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활동가가 주는 든든함

대략 25년의 시간을 한 세대라고 부른다. 20-25년 정도의 시간 사이에 있은 일은 같은 세대의 경험으로 불러도 무방하리라. 하지만 개개인은 세대 구분 방식으로 시간을 인식하지 않는다. 5년 혹은 10년만 지나도 상당히 다른 세대로 느낄 때가 많다. 마치 다른 세대에 일어난 일인 것처럼. 혹은 아득한 과거의 일처럼.
아득한 과거의 일처럼 느끼는 건, 당연히 나의 감각이다. 2006년에야 퀴어 활동, 트랜스젠더 운동에 참여한 내게 그 전의 일은 먼 과거 같다. 내가 참여하지 않았던 시기의 일은 역사책 속의 일 같다. 실제 나는 2006년 이전의 일을 다양한 기록물과 구술을 통해서만 알 수 있으니, 1920년대 일과 2000년의 일은 내게 그리 다르지 않은 과거다. 2000년은 내가 살아 있었던 시기라고 해도 그렇다.그래서 한국 LGBT 인권운동이 이제 20년이라면 여전히 한 세대의 일이지만 난 그것이 두 개의 다른 세대 경험 같다. 트랜스젠더 운동 맥락에선 더욱 그러하다. 인권운동단체가 본격 등장했다는 점에서 지렁이 등장을 기준점으로 삼는다면 2006년을 세대가 나뉘는 경험의 분기점이라고 부를 수도 있으리라. 지렁이 등장 이전부터 활동한 트랜스젠더 개개인 혹은 친목 모임 성격의 공동체 경험을 이전 세대라고 부른다면(1세대는 아니다) 지렁이 이후 트랜스젠더 활동을 모색하며 등장한 이들을 새로운 세대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지렁이보다 하리수 씨 등장이 트랜스젠더에게 더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하리수 씨 등장 이전과 이후를 기준으로 묶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만, 내 감각에선 2006년이 기준일 수밖에 없다. (이 말은 내가 2007년 차별금지법 관련 운동을 계기라 활동에 참여했다면 2007년을 기준으로 구분했을 거란 뜻이다. 그만큼 자의적 구분이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방식의 기준을 장황하게 변명(!)하는 이유는, 나도 별로 동의하지 않는 세대론을 구질구질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김비 씨의 존재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김비 씨와 나는 동시대에 트랜스젠더 인권운동을 하고 있다. 김비 씨는 현재 세대의 초기부터 활동했고 나는 그 중간에 참여한 식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김비 씨는 내게 대선배란 느낌이 강하다. 현역이지만 전설의 슈퍼스타 같은 느낌이랄까. 한 세대 전부터 활동한 존재 같은 느낌이랄까. 지렁이 이후 세대가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선배로, 조언자로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강의를 들을 때면 동시대 사람이란 느낌이 드는 동시에 이전 세대의 경험과 지혜를 현재 세대에게 전해주고 있다고 느낀다. (이렇게 얘기하면 김비 씨는 싫어하실 텐데..;;;) 나이 차이의 문제가 아니다. 나와 비슷한 연배여도 2000년대 초반 혹은 1990년대 후반부터 활동에 참여했느냐 2006년 즈음부터 활동에 참여했느냐에 따라 묘하게 다른 느낌을 받는다는 점에서(내가 글로 배운 사건을 현장에서 배웠으냐 나처럼 글로 배웠느냐의 차이) 세대 이슈라면 세대 이슈일 수 있다. 물론 김비 씨와 나는 동시대에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세대다. 그럼에도 김비 씨를 앞선 세대라고 느낀다면  나보다 앞서 활동을 시작했고 여전히 힘차게 살아있어서가 더 정확한 이유겠지.
이런저런 부연을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요일에 강의를 들으며 받은 든든함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운동에서 이런 든든한 선배가 있다는 것, 선배로서 역할을 성찰하며 얘기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하리수 씨도 분명 소중하고 든든한 존재지만 하리수 씨 한 명 뿐이었다면 슬펐으리라. 각자 다른 식으로 트랜스젠더 이슈를 사유하는 선배가, 그것도 셀러브리티가 두 명이나 있다는 것은 행운인지도 모른다. 물론 트랜스젠더 이슈의 모든 지점에서 나와 김비 씨가 의견 일치를 이루진 않으리라. 그럼에도 중요한 발언을 하는 선배가 있다는 건 꼭 내가 지지 받는 느낌이다. 그래서 고맙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그냥 묵묵히 가는 선배가 있어서 안심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난 얼마나 운이 좋은가!
+
강의에서 가장 좋았던 구절 중 하나는 “나의 성별과 관련된 무언가를 인식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볼 때, 내게 성별은 없었다. 남자 옷을 입고 남자처럼 취급되었지만, 그것에 거부감이나 불편함도 없었으며 반대 성, 즉 여성 복장이나 취향에 대한 집착도 없었다”였다.

