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함, 고단함, 그리고 삶

흐리고 비가 올 것만 같은 날씨,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느 토요일 오후.

어느 가게에서 호르몬투여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된 mtf가 간단한 장을 보고 나왔다. 호르몬 효과로 체격이 좀 변했고 얼굴은 곡선형으로 바뀌었다. 수줍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그가 트랜스젠더인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다. 내가 mtf 트랜스젠더라고 분류하는 유형에 어느 정도 들어맞아 mtf라고 해석했을 뿐이다. 그는 트랜스여성이 아니라 비트랜스여성일 수도 있다. 비트랜스여성이라고 해서 몸의 형태가 유사한 건 아니다. 때로 비트랜스여성 간의 신체 차이가 트랜스여성과 비트랜스여성 간의 신체 차이보다 더 클 수도 있다. 그러니 그가 mtf 트랜스젠더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그의 몸이, mtf로 통하고, 이태원이란 공간에선 여성으로 통한다는 점이 조금 부러웠다.

나의 욕 나오는 몸은, 언제나 내게 골칫거리다.

얼추 한 달 전. 외국에서 온 누군가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내가 호르몬투여를 비롯한 어떤 의료적 조치를 하지 않는 이유가 정치적인 효과를 위해서냐고 물었다. 그렇진 않다고, 내가 무얼 바라는 건지 결정하지 않았으며 지금 상태가 문제가 덜 되기에 의료적조치를 취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다시, 나의 행동이 정치적인 행동과 효과를 위해서냐고 물었다.

1990년대 이후, 미국에선 트랜스젠더 운동과 이론이 활발하다. 아울러 퀴어운동이 급부상하며서 트랜스젠더는 때로 퀴어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때론 퀴어가 아니라 기존의 규범을 강화하는 존재로 불리며 상당한 논쟁을 유발했다. 이 과정에서 몇몇 트랜스젠더/트랜스섹슈얼 활동가는 자신의 성전환과 호르몬투여를 정치적인 행동, 퀴어함의 상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여성으로도, 남성으로도 통하지 않는 몸이 다른 사람에게 혼란을 주는 효과를 긍정했고 이를 적극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의료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mtf는, 자신의 몸이 남성으로 보이지만 자신의 젠더범주는 여성이라고 설명하며 젠더범주와 그에 적합한 몸의 형태 간의 관계에 균열을 냈다. 일상에서 여성으로 통하는 mtf는 자신이 m(남성)의 역사와 흔적이 있는 여성이라고 말함으로써 역시나 범주와 몸의 관계에 파열음을 냈다. 비록 트랜스젠더의 몸은 가시성을 획득하는 순간 그 자체가 운동이지만, 그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나는 나의 몸이 일으키는 혼란과 헷갈림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런 헷갈림을 즐기고 적극 활용한다. 그렇다고 마냥 즐거운 건 아니다.

나를 인터뷰한 이가 “당신의 행동이 정치적인 효과를 위해서냐?”고 반복해서 물었을 때, 불쾌했다. 그의 쿨함때문에? 글쎄. 어쩌면 글 몇 편 읽고, 그것도 트랜스젠더 몸의 정치적 효과에 관한 글 몇 편 읽고 질문하는 느낌이라 불쾌했는지도 모른다. 혹은 활동가의 삶과 행동을 모두 “정치”적인 행동으로만 수렴하는 태도가 불쾌했는지도 모른다. 내 몸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효과가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면 나는 신나게 얘기했으리라. 하지만 그는 내가 활동가이니 “정치”적인 효과를 위해 의료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거라고 어느 정도 확신하고 질문했다.

난 퀴어한 쾌락, 혼란과 헷갈림을 유발하는 행동을 좋아하지만 내가 정말 살피고 싶은 건, 그런 행동에서 언뜻언뜻, 때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고단함이다. 내 몸으로 인해 발생하는 혼란과 논쟁이 너무 좋지만, 그래서 그걸 즐기지만, 즐기는 만큼이나 고단하다. 난 내 몸이 미학적으론 최악이라고 판단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싫어하진 않는다. 그저 늘 짜증날 뿐이다. 내 몸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게 많은 불편을 초래하고, 이런 몸이자 이런 몸에서 살아가는 삶은 늘 고단하다. 그래서 난 퀴어의 쾌락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고단함에 더 끌린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퀴어/트랜스젠더로서의 어려움, 힘든 삶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언론에서 기사로 팔기 위해 요청하는 그런 고통의 전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쾌락과 함께 오는 고단함이 나의 관심이다. 그래서 더 어렵다. 때로 난 나의 고단함만으로 버거운데 종종 타인의 고단함도 살피다보면 타인의 고단함을 나의 수준으로 수렴하거나, 타인의 고단함이 피곤하여 도망친다. 그래서 또 한 번, 고단하다.

