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냄의 미묘한 경계

작년 9월, 한 주간지에 청탁받은 글을 보내면서 이걸 딱히 “공개적인 커밍아웃”이라고 여기진 않았다. 그 이전부터 [Run To 루인]에 오셨던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이곳을 통해 루인은 어떤 인간인지를 떠들고 다녔으니까. 그럼에도 블로그라는 형식을 통한 말하기와 주간지라는 다소 규모가 더 크게 느껴지는 형식을 통한 말하기엔 차이가 있기 마련이라, 슬쩍 긴장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무려나, 그 주간지가 발간되었을 때 그 글을 읽은 분은 별로 없는 듯 했고, 이후 사람들을 만나도, “블로그 잘 보고 있다”며 인사를 하는 분들은 있어도 그 주간지에 쓴 글을 얘기하는 분들은 없었다. 물론 지속성과 단발성의 차이가 있을 테고, 주간지에 실린 글을 일일이 기억하는 경우가 별로 없기도 하고.

그럼에도 이런 형식의 글쓰기를 통해 자신과 관련한 어떤 부분들을 얘기하는 걸 이른바 “공개적인 커밍아웃”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어쨌든 그 주간지에 글을 쓴 건, 나름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거라고 할 수도 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 어떤 연구자와 지렁이 사람들이 단체로 인터뷰를 할 일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루인과 관련한 얘기를 하며, “전국적”으로 배포하는 주간지에 글을 쓴 적이 있다며 이를 일종의 “공개적인 커밍아웃”이라고 했을 때, 그 사람의 반응은 “사진을 실었느냐”였고, 그렇지 않다고 했을 때, 그럼 별 것 아니란 듯, 소위 말하는 “공개적인 커밍아웃”은 아닌 것으로 반응했다. 그 반응이, 루인에겐 사진을 싣지 않으면 “커밍아웃이 아니다”라고 치부하는 듯해서 좀 불쾌했다.

불쾌했으면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또 그렇게 못하는 “팔랑 귀”라, 이후 이른바 “공개적인 커밍아웃”과 관련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고민하곤 한다. 글을 통해, 강연이란 형식을 통해 “저는 트랜스예요”라고 말하고 다니는데도, 언론에 사진을 공개하지 않았으니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걸까, 하고. 혹은 “공개적인 커밍아웃”은 어떤 수위를 의미하는 걸까, 하는 고민도 동시에 한다.

한국에서 트랜스젠더는 “하리수”를 매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트랜스젠더의 이미지는 “하리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래서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특강에 누가 가느냐에 따라 상당히 다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트랜스젠더에 대해 어느 정도 아세요?” 혹은 “하리수 외에 알고 있는 트랜스젠더가 있으세요?”란 질문을 했을 때, 반응하는 사람들이 극소수인 자리에서, “저 트랜스예요. 하리수와 같은 트랜스여성이요.”라고 얘기를 하는 건, 사람들에게 상당한 긴장과 균열을 일으키기에 아주 좋다. (루인을 오프라인으로 만난 사람들만 이해가 될 듯;;;) 실제 이런 효과를 노리고 의도적으로 이와 같은 얘기를 꺼내기도 한다. 하지만 반드시 이런 효과를 노리고 “커밍아웃”(사실 이 용어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한다, 그래서 계속 따옴표를 치고 있다)을 하는 건 아니다. 그냥 “저, 트랜스예요”(mtf와 ftm이란 식의 구분 없이)라고 강의와 같은 자리에선, 툭, 뱉듯 얘기하는 편이다. 개개인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보다, 이렇게 강의를 통해 말하는 게 부담이 덜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의외로 상당히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또 모르고 있는 경우도 있다. 트랜스젠더나 퀴어와 관련한 주제와 이슈를 상당히 자주 얘기하지만, 뉘앙스를 파악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흘려 듣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사람들에게 일일이 말하려고 하진 않는다.

그럼, 이런 방식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사실, 이른바 “공개적인 커밍아웃”이란 것과 “벽장”이란 은유를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고, 이런 식의 구분에 경계가 모호한 경우들이 너무 많기도 하고. … 도대체 이 글을 왜 쓰고 있는지 지금 모르겠는데-_-;; 아무튼 꽤나 오래 전에 무슨 계기로 이와 관련한 글을 써야지 했다가 이제 쓰는데 무슨 계기였는지는, 당연히 까먹었다. ;;; 아, [Run To 루인]에 사진을 공개할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그랬나? ;;; 암튼 모르겠다. 힝.

14 thoughts on “드러냄의 미묘한 경계

  1. 오 사진 공개! 문구에 솔깃 ㅋㅋㅋ 저는 안봐도 되지만요~ ㅋㅋㅋㅋㅋ

    1. 크크크. 그럼 안 봐도 되는 분들에게만 공개할까요? 흐흐흐
      사실 공개를 하지 않는 이유는 사진이 없기도 하거니와,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반성이 있달까요. 흐흐. ;;;

    2. 흐흐흐. 하지만 사진을 공개하는 건, 이곳에 오는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자제하고 있어요. 흐흐

  2. 루인님, 제가 짧은 칼럼 두 개를 루인님 지메일로 보냈는데 받아보셨는지요? 지금 미국에서 고용차별금지법을 만드는데 트랜스가 포함되는 여부를 두고 논쟁이 있었어요. 그것 관련한 칼럼이에요.

