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융, 루스, 노랑둥이, 시베리안 허냥이?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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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아침. 오랜 만에 융을 만났다. 그 전, 융이 집에 들어오려고 했으나 내가 거절했고 그 이후 융은 단단히 삐진 듯했다. 아침 저녁으로 밥그릇에 사료가 너무 많이 남아서 융이 안 오는 것일까, 걱정할 정도였다. 그래서 13일 아침, 융을 만났을 때 유난히 반가웠다. 다행이었고.
하지만 융의 표정음 심상찮았다. 내가 나가자 융은 자리를 피했다. 최근 많이 가까워졌는데, 가깝던 거리보다는 멀어졌고, 멀었던 거리보단 가까운 그런 거리로 피했다. 심지어 내가 밥과 물을 챙기는 동안 고개를 살짝 돌리곤 ‘나 삐졌어’ 혹은 ‘나 화났어’란 분위기를 팍팍 풍겼다. 흐흐. 아우, 귀여워라. 그래서 캔사료를 하나 추가로 줬다. 이런 것으로 화가 풀리진 않겠지만.
지금은 집에 못 들이지만, 언젠가 내가 이사를 해야 할 때, 그리고 그때도 융이 살아 있고 밥을 먹으로 온다면 그땐 납치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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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는 재밌게도 나만 보면, 운다. 일단 운다. 야아옹, 운다. 목소리라도 작으면 좋으련만, 꽤나 요란한 크기로 운다. 이 녀석!
03
노랑둥이를 만났다. 꽤나 오래 전 단 한 번 만난 고양이라 그저 지나가는 길에 한 번 들린 것이려니 했다. 더 이상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 그냥 잊고 살았다. 그저 아주 가끔,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지내나 궁금할 뿐이었다.
어제, 토요일, 택배를 받을 일이 있어 잠깐 나갔다. 문을 여니 서둘러 도망가는 고양이가 보였다. 노랑둥이가 밥을 먹다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피하는 딱 그 정도 거리로 피했다. 주택이라 택배를 받으러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니 노랑둥이는 밥을 먹고 있었다. 노랑둥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가야겠다고 결정하고, 중간에 멈췄다. 그랬더니 노랑둥이는 밥을 먹지 않고 나를 바라봤다. 눈을 껌뻑껌뻑이며 나를 보기만 했다. 내가 근처에 있으니 불안한 것일까. 계단을 오르려고 시도하니 노랑둥이는 얼른 옆으로 피했다. 서둘러 집으로 들어왔다.
몸 한 곳에 반가움이 남아, 간식거리를 챙겨 나갔다. 노랑둥이는 또 서둘러 피했다. 노랑둥이의 점심은 참 고달프다. 간식을 꺼내 주니, 눈이 번쩍 뜨이는 티가 난다. 아마 처음이겠지? 아침 저녁으로 밥을 주면서 가끔 기분이 내키면 간식사료(캔을 비롯한 자잘한 것)를 같이 준다. 하지만 이 시간에 맞춰 오는 아이는 융이나 루스니 노랑둥이가 먹을 가능성이 적다.
자주는 아니라고 해도 가끔은 만났으면 좋겠다. 안부라도 알 수 있게.
그나저나 눈이 안 좋은 것 같은데 괜찮으려나…
04
오늘 아침. 밥을 주러 나갔더니 어디선가 아련한 느낌으로 야옹, 울음소리가 들렸다. 착각한 것이려니 하면서도 어딜까, 둘러봤다. 옆집 담장 근처에 고양이 얼굴이 보였다. 토메키치를 닮은 얼굴이었다. 오오, 새로운 얼굴에 꽤나 잘 생겼다고 감탄했다. 하지만…(응?) 융이었다. 흐. ;;; (미안;;) 융은 1.5미터가 넘는 높이의 담장에서 어떻게 내려올까를 망설였다.