어느날 의료적 조치를 취한다면 나는 덜 고단할까? 글쎄… 내가 만약 의료적 조치를 시작한다면, 그저 괴물이 되기 위해서다. 지금보다 더, 사람들이 종잡을 수 없는 그런 몸으로 바꾸기 위해 호르몬 투여를 시작할 것이다. 지금은 이런 판단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헷갈려하는 반응에 깔깔 웃으면서 더 많은 고단함을 느끼리라. 내 삶은 더 피곤해지리라.

나는 어떻게 살까? 내 몸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그리고 내가 mtf라고 추정한 이는 어떤 삶을 살까? 내가 행여 의료적조치를 취한다고 해도, 선택한 배경이 다르니 끝내 서로의 고단함을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는 어떻게 살아갈까?

에잇.. (뜬금없이) 올해는 연애를 할까보다. 하지만… 연애란 게 하겠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닌 법. 😛

2010 KSCRC 겨울 아카데미

KSCRC(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에서 작년에 이어 2010 아카데미를 연다고 합니다. 재밌는 주제가 많아요! 많은 분들의 관심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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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KSCRC 겨울 아카데미

성적소수자 인권활동가들과 관련 연구자, 그리고 인권과 퀴어 이론 등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을 위한 “생각나눔, 지식나눔, 배움나눔”의 장 – <2010 겨울 KSCRC 아카데미>가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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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1] 퀴어이론입문 : 차이와 정체성
강사 _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이 강의는 퀴어 이론과 운동이 도전하고 사용하고 있는 몇몇 차이와 정체성에 대한 핵심개념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입문강좌이다. 이 강좌에서는 동성애를 정상적인 정신병으로 명명한 프로이드, 정상과 비정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존재한다고 말한 푸코, 강제적 이성애라는 개념을 통해 문제를 동성애가 아니라 이성애로 옮겨간 게일 루빈, 젠더 이론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욕망의 새로운 문법을 시도한 세즈윅 등의 핵심 개념을 같이 읽어보고 토론하고자 한다.

총 4강 : 1월 넷째 주 화요일 ~ 금요일, 저녁 7시~9시, 수강료 5만 5천원, 정원 12명

1강_ 도착 (1월 26일/ 화)
2강_ 비정상 (1월 27일/ 수)
3강_ 강제적 이성애 (1월 28일/ 목)
4강_ 동성사회성 (1월 29일/ 금)

[강좌2] 십대 이반 워크숍 : 페미니즘은 나의 힘 2
진행자_타리 (진보신당 정책연구위원, 성정치위원회)
작년에 이어 2탄으로 준비되는 10대들을 위한 페미니즘 워크샵. 지금까지 페미니즘 없이 잘 살아왔다고? 아니, 아직 맛보지 못한 것이 있어. 이번엔 10대 활동가들을 위한 워크샵으로 더욱 진귀한 상차림을 준비했으니 와서 한번 맛을 보라구. 바로 이 맛이야!

총 4회, 1월 23일부터 2월 20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1시~3시, 수강료 3만원 (* 이 강좌는 22세 이하만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정원 8명

1강- 우리가 지금 페미니즘을 시작하는 이유 (1월 23일/ 토)
2강- Her스토리로 본 세상의 특별함 (1월 30일/ 토)
3강- 우리의 고민을 해결하는 여성주의적 상담 (2월 6일/ 토)
4강- 우리의 고민을 스스로 해결하는 또래 상담 (2월 20일/ 토)

[강좌3] 논쟁과 이슈 : 성적자기결정권
지금까지 한국에서 성적자기결정권은 성폭력에 도전하는데 유용한 도구였다. 하지만 혼인빙자간음죄와 간통죄가 위헌논의에 휘말리면서 보수주의자들 역시 아무렇지 않게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을 전유해가는 상황이다. 자기결정이라는 형식 아래 개인의 무한책임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이 아직도 유효한 것일까 하는 고민마저 들 정도이다. 왜 이렇게 성적자기결정권 논의가 미궁에 빠진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이번 강좌에서는 기존의 성적자기결정권 논의의 폭을 퀴어의 눈으로 확장시키는 작업을 시도한다. 이는 새로운 성적자기결정권 연구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총 6강 : 2월 매주 화요일, 목요일 저녁 7시~9시, 수강료 7만 5천원, 정원 30명

1강_ 성적자기결정권, 미궁에 빠지다 (2월 9일/ 화)
권김현영(여성주의 연구/활동가)

2강_ LGBT들의 성매매, 성적자기결정권의 정위 혹은 탈구 (2월 11일/ 목)
김주희(막달레나의집 현장상담센터 활동가)

3강_ 의료권력과 성적자기결정권: 땜질하는 몸, 그래서 자연스러운 몸 (2월 16일/ 화)
루인 (트랜스젠더 활동가)

4강_청소년과 성적자기결정권 : 아무도 허락할 수 없는 섹슈얼리티 (2월 18일 / 목)
5명의 10대 LGBT와 함께.

