리겠네…

[고양이] 무늬와 인연

진리의 삼색이라고 얘기했다. 삼색 무늬 고양이를 좋아했다. 비록 지금 리카는 내 생애 최고의 고양이로 남아 있지만, 리카의 사진을 처음 봤을 때 갈색 고등어 무늬라 조금 아쉬웠다. 입양 전까지, 삼색이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중얼거렸다. 물론 리카와 살면서 삼색 무늬에 아쉬움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진리의 리카였다. 리카의 여덟 아깽이가 다양한 무늬였을 땐 경이로웠다. 어떤 무늬의 고양이와 함께 살지에 고민 같은 것 없었다. (비록 반야와 살까란 고민도 했지만 기준이 무늬는 아니었다.)

무늬가 인연일 수도 있다는 고민을 한 건 2012년 어느날이었다. 그냥 문득 깨달았다. 내게 꼬이는 고양이는 성격이나 다른 것이 아니라 무늬라는 것을. 특정 종이나 성격이 인연일 수 있다는 표현은 말이 되지만 특정 무늬가 인연이라는 표현은 말이 될까? 납득은 안 되지만 그랬다. 바람은 검은색과 흰색이 어울린 고양이다. 동네 길고양이도 비슷했다. 꾸준히 밥을 먹으러 온 융도 검은색과 흰색이 어울린 고양이다(무늬만 보면 바람과 융은 매우 닮았다). 다른 고양이도 그랬다. 지난 겨울 내내 나를 찾은 고양이는 흰색 양말을 신은 검은 고양이였고, 또 다른 고양이도 흰색이 많고 검은색이 적었다. 동네엔 노랑둥이도, 고등어무늬도 있었다. 다양한 무늬의 고양이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많은 고양이 중 검은색과 흰색이 어울린 고양이만 집 앞에 밥을 먹으러 왔다. 다른 고양이가 밥을 먹으러 왔을 수도 있지만 그 중 어느 고양이도 꾸준하지 않았거나 나와 마주치지 않았다. 예외라면 시베리안허냥이인데, 허냥이는 회색이었으니 흰색과 검은색의 조합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런 일련의 현상에 문득 깨달았다. 나와 인연이 있는 고양이는 모두 흰색과 검은색이 어울린 무늬인 걸까?
…그리고 이런 이유로 리카는 그렇게 빨리 떠난 것일까?
이 질문이 말도 안 된다는 것, 안다. 경향성은 경향성일 뿐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고양이를 들이는 이슈를 고민할 때 무늬를 중요한 요소로 여긴다. 아니, 행여나 검은색과 흰색이 어울린 고양이가 아닐 때, 삼색이나 카오스를 들였을 때 행여라도 일찍 떠나는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을 겪는다. 그것이 그 고양이의 운명이어서가 아니라, 나와 궁합이 안 맞아, 그럼에도 내가 괜한 욕심을 내서, 나로 인해 일찍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 한다.
이런 식의 고민을 연장하면, 내가 바람(어릴 때 이름은 부타)과 사는 것도 무늬가 만든 인연일까 싶다. 처음엔 반야와 살까 했다. 반야는 리카와 무늬가 닮았었다. 드물게 임시 이름이 아니라 정식 이름을 붙여 준 고양이도 반야가 유일했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반야는 떠나갔다(그리고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다, 부디 그 어디에 있더라도 잘 지내기를…). 부타, 아니 새로운 정식 이름 바람이 내게 남았다. 검은색과 흰색이 어울린 무늬.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붙이면 또 잘 붙는다. 이런 고민이 내 몸에 맴돌면서 진지하게 고민한다. 나와 인연인 고양이는 특정 무늬인 것은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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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고양이 분양을 자주 하는 지인이 내게 어떤 고양이를 들이고 싶어하는지 물었다. 일단은 여이(중성화수술하겠지만), 2-3개월 정도. 어떤 무늬를 좋아하는지 물었을 때, 검은색과 흰색이라고 답했다. 이 무늬가 나와 인연인 듯하다고 말하면서. 아무래도 검은색과 흰색이 어울린 아이여야지 안심이 될 듯하다.
입양과 관련해서 덧붙이면, 작년 말, 한 아이를 입양할 뻔 했다. 입양 직전까지 갔다. 입양 심사도 다 했고 만나는 날짜도 잡았다. 근데 성사가 안 되었다. 그 아이는 카오스 무늬였다. 이것 역시 무늬가 맺는 인연인 걸까? 끼워 맞추려면 뭐든 끼워 맞출 수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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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구금시설 인문학 프로젝트를 할 때, 나도 강의를 했는데 서두에 당시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아이고양이 사진을 보여줬다. 그때 한 학생이, 바람/부타의 사진을 보며 예쁘다고, 함께 살고 싶다고 말했다. 난 그때 웃고 넘겼던 것 같다. 바람과 살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에 염이라도 있었는지 지금 바람과 살고 있다. 묘하다. 참 묘하다.
갑자기 떠올라서 Rica, the Cat 블로그에 갔다가… http://ricathecat.tistory.com/121 리카, 바람/부타, 반야, 눈물점, 이렇게 넷이 남아 있을 때의 얘기다. 사진을 다시 보면서, 슬프고 또 그립다. 이렇게 기록하길 참 잘했다고 몇 번이고 중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