[발표원고] 여성 범주 논쟁의 등장과 초기 논의: 트랜스젠더 이론과 페미니즘 논의를 중심으로

어제 학과 콜로키움에서 발표를 했습니다. 기말페이퍼를 정리해서 발표를 하는 관례에 따라 작년에 공개한 “‘여성’ 범주의 구성: 여성 범주를 둘러싼 논쟁을 중심으로”를 수정하고 재편집하여 발표했습니다. 해당 원고는 writing 메뉴에 올렸고요…
글 기획이 바뀌니 서론과 글 중간중간에 내용을 추가하거나 수정했고 아래는 새롭게 추가한 내용 중 일부입니다. 지난 번에 공개한 글에, 아래의 내용이 들어갔어야 논의가 좀 더 선명했을텐데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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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1.금. 14:00- 학과 겨울 콜로키움 발표문
여성 범주 논쟁의 등장과 초기 논의: 트랜스젠더 이론과 페미니즘 논의를 중심으로
-루인(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 runtoruin@gmail.com)
섹스-젠더 개념을 재해석한 이론적 논의를 살피는데 있어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를 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버틀러는 섹스-젠더 구분 공식을 재검토한 후 섹스를 생물학적 불변으로 해석함 자체가 문화적 해석이며, 젠더를 이분법으로 사유하고 섹스와 젠더를 필연적 관계로 해석함은 일종의 젠더 본질주의라고 지적했다(Butler 1986; 1987; 1990; 1999). 1980년대 후반 젠더를 불안정한[trouble] 범주로 재개념화하며 등장한 버틀러의 섹스-젠더 논의는 1990년대 젠더 논의에 중요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버틀러 논의에 비판적인 비비안 나마스테(Viviane Namaste) 역시 이 지점에 동의한다. 나마스테는 버틀러를 참조하지 않으면 섹스-젠더 논의 자체가 불충분하다는 인식(11)이 만연함을 지적한다. 하지만 버틀러만 혹은 버틀러가 처음으로 섹스와 젠더의 관계를 재해석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버틀러가 논의를 막 전개할 당시 다른 페미니스트 역시 섹스와 젠더를 재개념화하고자 했다. 이를 테면 조안 스콧(Joan W. Scott)의 논문 「젠더: 역사 분석에 있어 유용한 범주」나 테레사 드 로레티스(Teresa de Lauretis)의 책 『젠더의 기술』과 같은 논의는 젠더를 섹스에 부착된 것이 아닌 범주로 이해하고자 한다. 비록 한 명의 탁월한 이론가가 등장하면서 기존 이론 질서가 뒤바뀔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단 한 명의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버틀러는 임계점을 넘어서려는 바로 그 시기에 등장했다. 섹스-젠더 구분 공식에 문제제기한 긴 역사적 맥락에 버틀러가 있고, 이 맥락에서 버틀러의 논의가 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수용될 수 있었다. 나는 바로 이러한 이론적 계보의 극히 일부를 정리하고자 한다. 새로운 논의를 끌어내기보다 기존 논의를 재배치하며 버틀러에게 과도하게 비중이 쏠려 있는 논의 지형을 재점검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다.
하지만 기존 논의를 재검토하는 작업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첫째, 앞서 훑었듯 미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와 성과학이 섹스-젠더 개념에 끼친 영향을 먼저 살펴야 한다. 간단하게 그리고 과감하게 말해서 섹스-젠더 개념은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낸 것에 따른 성과다. 트랜스젠더, 의사, 그리고 성과학자의 협업은 섹스와 젠더를 구분하고 사유할 토대를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섹스-젠더 개념을 발달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소 과도한 평가일 수도 있지만, 나마스테의 논의를 빌리자면 1990년대 이후 영미 페미니즘은 mtf/트랜스여성에 직접적 빚을 지고 있고 트랜스젠더를 활용해서 젠더 이론을 발달시켰다(12). 섹스-젠더 개념 논의에서 트랜스젠더의 위치를 점검하는 작업은 최우선 작업이다. 그럼에도 19세기 후반부터 진행된 성과학 및 해부학 논의를 재평가해야 하고, 20세기 초반 등장한 성전환 기술 및 트랜스젠더 공동체의 역할을 모두 살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이것은 별도의 방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둘째, (비트랜스)페미니즘 내부에서의 역동과 논쟁을 섬세하게 검토해야 한다. 앞서 오클리를 언급했지만 제 2 물결 페미니즘의 등장은 페미니즘 내부의 섹스-젠더 개념의 발달과 궤를 함께 한다. 하지만 오클리 방식의 논의가 당대의 유일한 주장이 아니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게일 러빈(Gayle Rubin)처럼 젠더를 위계 권력 장치로 이해하며 논의를 전개한 이들 역시 존재했다. 이들은 섹스-젠더를 구분 공식보다는 권력 배치의 이슈로 이해했다(이것은 명백히 푸코와 무관했지만 푸코와 유사한 사유체계다). 물론 러빈은 섹스를 섹슈얼리티와 사실상 등치했는데, 1975년 논문에서 섹스로 표기했던 것을 이후 재출간하며 섹슈얼리티로 수정했다. 아울러 1984년 논문에서 러빈은 트랜스섹슈얼을 섹슈얼리티 위계에 배치하며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분명하게 구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 논의는 섹스-젠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즉 누가 여성이며 어떤 경험이 여성의 경험인가를 질문하는데 중요한 토대를 마련한다. 이 이슈가 표면화되었던 사건이, 흔히 성전쟁[sex war]이라고 불리는 1982년 버나드 학술대회다. 다양한 성적 실천을 옹호하는 진영과 검열을 지지하는 진영 간 논쟁은 페미니즘의 논의를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어떤 경험이 여성의 경험인지, 그리하여 누가 여성인지를 논하는 자리였다. 뿐만 아니라 이 자리는 트랜스젠더 이론과 퀴어 이론이 본격 등장하고, 섹스-젠더 개념을 재검토하는 자리였다(Stryker, 129).

