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보리, 고양이

얼추 한 달 전 바람의 동생을 들이기로 했고, 두 곳을 소개받았다는 얘기를 했다.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정말 많이 고맙게도 내게 분양 하는 걸 흔쾌히 허락해주셨고 그래서 눈매가 매력인 아깽을 들이기로 했다.
입양은 어제였다. 여러 가지를 고려하니 어제가 최적이었다. 저녁에 만났고 출산하느라 고생했고 또 많이 서운할 엄마 고양이 비야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소개해주고 함께 해준 D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무엇보다 시원섭섭하고 또 많이 허전할 집사께도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E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것은 두 고양이가 처음 조우한 장면입니다. 🙂 참 훈훈하죠?
아기고양이 보리는 처음 살던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냐옹냐옹 울더니 지하철을 타려고 할 땐 조용히 했다. 지하철에서 잠깐 잠깐 울기도 했지만 다른 승객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고. 그렇게 집에 도착하니, 바람이 전에 없이 흥분한 상태로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깐 눈을 돌린 사이 바람은 후다닥 이불 속으로 숨어들었다.

보리에겐 적응하라고 잠시 이동장에 그대로 뒀다가 문을 열었고 조금 망설이더니 이동장 밖으로 나왔다. 그러곤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나는 일단 화장실을 먼저 익히라고 화장실에 데려갔는데 보리는 잠시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정말 낯선 사람, 낯선 공간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러더니 결국 세탁기 뒤에 숨으려 해서 낚아 챘다. 그대로 방으로 데려왔고 이곳저곳을 잠시 살피더니 큰 베개 뒤로 숨어들었다.

한동안 둘은 한 침대에 각자 숨어서 잠시 냉전의 시간을 가졌다. 이 상태는 보리가 먼저 깼다. 보리가 계속 베개 뒤에 있어서, 나는 손에 사료를 몇 알갱이를 올려서 줬고 아그작 아그작 잘 먹었다. 그리고 얼마 뒤 E가 사료를 주니 아그작 아그작 먹다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열심히 탐험. 이곳저곳을 살폈다. 완전하게 안심한 것 같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열심히 살폈다. 그리고 또 베개 뒤에 숨기를 반복하기도.

이것이 두 고양이가 조우한 두 번째 장면입니다.
보리는 바람이 숨어 있는 이불 위도 열심히 살폈다. 그 와중에 나는 좀 움직였는데, 몇 가지 놀란 점. 일단 보리는 내가 움직인다고 해서 자신의 움직임을 중단하진 않았다. 바람과 가장 큰 차이다. 바람은 자신이 원하는 걸 하고 있을 때 내가 움직이면 일단 긴장하고 어느 순간엔 도망간다. ;ㅅ; 그래서 바람이 밥을 먹거나 물을 마실 땐 꼼짝도 안 한다. 보리는 그냥 자신이 원하는대로 돌아다녔다. 또 다른 놀라움은, 내가 방에서 나가면 울다가 베개 뒤로 숨었다. 내가 방으로 들어가 베개 사이로 보리를 보며 인사하면 빠져나왔다. 이걸 반복했다. 그나마 이 집에선 내가 안심인 걸까?

이것이 두 고양이가 조우한 세 번째 장면입니다.
어느 순간, 바람은 밖으로 기어나왔다. 그리고 베개 뒤에 있는 보리에게 가서 하악질을 하고선 거실의 캣타워로 피신했다. ㅠㅠㅠ 바람은 바람대로 화가 났고 보리는 보리대로 공포. 바람의 심기는 좋아 보이지 않았고, 보리는 바들바들 떨었다. 두 고양이를 달래느라… 그나마 바람이 이불 밖으로 나온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현재 상황에서 바람은 마루의 캣타워에 정착했고 보리는 방에 정착했다. 보리는 불안을 느끼거나 위험을 느끼면 베개 뒤로 숨었고, 내가 방에 있으면 밖에 나와 있곤 한다. 그리고 어제 밤, 이 글의 초안을 쓸 때 보리는 내 다리 위에서 웅크리고 잤다. 후후후.
잠들지 않은 아기 고양이를 제대로 찍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야.

간신히 잡은 정면. 하지만 부족해! ;ㅅ;

이것은 구글플러스가 만들어준 움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