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젠더 의미, 메모

트랜스젠더란 용어는 역사적 개념입니다. 한 사람의 현재 몸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오며 몸과 젠더의 관계를 어떻게 겪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용어죠. 만약 시스젠더를 자신이 인식하는 젠더와 태어날 때 지정받은 신체적 섹스가 일치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면 저는 시스젠더입니다. 왜냐면 저는 mtf 트랜스젠더고 제 몸 역시 트랜스젠더의 몸, 트랜스여성의 몸, 그리고 여성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얘기하지만 제 턱에 난 수염 흔적은 제가 여성이기 때문에 그리고 트랜스젠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단지 현재의 몸 상태만 얘기한다면 저는 시스젠더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논리 장난을 치면, 저는 저를 트랜스젠더로 인식하고 제 몸은 트랜스젠더 몸이란 점에서 저는 시스젠더입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란 용어는 한 개인이 살아가며 몸과 젠더가 겪는 다양한 경합을 설명하는 용어란 점에서 저는 자랑스럽게 트랜스젠더입니다. 아울러 시스젠더란 용어는 단지 태어날 때 지정받은 젠더와 신체적 섹스가 일치하는 사람을 지칭하기 위해 등장한 용어가 아니라 트랜스젠더에 대응하는 용어의 필요에서 등장한 용어입니다. 트랜스젠더와 일반인이라고 말한다면 트랜스젠더만이 특이한 경험을 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규범으로 작동하는 이원 젠더를 자연화하지요. 그래서 비트랜스젠더와는 다른 어떤 용어가 필요했고 이를 시스젠더란 용어를 만들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을 놓친다면 트랜스젠더와 시스젠더를 분리된, 별개의 존재로 상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시스젠더는 트랜스젠더와는 다른 젠더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비트랜스젠더를 자연화하지 않기 위한 용어입니다. 몸과 젠더를 어떻게 경험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용어란 점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하고 이 지점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 역시 제가 시스젠더란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기도 하고요.)

시스젠더, 욕망을 지지하면서 제도를 문제삼기

이런저런 자료를 찾다가, 위키영어사전에서 시스젠더를 설명하는 구절을 읽었다. 소위 자신이 인식하는 젠더와 태어날 때 지정받은 섹스가 일치하는 사람을 뜻하며, 이런 의미에서 수술 등 의료적 조치를 한 트랜스젠더도 시스젠더에 속한다는 설명이었다.
(시스젠더가 수술 등을 이행한 트랜스젠더도 포함한다는 구절은 몇 분 안 지나 삭제되었다.)
나는 이런 설명이 매우 당혹스러운데 이런 식의 설명은 트랜스젠더의 삶을 역사 없는 것, 단지 지금이라는 특정 찰나에만 박제된 형태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스젠더의 삶을 갈등 없는 것, 매끈한 것으로 만든다. 그리하여 수술을 모두 다 했거나 호적정정도 한 트랜스젠더는 시스젠더에 포함된다는 사고 방식은 여전히 인간의 기준을 시스젠더에 둘 뿐이다. 개개인이 자신은 트랜스젠더가 아니며 트랜스젠더가 부르지 말라고 요구할 수는 있다. 이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특정 사유체계를 규범으로 삼는 방식, 제도 자체는 끊임없이 문제 삼아야 하고 기존의 규범을 탈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개개인의 욕망을 지지하면서 기존의 규범과 체제를 문제 삼지 않는다면, 이런 태도는 개개인을 끊임없이 고통으로 내모는 바로 그 제도를 유지하는데 공모함과 다르지 않다. 이것이 내가, 그리고 내가 아는 여러 사람이 개개인의 욕망을 지지하면서도 고통을 다른 식으로 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규범과 제도를 문제삼는 이유다.
아래는 참고하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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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sgender and cissexual (often abbreviated to simply cis) describe related types of gender identity where an individual’s experience of their own gender matches their bodies. This includes people who were once transgender but physically transitioned so their gender identity matches their physical sex. [1] Sociologists Kristen Schilt and Laurel Westbrook define cisgender as a label for “individuals who have a match between the gender they were assigned at birth, their bodies, and their personal identity” as a complement to transgender.[2]

흥미로운 해석과…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다.

파니 “시스젠더 몸의 탄생 : <미녀는 괴로워>가 젠더경합을 무마하는 방식에 대하여”
내 이름이 자주 등장하여 쑥쓰럽지만 흥미롭고 또 잘 쓴 글이라 여기에 슬쩍 링크.
영화 <미녀는 괴로워>를 시스젠더 몸/범주의 탄생으로 재해석한 글인데, 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본 나로선 이 해석이 무척 좋다. 읽으며 ‘그래.. 그렇지’하며 감탄하기도 했다. 이렇게 흥미로운 해석을 이제야 읽다니!
물론 몇 군데 선뜻 동의하기 힘든 구절도 있다. 예를 들어 “모든 젠더 (정)체화 과정은 규범을 불안정하게 패러디하며 몸을 변형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젠더주체는 트랜스-젠더가 된다.”라는 구절이 그렇다. 문단의 논의 맥락에선 이 구절이 문제가 없다. 아울러 “트랜스젠더”가 아니라 “트랜스-젠더”라고 표기하고 있기도 하고. 그럼에도 모든 주체를 트랜스젠더 주체로 재해석할 때, 나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링크한 글의 문제란 뜻이 아니다). 이를 테면 성전환수술로 분류되는 일련의 의료적 조치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떻게든 다른 경험을 한다. 자신을 트랜스젠더로 분류하며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이 세상과 조우하는 방식도 분명 다르다. 그런데도 ‘모든 젠더 주체는 트랜스젠더다’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면 의료적 조치를 선택한 트랜스젠더가 겪는 또 다른 경험이 희석되거나 누락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갈등한다. 서로를 분리하지 않으면서, 그럼에도 경험의 층위를 무화시키지 않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

사실 이 글을 쓰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파니 님의 글은 2010년 12월에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 석사학위 논문을 인용하고 있다. …응? 어떻게 읽으신 거지? 석사학위 논문을 워낙 적게 인쇄했기에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배포했다. 아울러 도서관에서 파일 다운로드를 막았기에 읽은 사람이 정말 몇 명 없고 구할 방법도 마땅찮았다. 이 블로그에 공개한 것도 2012년 여름이었고. 그런데 무려 2010년에 쓴 글인데 석사논문을 읽으셨다니.. 어떻게 구하신 거지? 어떻게???
파니 님 블로그에 직접 여쭈려다 부끄럽기도 하고 수줍기도 해서.. 소심하게 여기에만 조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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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초면이 아니면 어떡하지… 내가 워낙 사람 얼굴과 이름 기억을 못 해서.. 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