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Alice doesn’t

[앨리스는 ~하지 않는다]Alice Doesn’t의 서문을 읽을 필요가 있었다. 책을 다 읽으면 좋겠지만 당장 그럴 여건은 아니니, 일단 서문 정도만 읽으려고. 근데 루이스 캐롤의 [앨리스]를 읽지 않으면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는 것이다!!! ㅠ_ㅠ

그래서 일전에 마틴 가드너의 주석이 달린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읽었다. 근데, 오오, 진작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재밌다. 재기발랄한 말장난(언어유희라고도 말하는;;)과 치밀한 구성. 루이스 캐롤을 좋아하고 때로 열광하는 이들이 있다는데,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정말이지 한 구절, 한 구절을 모두 분석해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가드너 역시, 상당한 양의 주석을 달았는데, 이런 주석은 읽지 않아도 무방하고 읽어도 재밌다. 대체로 이런 주석은 내용을 상상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어 피하는 것이 좋기에 반드시 읽을 필요는 없다. 나 역시 다 읽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떤 주석은 너무 재밌다.

일테면 앨리스가 토끼굴에 들어간 후,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며 “어머나, 점점 더 뒤죽박죽이야! 내가 정말 유식한지 알아봐야 되겠어. 어디 보자. 4 곱하기 5는 12이고, 4 곱하기 6은 13, 그리고 4 곱하기 7은…. 안 돼! 이런 식으로 가면 20까지는 절대 도달하지 못할 거야!”(55쪽)란 말을 한다. 이런 계산 자체도 재밌지만, 주석을 보면 더 재밌다.

왜 앨리스가 20까지 도달할 수가 없는지 그 이유에 대한 가장 간단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전통적으로 영국의 곱셈표는 12까지 나온다. 그러므로 만약 앨리스식의 엉터리 곱셈을 계속하다 보면, 4×5는 12, 4×6은 13, 4×7은 14, …가 되고, 4×12(앨리스가 외울 수 있는 최고의 숫자)는 19가 되어서 결국 20에 도달할 수가 없게 된다.
A. L. 테일러는 [하얀 기사]라는 책에서 흥미롭긴 하지만 훨씬 복잡한 이론을 전재하고 있다. 18진법을 사용하는 숫자 체계에서는 4×5가 실제로 12이며, 21진법을 사용하는 숫자 체계에서는 4×6이 13이라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계속 진행해 보면, 언제나 기준 숫자는 3씩 늘어나고, 곱한 값은 1씩 늘어나게 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곱한 값이 20에 도달하게 되면 처음으로 이 법칙이 깨지게 된다. 4×13은 20이 아니라(42진법을 적용했을 때) 1이 되기 때문이다. (55쪽)

루이스 캐롤이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이기도 하단 점에서 이 역시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이런 독해는 언제나 흥미롭다. 흐흐.

또 다른 재미라면, Alice Doesn’t의 서문에 실린 내용과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도 있지만, 스나크가 나오는 구절들. 최근에 [스나크 사냥]을 읽어서인지, [앨리스]에서 이미 스나크가 등장하고 있다는 게 반갑고 재밌었다. 특히나 스나크snark가 shark의 h를 n으로 식자공들이 잘못 조판한 것일 수도 있다는 주석은, 무척이나 재밌었다. 왠지 그럴 듯 하고. 흐흐.

책의 머리말에 나오는 구절.

그나저나, 혹시 “wed. Oct. 29, 1975 Alice doesn’t!”가 무슨 의미인지 아시는 분, 무슨 이유에서 이런 구절이 들어간 피켓을 데모에서 들었는지 알려주세요~, 라고 쓰려는데 대충 무슨 의미인지는 찾았다. [Alice doesn’t live here anymore]라는 영화에서 따온 구절인 듯. 1975년 10월 29일, 여성을 착취하는 사회 구조와 노동시장에 파업을 하자고 NOW(전미여성기구)에서 제안하는데, 이 제안의 이름이 “Alice doesn’t”이다. 집 안팎에서 일을 하지 않고, 음식을 사려고 돈을 지불하지 않으며, 대중문화에서 여성에게 요구하는 이미지를 지지하지 않고, 등등. 이런 일을 하기 위한 행사이름이 “Alice doesn’t”이다. (자세한 건 여기로.) 물론 책 내용은 이 행사와 직접 관련 있는 것 같진 않지만 아예 무관한 내용은 아니다.

암튼, 암튼, 루이스 캐롤의 책은 여러 모로 재밌다. 매력적이고.

6 thoughts on “앨리스, Alice doesn’t

    1. 근데, 적잖은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의 경우, 앨리스를 상당히 불편하게 해석하더라고요. 주로 앨리스에게 요구하는 캐롤의 태도와 캐롤이 7살 여자아이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인 점과 밀접한 거 같아요.
      하지만 소설은, 정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텍스트란 점에서 매력적이에요. 흐흐

  1. 그 복잡한 주석이 재미있는 것이었군요 *_* 저는 새까만 주석에 놀라 얼른 책을 놓았던 기억이 있어요. 주석이 많으면 괜스레 전 책읽기가 싫어지는듯.. 늙다리 대학원생으로 지낸 2, 3년의 후유증이에요 ㅋㅋ

    1. 저도 그래서 주석의 상당수는 무시했어요. 그냥 가끔씩 주석을 읽다가 우연히 저 재밌는 해석을 읽었달까요. 흐흐

  2. 오. 재밌을 거 같아요. 그치만 먼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부터 읽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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