이 와중에 또 다른 곳에서 고양이가 나타났다. 평소 고양이가 드나드는 길목에서 루스가 나왔다. 어김없이 우아앙, 울었다. -_-;;
자, 이제 누가 먼저 밥을 먹을 것인가. 평소엔 융이 먼저 먹지만 이번엔 루스가 먼저 먹겠거니 했다. 그런 줄 알았는데, 융이 담장에서 내려오더니 내가 있거나 말거나, 루스가 있거나 말거나 계단을 걸어올라왔다. 그러고선 내가 밥그릇을 채우는 중인데도 자리를 딱 잡더니, 밥그릇을 다 채우니 곧장 와그작, 와그작 밥을 먹기 시작했다.
우와앙 울던 루스는 결국 2등. 용기 없는 자 혹은 아직 경계하는 자는 2등이란다. 크크크.
암튼 융이 밥을 와그작, 와그작 먹기 시작할 때, 난 손가락 끝으로 살짝 융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05
조금 전 있던 일. 혹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
밖에서 고양이 울음 소리가 들렸다. 배가 고픈걸까 했다. 저녁시간이나 밥그릇이 비었을 수도 있다. 물론 밥그릇이 비었다고 우는 경우는 없지만 그래도 또 모를 일이다. 그래서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문을 연 순간, 두 고양이가 동시에 눈에 들어왔다. 우선 익숙한 녀석. 루스는 밥을 먹는 중이었는지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평소 고양이들이 자리를 피하는 곳엔 연회색의 덩치 큰 고양이가 있었다. 그 녀석, 요란하게 울다가 갑자기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나를 보는데… 강아지? 얼굴이 딱 강아지 닮았다. 그것도 시베리안 허스키 무늬와 얼굴이었다. 덩치도 꽤나 컸다. 밥 먹으러 오는 고양이 중 가장 큰 편. 그래서 시베리안 허냥이가 루스를 밀어내고 밥을 먹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루스가 밥을 먹고 있었다. 밥 그릇엔 밥이 적잖게 남아 있었다. 신경을 끄기로 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다시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상하다 싶어 나갔더니 후다닥,하는 소리가 들렸다. 둘은 뭘 하고 있었을까. 둘은 다시 자기들끼리의 경계를 풀고 날 경계했다. -_-;; 그 모습을 잠깐 구경하다 집으로 들어왔다. 아니, 밖으로 나가진 않았다. 문을 살짝 열고 얼굴만 내밀었으니까.
또 울음소리가 들려 이번엔 그냥 밥그릇을 채우기로 하고 나갔다. 겸사겸사 간식도 좀 주고. 나가니 루스와 허냥이, 모두가 떠났는지 안 보였다. 잠시 주변을 살피니 허냥인 임시보호소 박스 위에 앉아 있었다. 루스는 안 보였다. 밥그릇을 채우고 간식사료를 주려는데, 그 소리를 들었는지 갑자기 루스가 나타나선 우아앙, 울기 시작했다. 이 녀석. -_-;;; 반으로 나눠 둘에게 주고선 집으로 들어온 지금.
아직도 밖에선 허냥이 울음 소리가 들린다. 끄응.. 이 집에서 밥을 먹으려면 조용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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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추위 대피용 구호소인데도 모두가 외면하여 그냥 박스일 뿐인 임시거처의 쓰임을 발견했다. 스크래처다. ;; 박스의 지붕을 발톱으로 뜯은 흔적이 선명하다.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쓰임을 찾았으니 다행이다.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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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내가 고양이를 걱정하고 신경쓰는 만큼만 혹은 그 십분의 일 만큼만 사람에게 신경을 썼다면 내 인간관계가 달라졌겠지. 크크크.

