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원고] 여성 범주 논쟁의 등장과 초기 논의: 트랜스젠더 이론과 페미니즘 논의를 중심으로

어제 학과 콜로키움에서 발표를 했습니다. 기말페이퍼를 정리해서 발표를 하는 관례에 따라 작년에 공개한 “‘여성’ 범주의 구성: 여성 범주를 둘러싼 논쟁을 중심으로”를 수정하고 재편집하여 발표했습니다. 해당 원고는 writing 메뉴에 올렸고요…
글 기획이 바뀌니 서론과 글 중간중간에 내용을 추가하거나 수정했고 아래는 새롭게 추가한 내용 중 일부입니다. 지난 번에 공개한 글에, 아래의 내용이 들어갔어야 논의가 좀 더 선명했을텐데 싶기도 합니다.
===
2013.01.11.금. 14:00- 학과 겨울 콜로키움 발표문
여성 범주 논쟁의 등장과 초기 논의: 트랜스젠더 이론과 페미니즘 논의를 중심으로
-루인(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 runtoruin@gmail.com)
섹스-젠더 개념을 재해석한 이론적 논의를 살피는데 있어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를 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버틀러는 섹스-젠더 구분 공식을 재검토한 후 섹스를 생물학적 불변으로 해석함 자체가 문화적 해석이며, 젠더를 이분법으로 사유하고 섹스와 젠더를 필연적 관계로 해석함은 일종의 젠더 본질주의라고 지적했다(Butler 1986; 1987; 1990; 1999). 1980년대 후반 젠더를 불안정한[trouble] 범주로 재개념화하며 등장한 버틀러의 섹스-젠더 논의는 1990년대 젠더 논의에 중요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버틀러 논의에 비판적인 비비안 나마스테(Viviane Namaste) 역시 이 지점에 동의한다. 나마스테는 버틀러를 참조하지 않으면 섹스-젠더 논의 자체가 불충분하다는 인식(11)이 만연함을 지적한다. 하지만 버틀러만 혹은 버틀러가 처음으로 섹스와 젠더의 관계를 재해석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버틀러가 논의를 막 전개할 당시 다른 페미니스트 역시 섹스와 젠더를 재개념화하고자 했다. 이를 테면 조안 스콧(Joan W. Scott)의 논문 「젠더: 역사 분석에 있어 유용한 범주」나 테레사 드 로레티스(Teresa de Lauretis)의 책 『젠더의 기술』과 같은 논의는 젠더를 섹스에 부착된 것이 아닌 범주로 이해하고자 한다. 비록 한 명의 탁월한 이론가가 등장하면서 기존 이론 질서가 뒤바뀔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단 한 명의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버틀러는 임계점을 넘어서려는 바로 그 시기에 등장했다. 섹스-젠더 구분 공식에 문제제기한 긴 역사적 맥락에 버틀러가 있고, 이 맥락에서 버틀러의 논의가 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수용될 수 있었다. 나는 바로 이러한 이론적 계보의 극히 일부를 정리하고자 한다. 새로운 논의를 끌어내기보다 기존 논의를 재배치하며 버틀러에게 과도하게 비중이 쏠려 있는 논의 지형을 재점검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다.
하지만 기존 논의를 재검토하는 작업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첫째, 앞서 훑었듯 미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와 성과학이 섹스-젠더 개념에 끼친 영향을 먼저 살펴야 한다. 간단하게 그리고 과감하게 말해서 섹스-젠더 개념은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낸 것에 따른 성과다. 트랜스젠더, 의사, 그리고 성과학자의 협업은 섹스와 젠더를 구분하고 사유할 토대를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섹스-젠더 개념을 발달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소 과도한 평가일 수도 있지만, 나마스테의 논의를 빌리자면 1990년대 이후 영미 페미니즘은 mtf/트랜스여성에 직접적 빚을 지고 있고 트랜스젠더를 활용해서 젠더 이론을 발달시켰다(12). 섹스-젠더 개념 논의에서 트랜스젠더의 위치를 점검하는 작업은 최우선 작업이다. 그럼에도 19세기 후반부터 진행된 성과학 및 해부학 논의를 재평가해야 하고, 20세기 초반 등장한 성전환 기술 및 트랜스젠더 공동체의 역할을 모두 살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이것은 별도의 방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둘째, (비트랜스)페미니즘 내부에서의 역동과 논쟁을 섬세하게 검토해야 한다. 앞서 오클리를 언급했지만 제 2 물결 페미니즘의 등장은 페미니즘 내부의 섹스-젠더 개념의 발달과 궤를 함께 한다. 하지만 오클리 방식의 논의가 당대의 유일한 주장이 아니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게일 러빈(Gayle Rubin)처럼 젠더를 위계 권력 장치로 이해하며 논의를 전개한 이들 역시 존재했다. 이들은 섹스-젠더를 구분 공식보다는 권력 배치의 이슈로 이해했다(이것은 명백히 푸코와 무관했지만 푸코와 유사한 사유체계다). 물론 러빈은 섹스를 섹슈얼리티와 사실상 등치했는데, 1975년 논문에서 섹스로 표기했던 것을 이후 재출간하며 섹슈얼리티로 수정했다. 아울러 1984년 논문에서 러빈은 트랜스섹슈얼을 섹슈얼리티 위계에 배치하며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분명하게 구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 논의는 섹스-젠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즉 누가 여성이며 어떤 경험이 여성의 경험인가를 질문하는데 중요한 토대를 마련한다. 이 이슈가 표면화되었던 사건이, 흔히 성전쟁[sex war]이라고 불리는 1982년 버나드 학술대회다. 다양한 성적 실천을 옹호하는 진영과 검열을 지지하는 진영 간 논쟁은 페미니즘의 논의를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어떤 경험이 여성의 경험인지, 그리하여 누가 여성인지를 논하는 자리였다. 뿐만 아니라 이 자리는 트랜스젠더 이론과 퀴어 이론이 본격 등장하고, 섹스-젠더 개념을 재검토하는 자리였다(Stryker, 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