5강_ 동성결혼과 성적자기결정권 : 필요성과 불가능성 사이의 권리 (2월 23일/ 화)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

6강_ 안전한 섹스는 ‘자유’인가 ‘권리인가’? (2월 25일/ 목)
엄기호(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 활동가/ ‘닥쳐라 세계화’ 저자)

[강좌4] 흐름읽기 : 퀴어 미학
점점 더 막장 혹은 불륜, 엽기로 치달아가고 있는 주류 미디어는 이제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는 아예 입에 담지도 않는다. 하지만 어쩌면 정말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의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 강좌에서는 공연예술, 미술, 음악, 영화 등 각 장르별로 아름다움의 기준과 정의를 바꾸고 새로운 숭배자들을 만들어내는 강력한 포스를 가진 퀴어 문화 작업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었던 퀴어들의 필수교양강좌!

총 4강 : 2월 매주 금요일, 저녁 7시~9시, 수강료 5만 5천원, 정원 30명

1강_ 무대위의 성별 유희와 젠더퀴어들: 미국 드랙킹(drag king) 공연 미학 (2월 5일/ 금)
지혜(공연학/문화연구)

2강_ 이상한queer 미술, 즐거운gay 감상 (2월 12일/ 금)
정은영 (미술작가)

3강_ 대중음악에서의 ‘퀴어’한 미학 (2월 19일/ 금)
최민우: (대중음악웹진 ‘웨이브’ 편집장)

4강_ 게이가 삼킨 영화, 영화가 빚은 게이 (2월 26일/ 금)
김조광수 (영화감독, 청년필름 대표)

강좌신청방법: 원하시는 강좌를 선택하신 후 수강료를 입금하시고 아카데미 홈페이지/ 이메일/ 전화로 입금 확인과 함께 신청을 해주시면 됩니다.
신청 및 문의처: kscrcqueer@naver.com / 0505-896-8080
강좌안내홈페이지: http://kscrc.org/academy

입금계좌: 국민은행 477401-01-043885
우리은행 1006-301-221561
(예금주: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강좌신청마감: 각 강좌 전일까지 가능합니다.
강좌장소: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서교동 475-15번지 영화빌딩 6층) / 강좌 3과 강좌 4는 강의장소 변경될 수 있습니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http://kscrc.org)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오픈!!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이 홈페이지를 오픈했습니다. 이제 본격 시작입니다 … 만;;;

암튼 홍보전단지에 적힌 내용을 살짝 옮기자면

퀴어락은 성적소수자와 관련된 국내외의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인 기록물을 수집, 정리, 보존하고 오프라인과 온라인상으로 누구나 검색, 열람, 이용, 교류하는 것을 꿈꾸는 비영리 공공 아카이브입니다.

아카이브의 사전적 의미는 “특정 자료를 모아 둔 정보 창고”입니다.
아카이브가 도서관이나 박물관과 다른 점은 모든 책, 역사적 유물만을 모아 전시하거나 열람하게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특정한 목적의식을 갖고 관련된 기록물들을 모은다는 점입니다.
이런 이유로 최근 사진 아카이브, 소리 아카이브, 민속 아카이브 등이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처음 아카이브는 ‘저장 창고’의 의미였을지 모르지만, 퀴어 아카이브는 단순한 기록보관소가 아니라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모으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입니다. 한국의 퀴어들의 자긍심과 즐거움을 위해 움직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찾고, 담고 그리고 느끼는 공간으로서의 아카이브가 될 것입니다.

퀴어락은 3개년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2009년은 도서, 문서 및 영상물 DB구축, 홈페이지 오픈, 2010년에는 사진 및 박물류로 범위를 확장하고 기증 등 자료 수집에 주력할 것입니다. 2011년에는 음원, 웹아카이빙, 기존 기록물의 디지타이징을 비롯 퀴어락 구축 과정을 담은 백서를 발간하여 아카이브 구축에서 활용까지의 모든 정보가 공유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KSCRC는 이런 본격적인 아카이브 개발을 위해 2002년부터 기초다지기를 해왔고,
드디어 2009년 12월 21일 공식 오픈과 함께 문을 활짝 열고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퀴어락은?
한국퀴어아카이브(Korea Queer Archive)의 애칭!! 이는 Queer+Archive를 조합한 ‘Queerarch’를 발음대로 읽은 것이기도 하지만, 한자의 ‘즐거울 樂’이란 의미를 담아 퀴어의 즐거움이 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홈페이지 주소는 www.queerarchive.org 입니다.
많은 방문과 활용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내용 기록에서 오탈자를 비롯한 잘못된 부분도 적잖을 것입니다. 발견하시는대로 알려주시면 매우매우매우 감사!!!
(메일 kscrcqueer@naver.com으로 보내주시면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