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네 번째. 차이와 차별을 상상할 수 있는 세상을 바라며

인권오름에 쓴 마지막 원고입니다. 부끄럽게도 날림으로 휘리릭, 쓴 원고입니다. ;ㅅ;

인권오름에서 읽기: http://goo.gl/TtR7Z
웹페이지로 읽기: http://goo.gl/rKHOP

그냥 여기서 읽기.. 흐.


인권오름4: 차이와 차별을 상상할 수 있는 세상을 바라며
-루인

얼마 전, 19세기 미국과 유럽의 프렉쇼를 다룬 책을 읽었다. 프렉쇼란, 오늘날의 의미로 장애인이나 퀴어가 무대에서 자신의 몸을 전시하는 일종의 서커스다. 이 쇼를 통해 프렉은 직업을 구할 수 있었고, 관객은 자신의 몸이 규범적이란 망상을 (재)생산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 쇼가 지속될 수 있었던 여러 이유 중 하나로, 관음증을 든다. 관음증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부재했기에 프렉쇼 흥행이 가능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며 관음증이 윤리적인 문제가 된 20세기 초, 프렉쇼는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물론 관음증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하 지만 관음증을 금기시한 시대는 없다. 관음증의 금기는 사회의 비규범적인 존재, 지배적인 지위에 속하지 않는 존재에게나 해당하는 윤리다. 아울러 20세기 초, 관음증이 윤리적인 문제가 되면서 프렉쇼만 쇠퇴한 것은 아니다. 관음증이 윤리적인 문제가 되면서 사람들은 프렉쇼를 관람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프렉도 바라보지 않았다. 프렉쇼 관람이라는 관음증을 금기하면서, 프렉/퀴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소위 규범적이라고 여기는 존재만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 한 지인이 내게 차별이나 차이가 없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 것 같냐고 물었다. 관련 글을 써야 하는데 고민이 많다고 했다. 난 차별이나 차이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 그것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고 말했다. 아울러, 차이와 차별이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인간을 인식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지인이 글을 쓰기 힘든 이유엔 이런 점도 있었기에,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서로 공감했다.

차이나 차별은, 타인을 인간으로 인식할 수 있거나, 인식할 수 없게 하는 장치다. 차이가 차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차별이 차이를 만든다. 그리고 차별과 차이는 인간의 범주/한계를 규정하고 인간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여과장치다. 차이와 차별이 없다면, 그 세상에서 우리는 타인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가 겪는 불편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그래서 차이와 차별은 다른 말로, 인간을 구분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범주(‘정체성’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것)다.

나는 차이와 차별이 그 자체로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다. 물론 그것은 많은 경우, 개인 간의 위계질서를 만들려는 기획에서 등장한 범주다. 하지만 그 범주 덕에 나는 인간의 더 많은 차이를, 좀 더 다양한 입장을 인식하고 상상할 수 있다. 특강을 갈 때면, ‘나 역시 하리수 씨와 같은 트랜스젠더다’라고 말하며, 수술하지 않는 트랜스젠더를 부각한다. 그러며 나를 전시한다. 남성인 것 같은 사람이 남성이 아닐 수도 있고, 여성인 것 같은 사람이 여성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보다, 나의 몸을 관음할 수 있도록 할 때, 그 효과가 더 확실했다. 트랜스젠더의 몸이 트랜스젠더로 드러날 때, 이것은 그 자체로 운동이란 점을 나는 매번 체감한다. 차이를 부각하는 일은 ‘내’가 이제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어떤 가능성과 세상을 상상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나의 방법이 시각경험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유쾌하진 않지만, 내가 마냥 대상화되는 것은 아니다(대상화되면 또 어떤가? 나는 대상화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그렇게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럴리가. 어떤 차이를 인식할 수 있다면 이를 인식할 수 있는 나의 맥락, “뭔가 다르다”고 느끼는 나의 감정을 살피자는 것 뿐이다.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말은, 그것의 호소력과 효과에도 불구하고 차이와 다양성이 발생하는 구조를 은폐한다. 관용 운운은 ‘나’의 위치를 고민하지  않으며, 나와 타인을 전혀 무관한 것으로 분리할 뿐이다.

차이는 자연스러우니 차별은 어쩔 수 없다는 말도 아니다. 그럴리가. 타인을 만나는 과정에서 어떤 차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단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만약 어떤 차이를 통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풍성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이럴 때 차이가 나쁠 이유가 무엇인가? 차별을 차이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구조로 이해한다면, 차별이 마냥 없어져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차이를 ‘쿨’하게 무시하며 마치 ‘우리는 같은 인간’이란 식으로 대하는 태도보단, 차이와 차별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사실 … 이것은 나부터 실천해야 하는 자기다짐이다. 그리고 차별금지법 제정 관련 이슈가 다시 부각는 이 시점에서, 더 많은 인간경험(그러니까 차이와 차별)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2010 성적소수자 차별 및 혐오 저지를 위한 긴급 번개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현재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움직임이 법무부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저지하려는 보수적인 일부 기독교 단체의 움직임이 있고요. 이런 이유에서 일까요? 긴급번개가 있다고 합니다.