[고양이] 융의 난입, 루스의 울음

01

지난 화요일 아침. 밥을 주러 나갔다. 문을 조금 여니 까만 무늬에 큰 덩치의 융이 보였다. 밥 그릇은 이미 빈 상태였다. 물을 주려고 했는데 내가 나가도 융이 자리를 비키지 않았다. 평소라면 옆으로 피해 있는데 어젠 그냥 그 자리에 머물렀다. 그러고선 열려 있는 문으로 들어가길 시도… 덜덜. 순간 당황해서 문을 닫아가며 융이 밖으로 나오길 유도했다. 뜨거운 물을 먼저 주고 찬 물을 가지러 가려고 문을 여니 그때도 다시 융은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이미 앞발은 집 안에 들어와 있었다. 다시 밖으로 나가길 유도한 다음 얼른 찬 물을 담아, 먹기 좋은 온도로 만들었다. 그러자 융은 목이 무척 말랐다는 듯 물을 마셨다. 아울러 밥그릇을 채우니 와구와구 밥을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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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융이 집에 들어오려고 시도하는 그때, 턱시도 루스(한두 번 본 게 아니라 심심찮게 마주쳐서 이름을 붙여 줌)가 나타났다. 그러곤 날 보더니 야아옹, 야아옹,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 소리 한 번 참 시원하다…가 아니라, 요란하다. 끄응.. 크게 소리내서 울면 안 되니 무척 당황했다. 내가 당황하거나 말거나 루스는 날 보며 계속 울었다. 그 울음, 유추하건데 “배고파~ 배고파!”인 듯. 융이 다 먹고 나면 그때 먹어도 괜찮을 텐데 루스는 자기에게 밥그릇을 따로 내놓으라는 듯 요란하게 울었다. 난 루스에게 융이 다 먹고 나면 먹으라고 말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신기할 정도로 딱, 울음을 그쳤다. … 이 녀석이.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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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외출하기 위해 나가는데.. 조심성 없게 문을 열었다가 무언가에 부딪혔다. 평소 외출할 때 고양이를 만난 적이 거의 없고, 내가 문을 열고 나오는 소리에 자리를 피하기에 잠시 당황했다. 나와서 보니 융이 밥을 먹고 있었다. 뭔가 간식거리를 줄까 고민도 했지만 관뒀다. 융은 내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손을 뻗으면 쓰다듬을 수도 있는 거리에 있는데도 가만히 있었다. 아침, 난입 사건을 떠올리며 융이 집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것일까, 하는 고민을 했다. 그래서 밤에도 날 기다리고 있으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기로 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게도, 융은 그날 밤 집 앞에 없었다.

[고양이] 융과 턱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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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저녁 다섯 시. 집 근처에서 우우우~하는 소리가 들렸다. 집 근처 고양이가 우나, 했다. 집에 있을 때면 저녁을 6시에 주는데, 기다리던 어느 고양이가 배가 고파 우는 것일까 싶어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여니 집 근처 모퉁이(융이 종종 앉아 있는 곳)에 융의 뒷모습이 보였다.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슬쩍 나가서 그곳을 보니, 어랏, 턱시도 고양이가 있었다. 전형적 턱시도 무늬의 고양이가 융과 대적하고 있었다. 턱시도 고양이는 나를 보더니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일 미터 정도 도망갔다.
마침 밥그릇이 비어 있어 밥을 주고, 다시 한 번 턱시도를 찾았다. 아까보다 조금 더 도망간 상태였지만 떠날 의사는 없어 보였다.
융과 턱시도는 텃세 싸움을 한 것일까, 영역 싸움을 한 것일까? 하지만 딱히 싸우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서로 경계하는 듯하다.
02
어제 아침. 밥그릇을 채우고 보일러실 문을 잠그고 있는데 융이 밥그릇으로 다가와선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 융과 나 사이 거리는 10cm. 물론 밥그릇에 밥을 채울 때만 이 정도 거리지만 그대로 많이 가까워지고 있다. 아직 쓰다듬길 시도한 적은 없다. 내가 원하지도 않고. 물론 융이 앉아 있을 때 손을 뻗기는 하지만 실제 쓰다듬지는 않는다.
03
어제 밤. 외출했다가 늦게 들어오니 밥그릇이 비어있다. 당연한 일. 밥 그릇을 채우며 융이 오길 기대했다. 그러며 융이 앉아 있곤 하는 자리를 바라보니 언제 왔는지 턱시도 고양이가 와 있었다. 그곳에 앉아 내가 집으로 들어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턱시도와는 이제 두 번째 만남. 그럼 집 앞으로 밥을 먹으로 오는 고양이는 이제 너댓 정도인가?
그나저나 내겐 왜 자꾸 검은색과 흰색이 어울린 무늬의 고양이가 주로 꼬이는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