    1. 며칠 바빠서 답장을 못 했는데, 정말 고마워요! 메일로 보내주시지 않았으면 이와 같은 글이 있는지도 몰랐을 거 같아요.

  3. 10년째 활동하는 저도 그런 말 곧잘 들어요. 제 이름이 호적상의 이름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놓고 “실망이야” 이런 경우도 있죠. 제가 그걸 본명이라고 속인 적도 없는데.. 그냥 본명인줄 알았다며.. 그럴 때도 좀 당황스럽고 웃기죠. 아무도 속인 적 없는데도 제가 속이고 있는 듯한… 호적상 이름보다 지금 이름을 훨씬 더 좋아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닉네임을 쓰고 있으면서도 말이죠. 자신들의 닉네임은 문화적 흐름에서 쓰는 닉네임이고… 제가 쓰는 건 “속았다”가 되고…

    그래서 저는 커밍아웃 앞에 공개적이란 말을 붙이는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요. 비공개적 커밍아웃은 뭐죠? ^^ 크크… 커밍아웃을 비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 있으면 좀 알려줘보라고 하고 싶군요. 크크.. 사람들의 그 작위적인 공개, 비공개 구분에 .. 그냥 신경쓰지 마세요.

    우린 연예인이 아니잖아요. 시에프 출연하고 돈 벌고도 아닌데… 정치인도 아니고.. 지명도 높여서 국회의원될거도 아니고… 동성애자로서, 성전환자로서 하루 하루를 이미 투쟁하면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공개 비공개나 커밍아웃이니 어쩌니 따지는 인간들 있으면 그 사람들 손가락끝을 확 물어버리세요.

    1. 정말 그래요.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닌데, 왜 자꾸 따지고 구분하려는 건지…
      그나저나 예전에 버디에서 인터뷰한 걸 읽으며 이름이 참 멋지다고 느꼈거든요. 그런데 또 호적상의 이름이 아니라고 “실망”이라고 말한다니, 정활 황당하고도 씁쓸한 느낌이에요.

  4. 애당초 영어권에서 들어온 커밍아웃이니 벽장이니..하는 말이 “벽장에 해골 하나쯤 숨겨놓지 않은 사람 어디 있겠냐”라는 말에서 유래된 거잖아요.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어디 있느냐는, 대수롭지 않은 뜻으로 확대해석할 수도 있지만 “벽장 속의 해골”은 마치 범죄에 해당되는 비밀처럼 느껴져서 적절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직도 그 표현을 대체할 말이 생겨나질 않는 걸 보면 딱히 묘안이 없나봐요.
    째뜬… 이래라 저래라하는 사람들 참 싫습니다.

    1. 벽장과 커밍아웃이 기묘하게 위계나 우월처럼 구분하는 이분법에 종종 화가 날 때가 있어요. 정말 벽장에 해골 하나 안 숨긴 사람이 있는지…
      정말, 대뜸 판단하고 재단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두고두고 싫다는 느낌이에요. (속에 잘 담아 둔다는 의미-_-;;; 흐흐)

  5. 안 그래도 저도 작년에 george chauncey의 gay new york이란 책을 수업 때문에 읽었는데 ‘커밍아웃’이란 표현의 유래에 관한 부분이 지금 떠올랐어요. 2차 대전 이전에 이 표현은 상류 사회 여성들이 사교계에 입성(..이라고 해야 하나;;)하는 그 의식을 염두에 둔 일종의 언어 유희로 훨씬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했었다고 하더라고요. 곧, ‘커밍아웃’이란 어떤 벽장으로부터의 탈피보다는 보다 넓은 동성애자들의 사회로의 입성쯤으로 이해됐었는데, 2차 대전 이후 동성애자들에 대한 탄압이 심화되면서 그 이전에 그들이 구축했던 반체제 문화가 비록 대중적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겠지만 적어도 벽장 속에 갇혔다고 하기에는 꽤나 visible했던 역사가 잊혀지면서 벽장 이미지가 지배적이게 됐다고 설명하더라고요. 아쉽게도;;

    1. 오홋 그렇군요. 흐흐.
      벽장을 마치 꽁꽁 숨기고 있는 것처럼 의미가 바뀌면서, 벽장과 커밍아웃의 이분법으로 얘기하는 뉘앙스를 들을 때마다 종종 속상할 때가 있어요.
      그나저나 Gay New York이란 책, 다는 안 읽어도 커밍아웃과 관련한 부분은 읽어 봐야 겠어요. 🙂

    2. 어제 기억이 안 나서 visible이라고 썼었는데, 그 단어가 생각났어요- ‘가시적이었던’이라고 쓰고 싶었던 거였어요;; 아 갈수록 한글도 못하고 ㅠㅠㅠㅠ 그리고 그 부분만 보시려면 introduction만 읽으면 될 걸요..ㅎㅎ 그것도 꽤나 초반에 나왔던 듯- 그래서 제가 기억하는 것 같아요 ^^;; 전체적으로 꽤나 재밌는 책이어서 시간만 되면 다 읽고 싶었지만, 또 정말 두껍기도 하거든요 =_=

    3. visible을 영어로 쓰셔서, 일부러 그러셨나 했더니,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거네요. 흐흐흐.
      책이 두껍다니, 그럼 루인도 서문만 ….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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