트랜스젠더 삶의 조각보 기획단으로 함께 하실 분은 신청해주세요!!

저도 어떤 형식으로건 참여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정말 오랜 만에 트랜스젠더 이슈에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잖아요. 🙂
원문 출처: http://goo.gl/tPNsm
트랜스젠더 삶의 조각보 기획단으로 함께 하실 분은 신청해주세요!!    
down1  조각보기획단지원신청서.hwp (11.5 KB), Down : 20
2013-01-03 17:57:02 , Friday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는 앞으로 3년간 트랜스젠더 인권지지 기반 구축 프로젝트에 집중하려 합니다. 이를 위해 <아름다운재단 변화의 시나리오 기금>에 공모해 마침내 ^^ 3년 연속 지원 사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본 프로젝트의 이름은  ” 트랜스젠더 삶의 조각보 만들기”입니다.
이 사업은 “트랜스젠더의 복잡다단한 삶을 구체화하고, 편견과 혐오에 대한 다각도의 실태 조사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인식 전환과 지지 그룹 형성을 꾀해 트랜스젠더 인권 운동의 기반을 다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작은 천조각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조각보가 되듯이 우리 사회의 파편화되어 있는 트랜스젠더의 삶의 다양한 조각들,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 조각들, 채 다 드러나지 못한 트랜스젠더의 인권 지지와 연대의 조각들을 하나로 이어보고자 합니다. 편견과 혐오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실태조사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편견과 혐오의 확대 재생산을 막으면서 넓고 단단한 지지 기반위에서 자연스럽게 트랜스젠더 인권운동의 조직화와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3년동안 찬찬히 다져나갈 것입니다.  
본 프로젝트에 기획단으로 함께 활동하고 싶으신 분들은  1월 15일까지   아래  지원신청서를 다운 받으셔서 간단히 작성하신 후  jogakbo1315@naver.com 으로 메일 보내주시면 됩니다.
기획단은  현재 학생이시든 직장인이시든 혹은 다른 일을 준비하고 계시는 상태이시든 상관없으며 연령, 성별정체성, 성정체성 모두 제한은 없습니다.  
다만,  한 달에 1회~2회 정도의  회의/교육/워크샵이 있으므로 이에 참석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주로 주말 혹은 평일 저녁시간때 열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회의 참석 외  인터뷰 진행, 설문조사, 자료조사,홈페이지 기획,  등의 활동이 있습니다. 이 활동은 자신이 원하는 팀을 선택하실 수 있으며, 이런 각 활동은  자신의 생활에 맞추어 시간이나 장소를 조정하실 수 있습니다.
1월 20일에 기획단 선정 결과를 개별적으로 통보해드립니다
그리고 기획단 오리엔테이션이 1월 26일과 27일 양일간 진행됩니다. 이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하셔야 하므로 이때 시간이 나시는지도 함께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2월 6일과 2월 21일에  내부교육 2회, 그리고 2월 23일과 24일에 프로젝트 실무를 파악하기위한 워크샵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3월부터 실제 각 활동이 시작됩니다.
이런 전체 일정을 고려하신 후 지원 신청을 해주시기 부탁드리며, 혹 의논이나 질문이 있으시면 편하게 메일이나 전화 (02-743-8081)로  연락주세요. ^^
감사합니다.
많은 지원 신청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