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겨울의 길고양이, 트랜스젠더 강좌, 권력을 활용하기

왜 가끔은 내 안의 무수히 많은 언어들이 다 어디갔나, 싶을 때가 있죠. 다들 경험하셨겠지만요. 무언가를 쓰고 싶지만, 무엇하나 주절거리기에 부족한 내용들이라 무언가를 쓰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고민들의 조각들을 늘어놓는 수밖에 ….

전 요즘 길고양이들은 겨울을 어떻게 보내나, 하는 고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추운 겨울, 길고양이들에게 겨울은 어떤 풍경일까요? 집에서 사는 것이 익숙한 저에겐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죠. 찬 바람이 쌩쌩 불고 때로 겨울비와 눈이 내리는 밤, 고양이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 걸까요?

혹은 트랜스젠더 강의는 어떻게 해야 ‘쉬울까’를 고민합니다. 사실 전 트랜스젠더 특강 가서 트랜스젠더에 관한 얘기는 거의 안 합니다. 사람들은 트랜스젠더의 어려움을 듣고 싶어하지만, 저는 젠더 경험에 초점을 맞추죠. 그리고 비트랜스의 젠더경험과 트랜스젠더의 젠더경험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얘기를 하려고 애씁니다. 아무래도 초보 강사니 여러 강의안을 만드는데요. 최근 ‘딱 학부생용이다’ 싶은 강의안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 정도 그 강의안을 바탕으로 강의를 했는데요. 최근 특강을 들으신 선생님(저를 특강으로 초대한 선생님이기도 하죠)께서 말하길, 학부생이 듣기엔 너무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헉. ㅜ_ㅜ 그래서 혹시나 하고 “그럼 대학원생이 듣기엔 어떨까요?”라고 물었더니, 대학원생(아마도 여성학/젠더이론 전공일) 정도면 무난하겠다고 답하셨죠. 우허엉. ㅠ_ㅠ 며칠 전 특강의 수강생들의 감상문을 받았는데요. 어렵다는 말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너무 많은 내용을 말해서 초점을 모르겠다는 말도 있고요. 이건 모두 중요한 지적입니다. 가장 정확한 지적은 강사님은 강의를 많이 안 하신 듯해요, 란 논평이었습니다. 매우 고마운 논평이죠. 초보 배우는 무대에서 발걸음부터 어색하다고 했나요? 저런 논평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겁니다. 아무려나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트랜스젠더의 경험과 비트랜스의 경험을 분리하지 않는 강좌를 쉽게 하기. 이 고민을 하며, 저는 ㅎ님을 스토킹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갈 수 있는 시간대면 ㅎ님 강좌를 따라 다니기로 한 거죠. 하하. 스토킹하겠다고 말했는데 특강 일정을 알려주는 경우도 스토킹인지는 애매하지만…. 암튼 열심히 배워야죠. 🙂

다른 한편, 자신의 권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이를테면 제가 트랜스젠더 이슈로 특강을 할 수 있는 건, 제가 가진 어떤 권력 때문이죠. 한국에서 트랜스젠더는 매우 많고, 트랜스젠더 연구를 전공한 사람은 저 외에도 여럿 있고, 트랜스젠더 이슈로 특강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여럿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저보다 강의를 더 잘하고, 글도 더 잘 씁니다. 그럼에도 제가 한다는 건 제가 가진 어떤 특권적 자원과 떼려야 뗄 수 없겠죠. 이것이 제가 가진 권력이라면, 어쨌든 이것이 권력이라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 해야 겠죠. 한땐 권력을 전면 부정한 시기도 있습니다. 권력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이해한 시기도 있고요. 하지만 권력이 맥락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저에게 활용할 만한 권력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적절히 활용할 것인가? 즉, 미약하나마 어떤 권력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힘으로 전환할 것인가, 이것이 관건입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요.

암튼 내일은 극장에라도 갈까 봐요. 선택할 만한 영화가 없어 고민이지만요. 그리고 무척 피곤해서 늦은 밤이지만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시지 않을 수 없는 시간입니다.

주절주절: 의학-기술-몸-젠더, 글쓰기 등등

할 말이 있었는데, 꽤나 중요한 말이었는데 까먹었다. 악! ㅜ_ㅜ

01
오랜 만에 특강을 하기로 해서, 준비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 이번 강의 내용이 다음주 말까지 마감해야 하는 원고의 바탕이기도 해서 더 그렇다. 강의를 듣는 사람은 대학생이고 원고가 실릴 잡지를 읽는 사람은 대학생부터 좀 배웠고 이론 좀 읽었다는 사람들이다. 물론 트랜스젠더 이슈를 강의한다는 건 독자가 누구건 상관없다. 다들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의 욕심과 독자/청자의 기대 사이에서 수위를 조율하는 건 늘 쉽지 않다. 10년의 내공이 쌓인 것도 아니고, 매우 어설픈 지식에 어정쩡한 체계를 갖춘 나로서는 더 어렵다. 말하고 쓰는 나도, 듣고 읽는 이들도 모두 난감한 상황일 때도 많다. 물론 모든 빼어난 강사들도 이런 과정을 거쳤겠지? 그들도 어설펐던 시절이 있었을 거라고 믿으며 위로하지만, 정작 그 자리에 있었던 청중들은 어쩌란 말이냐! 흑흑.

02
몇 주 전, 한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다가 한국어로 쓴 논문 중에서, 섹스 혹은 생물학적 성이란 것이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었음을 설명하는 논문이 매우 적다는 얘길 듣고 놀랐다. 두꺼운 책이 있긴 하고(『섹스의 역사』, 책은 두껍지만 서론만 읽어도 충분하다;;;) 여성학 교제라고 불리는 책들마다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생물학적인 성, 의료기술을 통해 구성되는 몸과 젠더의 관계를 집중해서 다루는 논문은 별로 없다고 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충분히 쉬우면서도 사람들에게 권할 만한 논문이 없다고 한다. 의학의 사회문화사를 다룬 괜찮은 책은 젠더나 섹슈얼리티란 범주를 간과하는 식이다.

사실 이번에 쓰고 있는 글의 주제가 대충 이런 거다. 근데 잘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의학-기술-몸-젠더란 주제어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주제다. 그래서 관련 글을 읽을 때마다 깨달음의 황홀을 느낀다. 흐흐. 하지만 이를 글로 쓰는 건 전혀 다른 문제. 흑.

03
추석이라 부산에 갔다 왔다. 엄마 님과 얘기를 나누다 재밌는 순간이 있었다. 엄마 님은 언제나 내가 의사가 되길 바랐다. 이유는 간단하다. 엄마 님이 워낙 아픈 곳이 많다보니 의사 자식 덕을 보고 싶었던 것. 하지만 난 이과에선 수학을 전공했고, 실험보다는 인문학 서적을 좋아하는 인간이다. 아이러니는 여기서 발생했다. 위에서도 적었듯, 내가 관심을 가지고 읽고 있는 책 중엔 의학사상사나 의학 발달과 관련 있는 책들이 여럿 있다. 의사는 안 되었지만, 의학이 몸을 통제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공부하는 사람이 될 것 같긴 하다. 크크크.

아이러니는 하나 더. 부모님은 내가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종에 취직하길 바랐다. 평생 돈문제로 고생했으니 충분히 가질 수 있는 바람이다. 하지만 나는 프리터처럼 평생 비정규직으로, 불안정한 직종에서 살기를 바란다. 근데 또 내가 흥미롭게 읽는 주제 중 하나는 국가가 국민/시민을 관리, 통제하는 방식이다. 뭐, 이런 식이다.

04
두근거림이 결국 나를 구원할 거야!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