2010 성적소수자 차별 및 혐오 저지를 위한 긴급 번개
일시: 2010.11.22.월. 저녁 7시 30분
장소: 명동 향린교회 1층

많은 분들이 함께 하길 바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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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건널목 시위와 1인 시위

교통경찰들의 관심과 호위 속에서 ‘무지개 건널목 시위’는 무사히 끝났다. ‘무지개 건널목 시위’란, 광화문 사거리의 횡단보도에서, 파란불일 때마다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글귀가 들어간 현수막을 들고 횡단보고에 서 있다가 파란불이 끝날 즈음 재빠르게 돌아오길 반복하는 것. 첨엔 한 교통결찰이 뭐라고 큰소리를 냈지만, 끝날 땐 서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끝났다. 아하하. 경찰과 협상한 분이 다큐를 찍는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나. (사진이 있는데 현재는 비공개 게시판에 올라와 있어서, 조만간에 공개게시판에 올라오면 그때 추가할 게요. 흐흐.)

첫 시작 때는 조금 긴장했다. 사전 준비를 하며, 불법시위로 경찰이 연행할 경우를 대비하는 얘기를 했을 정도였으니까. 평소엔 잘 없는 경찰들이 횡단보고 근처에 있는 것도 조금 불안했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경찰과 이야기가 잘 되는 분위기인데다,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며 지나갈 땐 재밌기도 했다. 얼마간의 불안이 있는 즐거움. 혹은 재미. 30분간 횡단보도를 뛰어다닌 시간이 무척 즐겁게 남으리라.

끝나곤 곧바로 1인 시위를 하러 갔다. (역시 조만간에 사진이 올라오면 추가하지요. 흐흐) 인형 둘과 함께 나가는 1인 시위. 곰돌이 인형은 옆에 앉혀두고 토로로 인형은 한 손으로 안고 1인 시위를 했다. 피켓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인형을 들고 있으니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한결 부드럽다는 걸 느꼈다. 이렇게 얘기하면 마치 예전에도 1인 시위를 한 경험이 있다는 식의 오해를 줄 수 있는데, 그렇지는 않고. 다만, 얼마 안 떨어진 거리에 단식시위를 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1인 시위를 하는 피켓과 인형에 꽤나 많은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서, 시위를 하는 방법을 잠깐 고민하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분이(이곳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어떤 분인지, 아님 긴급행동을 처음부터 알고 있고 같이 활동도 하는데 루인이 얼굴을 모르는 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_-;; 만약 후자라면 죄송해요!!) 따뜻한 두유를 한 병 주고 가셨을 땐, 무척 힘이 났다. 고마워요!!!

하지만 2시간 동안 가장 인상적인 일은 의무경찰들의 반응이었다. 지난주부터 1인 시위를 했으니 낯설지는 않으리라. 문제는 의경들의 시선이었다. 의경들은 힐끔힐끔 피켓의 내용을 읽고 있었다(라고 루인은 해석했다). 루인이 쳐다보는 걸 눈치 채면 얼른 피하지만 피켓의 내용(7개 차별항목과 성별의 정의/성별정체성 항목)에 드러낼 수 없는 관심이 있음을 느꼈다(루인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이런 느낌은, 아마 의경들 역시 이런 7개의 차별항목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겠지. 그 사람들 중엔 학력이나, 성적지향, 가족상황 등등의 여러 이유로 차별을 받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그 사람들의 표정이 복잡하게 다가왔다. 의무경찰이라는 위치로 인해 동조할 수 없지만 피켓을 통해 얘기하는 내용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 갈등. 1인 시위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모든 의경들이 이러한 이유로 쳐다보는 건 아니겠지만, 이런 복잡한 표정들을 포착할 때마다, 기묘하면서도 재밌는 감정을 느꼈다. 비단 의경들뿐이랴. 정부중앙청사에서 일하는 이들 중에도 이와 관련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있을 테고, 아무런 관심을 안 보이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처음 보는 사람처럼 피켓의 내용을 자세히 읽으며 지나가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시위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잠깐이지만 음악도 들었고(Cooper Temple Clause), 열심히 시위하는 와중에 짬짬이 피켓을 매고 서있으면서 논문도 읽었다-_-;;; 흐흐. 읽고 있던 논문은, 예전에 이곳에 간단한 글을 남긴 적이 있는 Susan Stryker의 “My Words to Victor Frankenstein above the Village of Chamounix”였다. 다시 한 번 읽고 싶어, 어제부터 지하철이나 이동하는 길에 읽고 있는데, 오늘 유난히 미치지 않을 수 없게 몸에 와 닿는 구절들이 있었다.

“내 살의 형상은 나의 욕망으로부터 나를 소외시키는 장벽이었다. The shape of my flesh was a barrier that estranged me from my desire.”(246)

“내가 태어났을 때의 몸에서, 나는 나 자신이라고 고려하는 사람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내 몸의 형태[외모/외형]가 나의 욕망을 이성애로 보이게 하는 한, 나는 퀴어로 보이지 않았다. 이제, 다이크로서 나는 여성들 속에서 보이지 않고, 트랜스섹슈얼로서 나는 다이크들 속에서 보이지 않는다. 아기 엄마의 파트너로서, 나는 종종 트랜스섹슈얼로서, 여성으로서, 레즈비언으로서 보이지 않는다. In the body I was born with, I had been invisible as the person I considered myself to be; I had been invisible as a queer while the form of my body made my desires look straight. Now, as a dyke I am invisible among women; as a transsexual, I am invisible among dyke. As the partner of a new mother, I am often invisible as a transsexual, a woman, and a lesbian.”(246)
(#”아기 엄마new mother”는 정확한 번역은 아닌데, 정확하게 읽은 거라면, 스트라이커의 파트너가 출산을 하는데, “new mother”는 이를 의미한다.)

“분노의 작동을 통해, 낙인은 변화하려는 힘의 자원이 된다. Through the operation of rage, the stigma itself becomes the source of transformative power.”(249)

이런 글을 읽으며 시위하는 상황이 더 힘나고 즐거웠다. 다들, 힘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